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이냐 권력눈치냐’… 정권 수사 기로에 선 김오수

이태훈 기자 입력 2021-06-14 11:55수정 2021-06-14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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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대폭 제한하는 조직개편안에 반대하며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충돌했던 김오수 검찰총장이 당면한 ‘정권 수사’ 처리 국면에서 어떤 리더십을 발휘할지 법조계와 정치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김 총장이 검찰 인사와 조직개편안 논의 과정에서 청와대와 법무부에 이견을 제시한 것이 ‘오픈 게임’이라면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의혹과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에 연루된 정권 핵심 인사들의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지휘권 행사는 김 총장의 권력 독립 의지를 가늠하는 ‘본 게임’에 해당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검찰의 원전 수사는 현 정부의 대표 국정과제로 추진된 탈원전 정책과 직결돼 있고, 김학의 수사는 이광철 대통령민정비서관 및 조국 전 대통령민정수석 등 정권의 핵심 인사들이 수사 선상에 올라 있어 청와대와 여권이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원전 수사를 해온 대전지검 수사팀은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채희봉 전 대통령산업정책비서관,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에 주도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결론짓고 이들 3명에 대한 기소 의견을 대검에 보고한 뒤 최종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청와대 윗선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수원지검 수사팀은 이 비서관을 기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대검에 보고한 상태다.

김오수 검찰총장이 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김부겸 국무총리 예방 후 청사를 나서며 기자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21.06.09.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폭발성이 강한 두 사안 모두 조남관 총장 권한대행에게 기소를 승인해 달라는 취지로 보고가 됐지만 신임 총장인 김 총장에게 공이 넘어와 있다. 정권 핵심 인사들이 연루된 사안의 중대성 등을 감안해 볼 때 한시적 역할인 권한대행보다 2년 임기를 시작하는 신임 총장의 결단을 통해 처리되는 것이 적절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특수통’ 검사이기도 한 김 총장도 취임 직후 두 사건의 수사 경과를 상세히 보고 받고 처리를 위한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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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총장이 정권 관련 사건 처리에서 ‘기소’로 결단을 내린다면 임기 말 문재인 정부와 대선 정국에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감사원 감사에 이어 검찰 수사를 통해서도 월성 원전 1호기를 조기 폐쇄하는 과정에 불법 행위가 있었다는 점이 확인되는 셈이 되고, 이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이었던 탈원전 정책의 근간이 크게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채희봉 전 산업정책비서관과 이광철 민정비서관이 기소된다면 두 사건의 불똥이 청와대 내부로 튀게 됨으로써 정권의 부담이 더 커지게 된다.
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김부겸 국무총리 예방을 위해 집무실로 이동하는 김오수 검찰총장이 . 2021.06.09. 사진공동취재단

대전지검과 수원지검 수사팀이 두 사건 관련자들에 대해 기소 의견을 낸 것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물적 증거와 관련자 진술을 확보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일부 법리 적용에선 대검과 일선 간의 이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사실상 총장의 결단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지금은 검찰이 인사 중이라 수사팀이 인사발령으로 영향을 받기 전에 수사가 마무리된 사람에 대해서는 사건 처리를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다.

10일 오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대강당에서 열린 검찰 고위간부 보직변경 신고식에서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검찰 고위 간부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2021.6.10/뉴스1 © News1
박범계 장관이 이번에 검찰 조직개편안을 추진하는 것도 부임 1년이 안 된 원전 수사팀장과 김학의 수사팀장을 교체해 정권 수사를 유야무야시키기 위한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야권에서는 하고 있다.

김 총장이 곧 있을 검찰 중간간부 인사 전에 두 사건의 관련자 기소에 대한 판단을 밀어붙인다면 여권 내부에선 거센 후폭풍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김 총장은 자신을 임명해준 문재인 정부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일선 수사팀과 호흡을 같이 하면서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는 형국이 될 수 있다. 반대로 기소 판단을 미루고, 중간 간부 인사가 나면서 대전지검과 수원지검 수사팀이 대폭 교체돼 정권 수사가 흐지부지된다면 일선 검사들의 반발과 함께 ‘방탄 총장’이라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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