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민심]“도어스테핑, 하지마 그냥”의 두 가지 의미[데이터톡]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3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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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a Talk

데이터가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시대, 흩어져 있는 데이터를 모으고 씨줄날줄 엮어 ‘나’와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정보를 만들어 드리는 동아일보 온라인 전용기사입니다.



동아일보의 온라인 설문조사 ‘금요일엔 POLL+(www.donga.com/news/poll)’에는 매회 평균 3만 여 명이 설문에 응하고 의견을 달며 열띤 토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데이터톡은 POLL+ 설문 결과에 포털 기사의 댓글 분석을 추가해 민심의 지표를 알아보는 ‘댓글민심’ 코너를 매주 토요일 선보이려고 합니다.

이번 주 POLL+ 이슈는 윤석열 대통령의 도어스테핑 중단 조치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윤대통령의 ‘도어스테핑 중단’ 결정이 잘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3만842명이 응답했습니다. 89%(3만954명)가 “잘했다”고 한 반면 “잘못했다”는 응답은 10%(3475명)에 그쳤습니다. ‘잘했다’는 독자는 “대통령의 흠만 잡으려는 기자들 앞에 서서 좋은 말을 해봐야 소용없다”는 의견을 전했습니다.
● ‘슬리퍼’는 ‘예의 없음’을 의미
좀더 다양한 독자층이 접속하는 포털 사이트에서 댓글 민심은 어땠을까요? 데이터톡은 대통령이 도어스테핑 중단을 선언한 11월21일부터 12월1일 기간 중 도어스태핑 중단을 다룬 기사와 해당 기사에 달린 댓글을 네이버 뉴스 섹션에서 끌어와 분석을 시도했습니다. 분석 대상은 기사 278개, 댓글 1851개 입니다.

댓글 분석에 흔히 사용되는 기법이 ‘연관성 분석’입니다. 한 문장, 혹은 한 단락 안에서 특정한 두 단어가 자주 등장하면 두 단어의 연관성이 높다고 할 수 있는데요, 도어스테핑 댓글을 뜯어보니 “슬리퍼-기자” 단어 조합이 상위에 올라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슬리퍼’와 ‘기자’가 함께 언급된 댓글이 많았다는 의미죠. ‘슬리퍼’ 단어빈도 역시 상위 10%에 속해 있을만큼 ‘슬리퍼’는 이번 사태의 주요 키워드였습니다.

‘기자-슬리퍼’ 단어 조합이 연관성 높은 단어조합 9위에 올라있다. ‘용산-소통’,  ‘그냥-기자’, ‘그냥-대통령’, ‘언론 탄압’조합도 상위에 올라 있다.
‘기자-슬리퍼’ 단어 조합이 연관성 높은 단어조합 9위에 올라있다. ‘용산-소통’, ‘그냥-기자’, ‘그냥-대통령’, ‘언론 탄압’조합도 상위에 올라 있다.

‘슬리퍼’ 단어를 사용한 댓글들은 대개 ‘기자의 예의 없음’을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것들입니다.
-zigu**** 기자가 기본 예의도 없이 슬리퍼 질질 끌고 시비 터니까 중단 할 수 있지
-ykw0**** 슬리퍼 끌고 와서 쌈질하겠다는 말투와 태도! 이게 기자냐?
슬리퍼처럼 사소한 것에 연연하는 것이 ‘쪼잔해 보인다’, ‘괜한 트집 잡는다’는 의견도 없지 않았지만 이런 의견은 2~3개에 그쳤습니다.
kweo**** 슬리퍼 신은 기자들 한둘이 아니더만. SNS에 사진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트집 그만 잡고. 다른 언론사들 어떻게 하나 한번 보겠다. 이건 전형적인 언론길들이기 언론 탄압인데.(하략)
● “하지 마, 그냥”은 누구를 탓하는 말?
‘그냥’이라는 단어가 언급된 단어 조합도 연관성 상위에 올라있습니다. ‘그냥’은 “하지 마”라는 말과 함께 주로 쓰였는데요, 우리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고 더 이상 신경쓰고 싶지 않을 때 툭 내뱉듯 “하지마, 그냥”이라고 하죠.

‘그냥’은 ‘기자’, ‘대통령’과 함께 자주 등장했다.
‘그냥’은 ‘기자’, ‘대통령’과 함께 자주 등장했다.

그런데 ‘그냥’이 ‘기자’, ‘대통령’과 각각 쌍을 이뤄 여러 차례 언급된 점이 눈길을 끕니다. “하지마, 그냥” 앞에는 보통 “이럴 거면”이라는 조건문이 축약돼 있는데, 이 조건문에 갈등의 원인 제공자가 ‘기자’라는 의견과 ‘대통령’이라는 의견이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죠.
step**** 대통령이 문제가아니라 기자들 수준이 저질이라 도어스테핑이 의미가 없다. 질문도 싸우자는 식의 말투의 시장 잡배수준. 그냥 안 하는 게 답이다“
이런 의견은 “MBC에 밀리지 말라”는, 윤 대통령 지지층의 주문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반면 아래 의견은 “국민을 더 이상 실망시키지 말고 도어스테핑도 중단하라”는 비지지층의 주문으로 해석됩니다.
ybr8****그냥 하지 않았으면 한다는게 대부분의 국민들의 여론입니다. 나타나서 문제만 일으키는 모습을 국민들은 보기가 싫다는 것입니다.
데이터톡은 이번 분석에서 댓글민심이 어느 쪽을 더 무겁게 질책하는지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포털 기사 댓글에 특정 집단의 의견이 과도하게 반영돼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단어 연관성만 살펴봤습니다.
● ‘용산’은 ‘소통’의 상징이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용산-소통’ 단어 조합입니다. ‘용산’을 언급한 댓글은 대개 “계속 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는데 여기에는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긴 것이 소통 강화를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gyu9**** 소통하려고 용산 간 거 아니었냐?
-ring****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용산으로 간 거라더니, 아무도 못 보게 아예 셔터 내려버리는 거냐?
용산의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시민, 기자들과의 접촉이 많은 ‘소통의 대통령’이고 도어스테핑은 용산 시대 개막의 상징이니 중단해서는 안된다는 메시지입니다.

‘용산-소통’ 조합보다 2단계 아래 랭킹된 ‘언론–탄압’ 단어조합은 대통령의 ‘불통’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skyj**** 자유를 강조하던 대통령이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는 대통령이라니 전혀 앞뒤가 안 맞네요. 윤석열 대통령이 생각하고 말하는 자유는 도대체 무엇인가요?
hgju**** 문대통령이 독재고 불통이라고 떠들던 국힘아, 제멋대로 용산 이전, 언론탄압, 무책임, 여론무시, 영수회담도 안하는 윤석열은 뭐라고 할래? 독재에 불통은 너희가 하는 것 아니니?
우리는 상대방과 화해, 화합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 때 “하지마, 그냥”이라고 말해 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도어스테핑이라는 새로운 소통 방식을 이어가려는 노력이 더 이상 필요치 않은 것은 아니겠죠. 네티즌은 “하지마, 그냥”이라고 했지만 여기에 담긴 민심은 정말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닐 겁니다. “하지마, 그냥” 앞에 있는 “이럴 거면”이라는 조건문을 잘 해석한다면 현명한 해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김현지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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