《 1997년 7월. 너무도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기에 ‘죽음의 산’으로도 불리는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해발 8125m)를 오르고 내려오던 산악인 박정헌(42)은 7300m 설원지대를 걷고 있었다. 원래는 ‘벌거벗은 산’이라는 뜻을 지닌 이 산은 1937년 독일 원정대 16명 전원…
1960년 봄 전북 이리(현 익산)에서 경기 평택군 송탄면 서정리국민학교로 전학 온 열한 살 소년 이재형 군은 이렇게 ‘K-55’ 부대와 첫 인연을 맺었다. 소년은 다시는 부대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겠노라 다짐했지만 운명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새콤달콤한 맛의 여운이 혀끝에서 맴돌던 …
조 씨는 4남 1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집은 지독하게 어려웠다. 가난은 불운과 함께 찾아왔고, 불운은 전염병처럼 집안을 휩쓸었다. 아버지는 그가 어렸을 적에 세상을 떠났다. 맏형은 스무 살이 되던 해,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다. 후유증이 심해 일을 하지 못했다. 둘째 형은 자살했다.…
#1. 8일(현지 시간) 미국 뉴저지 주 버겐 카운티 법원에선 미국 내 3번째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가 제막된다. 카운티 정부가 세우는 것이지만 한인 시민단체인 시민참여센터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제막식을 앞둔 김동석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56)에겐 한 가지 원칙이 있다. 미국에서 위안부…
4월의 나주는 배꽃향기가 짙다. 배나무가 들판을 가득 메운 전남 나주시 문평면의 작은 마을. 스물여섯의 여자는 바람에 흩어지는 배나무 꽃을 보고 ‘꼭 눈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 오기 전, 눈은 영화에서만 봤다. 눈은 아름다웠지만 겨울바람은 매서웠다. 목도리로 얼굴을 싸매고 옷을…
도로 가는 길은 고달팠다. 14일 오후 6시 10분 도쿄(東京) 역에서 신칸센에 올라 오카야마(岡山) 역에서 일반열차로 갈아타고 돗토리(鳥取) 현 요나고(米子) 역에 도착하니 오후 11시 45분. 역 앞 호텔에서 잠을 잔 뒤 이튿날 아침 버스를 타고 시치루이(七類) 항구로 향했다. 오…
#. 프롤로그 한강 투신은 고통이 덜한 자살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목숨에 미련이 없어도 고통은 두려운 사람들이 이런 착각에 빠져 한강다리에 선다. 하지만 강은 품 안으로 뛰어드는 이들에게 더없이 가혹하다. 한껏 가속이 붙은 사람 몸이 물과 부딪힐 때 충격은 맨땅에 그대로 떨어지는 것…
2008년 12월 17일 종묘공원. 초겨울 마른 땅을 적시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과 종로지역 국회의원, 종로구청장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셋, 둘, 하나, 제로”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오 시장 등이 일제히 버튼을 눌렀다. 폭죽 소리와 함께 현대상가에서 낡은 현판과 …
《 금요일 밤 서울 강남역 일대는 넥타이 부대로 붐볐다. 남자들은 이미 거나하게 취한 듯 갈 지(之)자 걸음을 이어갔다. 그는 그런 일행만 골라 종이를 내밀었다. 종이엔 ‘강남 전 지역 픽업 가능’이란 문구와 함께 그의 이름 석 자가 크게 박혀 있었다. 유흥주점 광고지
《 2012년 12월 27일, 울산에는 보기 드물게 많은 눈이 내렸다. 평균 적설량이 6.7cm나 됐다. 오르막길인 중구 성안동 길은 새벽부터 차량 통행이 금지됐다. 성안동 오르막길 끝자락에 위치한 울산시장애인종합복지관(울산 중구 백양로 160)으로 가는 도로는 인적조차 드물었
2002년 4월 어느 날. 도심에는 봄이 한창이었지만 이층집 높이의 담장 앞에 서자 한기가 몰려왔다. 먼 산속 나무들도 앙상한 모습이었다. 몸이 떨렸다. 꼭 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혼잣말을 했다. “내가 무사히 잘할 수 있을까.” 검문소에서 신분증을 제출하고 휴대전화를
《 물 건너온 ‘신상(신상품)’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푸른빛은 이전보다 화사해졌고 폴리머(polymer) 재질은 매끈했다. 홀로그램 속에 들어간 인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모습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뒤집어 들여다보다 엄지와 검지로 비벼보기도 했다. 이
#프롤로그 3700km. 대구와 베트남 도시 껀터 사이의 거리다. 기차와 비행기, 자동차를 갈아타며 꼬박 하루를 이동해야 한다. 이렇게 먼 길을 이은서 씨(25)가 나섰다. 원래 이름은 ‘원트이’였다. 베트남 출신. 한국인 민계원 씨(44)와 2006년 결혼하면서 한국에 왔다.
“무늬가 들어간 저 옷은 빼버려야겠어요. 전체 콘셉트와 안 맞아요.” 6월 24일 오후 2시. 그녀의 말에 모델 5명의 얼굴색이 새하얘졌다. 그들은 다른 모델들과 달리 하필이면 무늬가 들어간 그 옷을 입고 있었다. 프라다를 움직이는 수석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가 ‘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