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제일검’ 한동훈 법무장관이 상가에 가지 않는 이유[황형준의 법정모독]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5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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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201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극작가 페터 한트케의 희곡 ‘관객모독’. 십수년 전에 본 이 연극을 떠올린 건 독자들과 소통하는 방법 때문입니다. 신성한 관객에게 물을 뿌리고 말을 걸어도, 그가 연극의 기존 문법과 질서에 저항했든, 허위를 깨려했든, 모독(冒瀆)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법조팀장을 맡고 있는 필자는 정치부와 사회부에서 10년 넘게 국회와 청와대, 법원·검찰, 경찰 등을 취재했습니다. 이 코너의 문패에는 법조계(法)와 정치권(政)의 이야기를 모아(募) 맥락과 흐름을 읽어(讀)보겠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가끔 모독도 하겠습니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2일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2023년 법무부 시무식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제공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2일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2023년 법무부 시무식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제공
떡잎부터 눈에 띤 ‘워커홀릭’ 한동훈
될 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이 있다. 검찰 선배들에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하 존칭 생략)이 딱 그런 평가를 받았다. 사법연수원에 합격한 뒤 남들은 그동안 공부하느라 놀지 못한 것을 보상이라도 받듯이 음주가무를 즐기고 마작과 골프 등을 배우기 바빴다는 군법무관 시절. 강릉 공군 제18전투비행단에서 근무하던 한동훈은 소속 부대 영관급 간부를 혼자 인지수사해 수뢰죄로 구속시켰다.

이 때부터 검찰 조직에서 한동훈을 눈여겨봤다는 게 한 검찰 출신 변호사의 전언이다. 그는 평검사 시작부터 탄탄대로였다. 사법연수원 성적 등이 톱이어야 배치되는 서울중앙지검에서 초임검사를 시작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9부(금융조세조사부의 전신)에서 SK그룹 분식회계 사건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연구관 시절 대선자금 수사와 현대차 비자금 사건 등을 맡으면서 주목을 받았다. 중수부 근무 시절 윤석열 대통령과도 인연을 맺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 그는 윤 대통령 등 다른 검사들이 늦은 밤 조사를 마치고 “한 잔하러 가자”며 술자리에서 회포를 풀 때 혼자 남아 밤새 회계장부 등을 분석했다고 한다. 그만큼 일을 열심히 한 검사였다.

2007년부터 부산지검에서 근무할 땐 전군표 당시 국세청장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시켰고 이후 이명박 정부 청와대 대통령민정수석실 행정관과 법무부 검찰과 검사, 대검찰청 정책기획과장, 서울중앙지검 초대 공정거래조사부장 등을 지내며 승승장구했다. 이후 국정농단 특검팀에 파견돼 윤석열 당시 수사팀장 아래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순실 씨 조카인 장시호 씨 등을 조사했다.

다음은 특검팀 시절 장 씨 조사 관련 에피소드에 대해 한동훈이 했던 이야기다.
“(최순실 씨) 그 집안이 머리가 좋아. 박근혜 전 대통령 대포폰 번호는 장시호가 특정해낸 것이다. 당시 번호가 특정이 안 되면 양측이 통화해서 논의했다는 게 입증이 잘 안 될 수도 있었다. 최순실은 당시 파우치에 포스트잇 붙여진 대포폰 등 휴대폰 10개 정도를 넣어서 갖고 다녔다고 한다. 그 중 하나로 전화가 오면 항상 최순실이 안에 들어가서 조용히 받고 나와서는 박 전 대통령 얘기를 하는 게 장시호 입장에선 수상했다고 한다. 그래서 하루는 최순실이 폰을 놓고 자리를 비웠을 때 장시호가 몰래 번호를 봤다고 한다. 저장된 이름은 ‘큰집 이모’ 뭐 이런 식이었다고 한다. 그 번호를 패턴으로 외워서 우리한테 알려줬다. 내가 술은 안 먹어도 단 거를 좋아해서 내 방 냉장고에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같은 걸 쌓아두고 밤에 먹었는데 하루는 장시호가 문을 똑똑 두드렸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이스크림 좀 주세요’하는 거야. 번호를 특정해냈는데 뭘 못주겠어. 마음껏 먹으라고 했다(웃음).”
합리적-세련됨-친절함 갖춘 ‘아메리칸 스타일’
2019년 9월 대검찰청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 당시 사진.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뒤편에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었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모습. 동아일보 DB
2019년 9월 대검찰청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 당시 사진.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뒤편에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었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모습. 동아일보 DB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된 지 세 달 뒤인 2017년 8월. 그는 특별수사를 담당하는 3차장에 임명됐다. 그의 사무실엔 아메리카노의 향이 가득했고 재즈가 흘렀다. 슬림핏 양복은 그의 옷매무새를 눈에 띄게 해줬고, 걸음걸이 하나에도 자신감과 힘찬 기운이 느껴졌다. 하얀 얼굴에 세련된 검정 뿔테 안경에 얼리어답터 느낌을 주는 최신 전자기기들까지. 항상 눈에 띄었다.

강남 출신(태어난 곳은 춘천)에 압구정 현대고, 서울대 법대, 엘리트 검사 등 모자란 것 없어 보이는 ‘엄친아’.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엔 키우는 고양이 사진이 걸려 있었고 취미는 음악듣기와 독서, 게임 등이었다. 보기 힘든 부류의 검사였다.
“한동훈 3차장 방에는 재즈가 틀어져 있는 등 여느 검찰 간부 인사와 사뭇 다른 분위기가 풍겨 화제. 책상에는 ‘밥 딜런’에 대한 원서가 놓여 있음. 책상에 증권 트레이더처럼 모니터도 2개를 쓰고 서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높이를 조정하는 책상(모션데스크)이 놓여 있음. 턱걸이를 할 수 있는 운동기기도 놓여 있어.”
-당시 2017년 8월 취재 메모
그는 항상 친절했고 거만하지 않았다. ‘O기자님~’ ‘O반장님~’이라고 응대를 하고 말 한 번 놓은 적이 없다. 기자들의 수십통의 전화를 받으며 같은 질문을 받으면서도 짜증을 내지 않았다. 콜백은 뒤늦게라도 항상 하면서도 바쁠 땐 사무실 앞에 기다리더라도 ‘지금 시간이 없다’며 면담은 딱 잘라 거절했다.

언론을 다룰 줄 아는 특수부 출신 검사였다. 중수부 막내 검사 시절부터 선배들을 따라 검찰 출입 기자들과 만나며 외압에 부딪힐 때 언론을 활용해 ‘박수 받는 수사’를 이어가는 법 등을 체득한 것 같았다. 전군표 전 청장 수사 때는 물론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특수활동비 상납 의혹,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경영권 승계 의혹 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도 타고난 ‘쌈닭’이었다. 전쟁을 피하려하지 않았다. 누군가 검찰 수사에 대해 부당하게 비난을 하면 피하려하지 않고 ‘맞짱’을 떴고 논리에서 지지 않았다. 그럴 땐 특히 말이 빨라졌다.

뛰어난 머리를 가진 그는 말이 남들보다 배 이상 빨랐고 그러면서도 정확한 용어를 사용했다. 기자들과 티타임을 진행할 때도 막힘이 없었다. 후배 검사들에게도 ‘나이스’하긴 마찬가지였다. 머리가 좋아 사건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고 완벽하게 수사 방향과 맥락을 짚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면서도 사심 없이 사건 처리는 엄격했다. 특히 법원을 상대로 한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를 지휘하며 뒷말이 많았지만 엄격한 자기관리로 치우침 없이 사심 없이 본연의 역할을 다 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구속 수사하며 입법-행정-사법 등 권력을 모두 수사한 전무후무한 사례를 남기고 “조선제일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표적수사를 아닌 것처럼 포장하는 능력 뛰어나”
그렇다보니 검찰 내부에선 지나치게 냉정하다, 냉혹하다는 류의 평가도 있다. ‘엄친아’일수록 누군가는 시기와 질투가 없을 수 없다.
“대학 친구 중에 한 명이 군법무관으로 근무하다가 죽었다. 부대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새벽 3시쯤 들어가던 길에 관사 문 앞에서 쓰러져 잔 것이다. 5월이었는데 아침에 발견됐다. 그때 바로 비가 와서 저체온증으로 몇 시간만에 그렇게 된 것. 그래도 그게 부대원들이랑 회식 자리를 하고 죽은 거여서 공상처리가 됐다. 공상으로 처리되면 혜택이 상당하다. 매월 돈도 200만~300만 원 나오고. 가족들 취업 등 각종 혜택이 많다. 그래서 당시 든 생각이 ‘아 이거 비리가 많겠다’였다.”
친구의 죽음 앞에서도 수사에 대한 생각이 떠오를 만큼 워커홀릭이었다.

전형적인 특수부 검사라는 평가도 있다. 한 검찰 간부는 “표적수사를 표적수사가 아닌 것처럼 포장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며 “‘검찰이 하는 수사에 표적수사가 아닌 게 없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전했다.

청와대에서 같이 근무했던 김진모 전 대통령민정2비서관을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혐의로 구속 수사하면서 “자신을 키워준 검찰 선배의 등에 칼을 꽂았다“, ”배은망덕하다“는 비판도 받았다.

술을 마시지 않는 취재원은 기자에게 좋은 취재원은 아니다. 늘 맨정신으로 흐트러짐이 없어 속내를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형이어도 형이라 부를 수 없었다. 한동훈은 술은 마시지 않지만 언론과는 ‘제로 콜라’와 ‘햄버거’ 등으로 소통했다. 2019년경 그와 이야기를 하다가 상가를 가지 않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특히 검찰 출신 변호사들이 선배랍시고 유세 떠는 꼴이 보기 싫어서 안 간다. 가서도 그냥 인사만 하고 나온다. 친하면 뭐 상중에 두 번 세 번 가긴하지만 그때도 인사만 하고 나온다. 나는 술을 안 마시는데 가면 내 이름만 알고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술을 따라주면 내가 그걸 거절하면서 술 안 마시는 이유를 또 구구절절 설명해야 된다. 그것도 싫다.”
이렇게 그는 쿨(cool)한 검사였다. 그런 그가 대중들 눈에 띠기 시작했다. 2019년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조국 수사를 지휘한 것을 계기로 당시 윤석열 총장과 정권이 갈등을 빚기 시작했고 그 여파로 그도 좌천당했다. MBC는 ‘검언유착’이라는 프레임 하에 신라젠 의혹을 취재하던 채널A 기자와 그를 엮었다. 그는 억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당당하게 맞섰다. ‘후니’라는 애칭과 함께 팬클럽이 결성됐고 그의 안경과 머플러 등 패션과 어록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20년 7월 한동훈 당시 검사장이 대검찰청에서 열린 ‘검언유착’ 의혹 사건 수사심의위원회에 출석하기 위해 차량을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동아일보 DB
2020년 7월 한동훈 당시 검사장이 대검찰청에서 열린 ‘검언유착’ 의혹 사건 수사심의위원회에 출석하기 위해 차량을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동아일보 DB
몇 개월 뒤 대선이 끝난 뒤 윤석열 정부는 한동훈을 법무부 장관에 지명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명, 발표했을 때만큼 신선하고 임팩트 있는 순간이었다. 기수상 서울중앙지검장이나 검찰총장으로 임명되기에도 많이 빨랐지만 오히려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런 그가 이제 정치인의 길을 걸을지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제 그는 더이상 ‘검사 한동훈’이 아니다.
다음주 목요일(12일) 2화로 이어집니다. ‘정치인 한동훈’에 대해 다룰 예정입니다. 쓰다보니 날이 좀 무딥니다. 잘나갔지만 역경을 딛기도 한 ‘검사 한동훈’에 대한 비판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치의 영역은 보다 냉정합니다. 2화에선 날을 좀 더 세우겠습니다. 댓글을 남기시면 한 장관에 대해 궁금한 점 등을 속시원하게 풀어드리겠습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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