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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정치

김정은 한미연합훈련 중단 요구에… 北美 사이 난감한 한국

입력 2021-01-15 03:00업데이트 2021-01-15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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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시대 D-5]<下> ‘파국-진전’ 기로에 선 남북관계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1차 남북 정상회담 당시 판문점에서 ‘도보다리’까지 산책한 뒤 벤치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두 정상은 배석자 없이 예상보다 긴 30분 동안 대화를 나눠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판문점=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남북관계 복원 조건으로 내건 것이 우리에겐 큰 난제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9일 공개된 8차 노동당 대회 사업총화(결산) 보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해온 방역·인도주의 협력을 “비본질적”이라고 일축한 뒤 “근본적인 문제부터 풀라”고 한 데 대해 이렇게 토로했다. 다른 관계자는 “근본적인 문제는 김 위원장이 밝힌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미국 군사무기 반입 중단 등을 가리키고, 이는 한미동맹과도 직결되는 문제”라고 했다.

김 위원장의 엄포에도 문 대통령이 11일 신년사에서 “멈춰 있는 북-미 대화와 남북 대화에서 대전환을 이룰 수 있도록 마지막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청와대 내부에선 대통령 임기가 1년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대화의 모멘텀을 찾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 정부는 방역 협력으로 시작해 식량지원 협력, 철도 협력으로 이어지는 3단계 구상을 내놓고 있지만 대북 제재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독자적인 남북 협력에 지나치게 속도를 낼 경우 북핵 문제에 원칙적인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제동을 걸면서 한미 간 파열음이 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청와대 협력 의지에도 “올리브 가지는 없었다”

청와대는 김 위원장이 남북관계에 대해 “(2018년) 판문점 선언 이전으로 되돌아갔다”면서도 “남조선(한국) 당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다시 3년 전 봄날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한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미국 행정부 교체기에 북한이 도발을 하지 않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김 위원장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관망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정부의 다른 당국자들도 “강 대 강, 선 대 선” 등 김 위원장의 대미 메시지에 대해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계속해서 해온 말들을 총정리한 수준”이라고 했다.

우리 군이 13일부터 괌 인근 해상에서 미국 주도로 시작된 다국적 대잠수함 훈련인 ‘시드래건(Sea dragon)’에 불참한 것도 이런 정부 내 기류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군은 지난해 해군 해상초계기(P-3C)를 보내 처음으로 이 훈련에 참가했지만 올해는 빠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이 강조해온 방역, 인도주의, 개별 관광 카드를 사실상 거부한 데 대해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북한이 원하는 남북 경제협력이나 대규모 투자는 대북 제재에 저촉될 수 있어 북한 비핵화 진전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요구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은 한미동맹 사안이라 정부 혼자 결정할 수도 없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제안한 구상도 방역 등 인도적 협력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대북 제재 상황 속에서 인도적 협력 외에 새로운 카드가 마땅치 않다”며 “현재로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고리로 남북관계 개선 모멘텀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브루스 클링너 미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동아일보에 보낸 이메일에서 “북한을 향한 문 대통령의 아첨(obsequiousness)이 모욕과 위협, 대화 일축을 줄이는 것으로 연결되지 못했다”며 “당 대회 전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예상했던 ‘올리브의 가지’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 독자적 남북 협력 과속 땐 美 제동 직면 가능성

북한의 비핵화나 핵능력 감축 등에 대한 분명한 약속이 없는 상황에서 한국이 대화의 모멘텀을 살리겠다며 독자적인 남북 협력에 나설 경우 바이든 행정부 초기 한미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소식통은 “트럼프 미 행정부의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도 지난해 한국을 방문해 ‘남북관계가 비핵화와 보조를 맞춰야 한다. 너무 많이 나아가지 말라’는 취지로 얘기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대화를 중시하지만 제재와 압박으로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겠다는 구상을 가진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남북관계 과속에 대한 경계심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것.

특히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북한과의 협상 패턴을 잘 아는 국무부 출신 베테랑 외교관들이 외교안보 라인을 장악하고 있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설득해 협상에 나서게 할 수 있었던 때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 바로 한미가 대북 정책에서 이견을 보여 동맹이 약화되거나 균열이 생기는 것”이라며 “한국 정부가 한미 연합훈련 중단 등 북한이 요구한 부분을 계속 밀어붙이면 동맹관계가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외교부 당국자는 “북핵 문제의 시급성은 바이든 행정부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는 대로 가능한 한 빨리 긴밀하게 협의해 가장 효과적인 대북 정책 방향을 함께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박효목 tree624@donga.com·권오혁 기자·윤상호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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