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로 이재명 지키러 거리로 나간 민주당 [김지현의 정치언락]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6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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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 서울 중구 숭례문 앞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민생파탄 검사독재 규탄대회’에서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8번 출구에 보수집회 예정, 대규모 인파 혼란 우려, 지역별 안전관리 담당 운영 필요’

지난달 31일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사무총장 명의로 민주당이 전국 17개 시·도당 위원장에게 보낸 ‘윤석열 정권 민생파탄·검사독재 규탄대회’ 참석 요구 공문 하단에 적혀 있던 공지사항입니다. 4일 오후 3시 민주당의 첫 장외집회를 앞두고 보수집회와의 충돌 가능성 등으로 참석자들의 안전 위험이 우려된다는 내용입니다.

민주당이 지난달 31일 사무총장 명의로 보낸 공문 중 일부. 대규모 인파 혼란 우려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민주당이 지난달 31일 사무총장 명의로 보낸 공문 중 일부. 대규모 인파 혼란 우려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실제 이날 경찰 추산 2만 명 (민주당 추산은 30만 명)이 모였습니다.

마침 지난 주말이 이태원 참사 발생 100일이었죠. 이재명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도 이날 규탄대회 참석에 앞서 서울시청광장 인근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100일 추모대회에 참석했습니다. 자신들이 필요할 땐 대규모 인파 혼란이 우려되더라도 수만 명을 거리로 동원하면서, 정부와 경찰을 향해선 ‘시민 안전을 지키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전형적인 ‘내로남불’입니다.
● 장외투쟁 막전막후
민주당이 거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연 건 2016년 말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운동’ 이후 6년 만입니다. 그 때와 달리 지금 민주당은 ‘169석의 거대 야당’이자 ‘원내 1당’입니다. 왜 굳이 국회 밖으로 나가야 했을까요.

대규모 ‘국민보고대회’ 계획이 처음 나온 건 지난달 29일입니다. 이 대표가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 받은 다음날이죠.

일요일이던 이날 저녁 국회에선 이 대표 주재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가 열렸습니다.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 회의에선 이 대표의 검찰 조사에 대한 향후 당 대응 전략 등이 논의됐다고 합니다. 안호영 수석대변인은 회의를 마치고 밤 9시 경 기자들과 만나 “조만간 서울에서 국민 보고대회를 열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국민보고대회가 ‘장외투쟁’이냐”는 질문에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고 답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구체적으로 시기나 이런 부분은 아직 결정 안했다”고 할 때였습니다.

그랬던 계획은 다음날부터 ‘급물살’을 탔습니다. 민주당은 30일 고위 전략회의를 열고 ‘2월 4일 오후 4시 숭례문 인근’에서 ‘윤석열 정권 민생파탄 검사독재 규탄대회’를 연다고 확정했습니다. “민주당 전체가 간다고 보면 될 것”이라는 박성준 대변인의 발표대로, 이날 전국의 민주당 지역위원회로는 아래와 같은 문자메시지가 전송됐죠.


● 이재명의 #파란 물결
장외투쟁 계획이 공식 발표되자 민주당 내에선 반발과 우려가 들끓었습니다.

친명(친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의원이 31일 YTN 라디오에서 “이 대표 사안과 관련해 우리가 장외에서, 국회 밖에서 싸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포문을 열었습니다. 비명(비이재명)계인 조응천 의원도 SBS라디오에서 “민주당이 다 나가서 장외에서 (투쟁)하는 것이 결국은 또 당 전체가 나서서 (이 대표의) ‘방탄보호막이 되려고 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역시 비명계인 박용진 의원은 ‘총선 폭망론’을 꺼내들었죠. 박 의원은 KBS라디오에서 과거 자유한국당의 장외투쟁을 언급하며 “(당시 자유한국당의) 총선 (결과)은 ‘폭망’이었다”며 “정치 탄압은 장외 집회로 극복되는 게 아니다”라고 경고했습니다.

자유한국당 시절 황교안 대표는 21대 총선을 1년 앞두고 2019년 수시로 국회를 박차고 장외로 나갔습니다. 그 해 9월엔 청와대 앞에서 화제의 삭발식도 열렸죠. 한 비명계 의원은 “그 때 자유한국당은 ‘패스트트랙’에 반대한다는 명분이라도 있었는데 지금 우리는 당 대표 개인 문제 때문에 거리로 나가는 것 아니냐”며 “차라리 ‘난방비 폭등 규탄대회’라고 이름을 붙였더라면 이렇게 반발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2019년 9월 16일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반발하며 삭발을 하는 모습. 황 전 대표 뒤로 나경원 전 원내대표 등 자유한국당 의원 등이 앉아있다.
2019년 9월 16일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반발하며 삭발을 하는 모습. 황 전 대표 뒤로 나경원 전 원내대표 등 자유한국당 의원 등이 앉아있다.


하지면 31일 오후 이 대표가 직접 페이스북에 아래와 같은 ‘파란 물결에 동참해달라’는 호소 글을 올린 직후 강경파 의원들도 본격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 대표는 이후로도 자신의 트위터와 블로그 등 모든 SNS 채널을 모두 가동해 #파란물결 동참을 촉구했습니다.)

‘처럼회’를 주축으로 민주당 의원들은 2월 1일 ‘김건희 특검 이상민 파면 추진 행동하는 의원 모임’을 결성하고 국회 로텐더홀에서 릴레이 밤샘 농성 규탄대회를 시작했습니다. 5월 원내대표 선거 출마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중진 의원들도 동참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안민석 의원은 “(장외투쟁이) 늦어도 너무 늦었다. 왜 우리는 광화문 저 벽을 넘는 것을 왜 주저했을까. 광화문에 나가보면 민주당과 이재명을 지지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장인 박범계 의원도 2일 라디오에서 동료 의원들을 향해 “일정이 있어도 다 열 일 제쳐놓고 오셔야 (한다)”고 했죠. 정청래 최고위원은 “‘주경야독’하는 심정으로 장외투쟁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는 집회 전날인 3일 당 회의에서 “주중 5일은 국회에서 일하고 주말은 국회 밖에서 국민들을 직접 만나겠다”며 “투쟁하지 않는 야당은 죽은 정당”이라고 했습니다.

● 의원실마다 ‘날벼락’…“우리 주말은”
이렇게 자기색이 뚜렷하신 의원님들은 기쁜 마음으로 광장으로 나갔겠지만, 그렇지 않은 나머지 의원실은 참석 인원 명단을 제출하라는 ‘총동원령’에 지난주 내내 비상이 걸렸습니다.

한 비명계 의원은 “명단을 제출하라는 건 총선을 앞두고 사실상 ‘줄 세우기, ‘충성 경쟁’을 시키겠다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는 “당 지도부가 어떻게 의견 수렴 과정도 없이 독단적으로 일을 진행하냐”면서도 ‘그래서 집회에 나가냐’는 질문엔 “지금 안 갈 수 없는 상황 아니냐”고 했습니다. 또 다른 중립 성향의 의원도 “‘반명(반이재명) 투사’로 찍히기 싫으면 가야지 무슨 힘이 있냐”고 하더군요.

이미 빠듯하게 잡힌 주말 일정을 어찌할 지 고민하는 의원실도 많았습니다. 한 초선 의원은 “설 명절 끝나고 정월대보름까지 윷놀이 대회 등 온갖 행사가 열린다. 주말마다 하루에 많게는 대여섯 곳씩 눈도장을 찍어둬야 하는 지역구 관리 ‘피크 타임’인데 갑자기 어쩌라는거냐”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이미 지역구민들을 대상으로 의정보고회 일정을 잡아둔 의원실도 고민에 빠졌습니다. 한 비명계 의원실은 “가뜩이나 ‘개딸’들에게 찍혔는데 안 가면 또 얼마나 난리가 나겠냐”고 했고, 또 다른 의원실은 결국 의정보고회를 마치고 다 같이 집회에 가기로 했다네요.

당장 지방에 지역구를 둔 의원실들은 서울로 올라오는 전세버스를 구하는데도 애를 먹었습니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주말이고 갑자기 빌리려다 보니 서울까지 올라오는 버스 대절 비용만 대당 80만~100만 원씩이었다네요. 여기에 동원된 사람들 하루 식대까지 합치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다는 계산입니다. 모두 여러분의 세금, 그리고 당비입니다.

주말도 없이 동원된 민주당 당직자들도 ‘이번 행사와 관련해 시간외 수당이나 대체휴가는 없다’는 당의 짤막한 공지 한 줄에 분개하더군요. 당은 “앞으로 상황에 따라서 국민 목소리가 있다면 그에 맞춰 장외에서 국민보고대회를 할 수 있다”고 ‘장외투쟁 정례화’ 가능성을 열어뒀던데 앞으로 계속 이번 같은 호응이 이어질 지는 미지수입니다.

어쩌다 지난 주말을 빼앗긴 사람들의 ‘뼈 때리는 말말말’로 이번 칼럼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말말말
“이 대표가 자긴 주중에 일하겠다고 주말에 검찰 출석한다는 취지는 알겠다. 그런데 우리는 대체 왜 그를 위해 주말에 거리로 나가야 하나” (민주당 보좌진 A)
“총선 앞두고 욕먹는 건 두려웠는지, 당 지도부가 ‘원내와 장외 집회를 병행한다’고 하더라. 이게 무슨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같은 소리냐” (당 보좌진 B)
“국민이 낸 세비로 당 대표를 위해 거리로 나가는 정신 나간 민주당” (지역위 관계자 C)
“이렇게 모이라 한 뒤 사고라도 터지면 자기들은 쏙 빠지고 우리가 똥물 다 뒤집어 쓸 것이다. 주중부터 대책회의하며 안전 논의하고 있다.” (남대문 경찰서 소속 경찰 D)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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