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가 3월 31일부터 5월 18일까지 총 10회에 걸쳐 ‘수학의 고향을 찾아서’ 시리즈를 연재한 뒤 독자들 사이에서 다른 수학자들의 이야기도 소개해 달라는 요청이 많았습니다. 남다른 열정으로 수학의 역사에 족적을 남긴 수학자들의 일화를 추가로 소개합니다. 》
“많은 사람이 수학을 싫어하는 데에는 수학을 가르치는 사람들의 책임도 없지 않습니다. 수학자들의 체취가 느껴지는 수학 교육, 단순히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수학 교육이 필요합니다.” 7월 초 국내 처음으로 열리는 ‘수학 교육 올림픽’(4년마다 개최) 국제수
‘시대를 앞서가다 유성(流星)처럼 20대에 요절한 비운의 천재 수학자.’ 프랑스 수학자 에바리스트 갈루아(1811∼1832)를 수학계는 이렇게 부른다. 전해지는 그의 초상화는 대부분 남동생 알프레드가 그린 것으로 얼굴에 우수가 가득 묻어난다. 무의미한 권총 결투로 사망
에바리스트 갈루아와 노르웨이의 닐스 헨리크 아벨(1802∼1829)은 동시대를 살면서 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충분히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20대에 요절하는 등 비슷한 점이 많았다. 16세기 말 4차 방정식의 해법을 발견한 이래 300년가량 풀지 못했던 ‘5차 방정식’ 문제
“나는 말을 할 수 있기 전부터 이미 계산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리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 영국의 아이작 뉴턴과 함께 ‘역사상 3대 수학자’라고 꼽히는 독일의 카를 가우스(1777∼1855). 그가 어릴 때 보여준 ‘수학 신동’ 일화는 세 살 때부터 시작한다. 벽돌공
“마치 사람이 숨을 쉬는 것처럼, 또 독수리가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무슨 문제든) 아무 힘을 들이지 않고 계산을 해냈다.” 프랑스의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 프랑수아 아라고(1786∼1853)가 자신보다 한 세대 전의 스위스 천재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1707∼1783)에
물체 운동의 법칙과 만유인력 발견 등으로 인류 역사상 손꼽히는 과학자 중 한 명인 영국의 아이작 뉴턴(1642∼1727)과 이진법을 고안해 컴퓨터 탄생의 씨앗을 뿌린 독일의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1646∼1716). 동시대를 산 두 거물이 비슷한 시기에 각자 발명한 미적
‘3차 이상의 제곱수를 같은 차수의 제곱수의 합으로 나타내는 것은 불가능하다(Zn≠Xn+Yn).’(n=1, 2인 경우는 성립) 초등학교 산수 외에는 수학을 배운 적이 없는 프랑스 툴루즈 지방법원의 법관이었던 피에르 드 페르마(1601∼1665). 그가 17세기에 남긴 이 정리는 20
“기하학 문제를 다 풀기 전에는 못 떠난다!(이놈)” 기원전 212년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남쪽 끝에 있는 오르티자 섬. 로마군이 1년여의 공략 끝에 드디어 시라쿠사의 마지막 거점인 오르티자를 함락한 뒤 아르키메데스(기원전 287년∼기원전 212년)가 있는 곳으로 들이
‘포물선이나 타원 면적 구하기는 소젖 짜기를 닮았다?’ 아르키메데스의 수학적 업적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포물선이나 타원형에 관한 연구다. 특히 ‘무한 소진법(消盡法)’이라고 불리는 면적 구하기는 후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금은 타원이나 곡선의 함수식만 구하
‘지금도 전 세계 초중고교 수학에서 그대로 배우는 영원한 기하학의 성전(聖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했던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기원전 330?∼기원전 275?)의 저서 ‘기하학 원론’에는 이런 찬사가 붙는다. 그가 사망한 후 19세기까지 2000년이 넘도록 전 세
“죽은 후에 영생으로 가는 길에 접어든다/그 길을 따라가면 강에 이르는데 강의 건너편이 영생의 곳이다/강을 건너려면 아켄이라는 사공이 젓는 나룻배에 올라야 한다/‘자신의 손가락 숫자를 모르는 사람’은 이 배에 탈 수가 없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왕(파라오)이 죽으
‘아랍엔 왜 아라비아 숫자가 없을까?’ 카이로 룩소르 알렉산드리아 등 이집트 어느 도시의 자동차 번호판에서도 ‘아라비아 숫자’를 찾을 수가 없다. 아랍의 맹주인 이집트에 왜 아라비아 숫자가 없을까. 아라비아 숫자는 아랍에서 만든 게 아니다. 인도에서 생겨난 후
《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곳에 들어오지 마라.” 그리스의 대철학자 플라톤(기원전 427∼기원전 347)은 기원전 387년 ‘아카데미아’를 세우면서 정문에 이렇게 새겼다. 흔히 철학자로 알려진 플라톤이 사실은 인류 수학사의 획을 그은 ‘수학의 원조’였음을 보여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