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박순철 “정치적 중립은 생명, 라임 사건 철저 규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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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10월 23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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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철 전 서울남부지검장. 뉴시스
박순철 전 서울남부지검장. 뉴시스
‘라임 사태’ 수사를 이끌다 22일 사의를 표명한 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56·사법연수원 24기·사진)은 23일 “정치적 중립은 준사법기관인 검찰에 생명과도 같은 것임을 강조한다”며 “검찰의 정치적 중립의 의미를 가슴에 새기고 이를 수호하는 데 매진해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 지검장은 이날 퇴임사를 통해 “검찰이 안팎으로 직면한 많은 어려움에 대처하여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무거운 짐을 남기고 홀로 떠나는 송구함을 금할 수 없다”며 “어떠한 외풍에 시달려도 우리 모두가 자기의 자리에서 각자의 길목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차가운 시선에 위축되는 일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나, 모두가 용기를 잃지 마시고 서로 마음과 지혜를 모아 한마음으로 단합하여 어려움을 슬기롭게 헤쳐나가시기를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라임자산운용 관련 사건 수사에 대해선 “그 실체를 철저하게 규명하여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수사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유념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박 지검장은 전날 “정치가 검찰을 덮어버렸다. 검찰총장 가족 등 관련 사건에 대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 지휘는 납득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추 장관은 하루 만인 이날 박 지검장의 후임으로 이정수 대검찰청 기획조정 부장(51·사법연수원 26기)을 임명했다.

장연제 동아닷컴 기자 jeje@donga.com
제18대 박순철 검사장 퇴임사

I

사랑하는 서울남부지검 가족 여러분!
저는 오늘 26년간 몸담은 검찰을 떠납니다.
검찰 조직에 몸을 담은 순간부터 만나고 헤어
지는 것에 익숙해 왔는데, 이제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을 보낸 검찰을 떠나게 되니 아쉬움이
앞서지만,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들만 마음에 품고
떠나려 합니다.

그동안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신 여러 간부님들,
그리고 검사, 수사관, 실무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의 노고와 정성
으로 제가 무탈하게 공직을 수행하고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II
저는 1995년 3월 1일 검사로 임관한 후 이곳
서울남부지검에 부임하여 오늘까지 26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대한민국의 검사임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명예로 생각하면서, 국가와 검찰을 위해
나름대로 사명을 다 해 한 길을 걸어 왔습니다.
저는 그 동안 검찰에서 많은 혜택을 받았습니다.
특수·금융 분야 수사, 검찰제도 분야, 법조인
양성 분야 등 법무 · 검찰 전반을 두루 경험할
기회를 가졌고, 그 중에서 특히 새로운 분야의
개척에 기여할 수 있었음을 매우 뜻 깊게 생각
합니다.

대표적으로,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부와
금융위원회 근무를 통해 쌓은 실무 경험을 토대로
금융범죄를 형사법적 측면에서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분석, 정리하여 증권법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이를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행위의 이해』라는
책으로 발간하여 이론과 수사실무 양 측면에서
금융범죄 분야의 길잡이를 마련한 것,
서민들에게 극심한 피해를 야기하는 보이스
피싱 범죄와 인터넷 도박 범죄에 대하여 최초로
범죄단체로 의율하여 기소함으로써 엄단한 것,
법무부 법조인력과장으로 근무하면서 제1회
변호사시험을 성공적으로 시행함으로써, 현재까지
총 9회의 변호사시험을 통해 많은 법조인이 배출

되는 등 법학전문대학원을 명실상부한 최고의
법조인 양성 기관으로 정착시키는 토대를 마련한 것,
국무조정실에 파견되어 아파트 관리 비리,
유치원·어린이집 관리 비리 등 국민 생활 밀접
분야의 부정부패를 단속하고, 전국의 대형 국책사업
현장을 상시 점검하여 2,400억 상당의 예산 낭비를
적발하고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한 것 등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오랜 기간 수많은 사건과 숱한 상황 속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찾아내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어떤 결정이 올바르고 합당한지 고뇌하면서 ‘法’이
의미하는 ‘물 흐르듯이, 사건의 결에 따라 있는
그대로’ 수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 왔습니다.



긴 여정을 거쳐 저의 마지막 임지인 서울남부
지검에 근무한 지난 2개월 동안 정치와 금융의
중심지를 관할하는 검찰청의 수장으로서, 언론과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일들로 인해 잠 못 이루는
나날들도 많았지만,
우리 서울남부지검 구성원들의 책임감 있는
헌신적인 자세에 큰 감명을 받았고, 검찰인으로서
자긍심에 가슴 뜨거웠던 순간도 많았습니다.



이제 여러분과 작별의 시간을 앞두고, 정든
검찰을 떠나면서 여러분께 몇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근무하는 동안 검사는 주권자인 국민
으로부터 검찰권을 위탁받아 행사하는 것임을 한
시도 잊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국민을 위해 국가의 법질서를 지키고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우리 검찰의 존재 이유
이므로, 오로지 국민의 입장에서 국민을 위해
수사권을 행사하고, 그 과정에서 국민의 인권
보호에 한 치의 소홀함도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형사사법의 권한은 투명하고
공정하게 적법한 절차에 따라 행사되어야 하고,
그 실체가 정의로워야 함은 물론, 국민에게도
정의롭게 보여질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바르게 잘 하는 국민의 검찰’로 거듭나
다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검찰은, 밖으로는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안으로는 구성원 사이의 소통과
단합에 어려움을 겪는 위기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또한 내년 1월 1일부터는 형사사법 체계가 전면적
으로 개편되어 시행될 예정에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검찰은 직접수사를 줄이고 사법
통제를 더욱 충실히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국민의 인권 보장에 최선을 다 하는 준사법기관
으로서의 역할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 행정경찰과 사법경찰의 분리, 실효적인
자치경찰제 도입, 정보경찰 개혁 등 후속 작업들도
함께 진행되어,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국민이
범죄로부터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같이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현재와 같은 일원화된 수사기관 체제에서
탈피하여 증권, 경제, 마약 등 각 분야별로 전문
수사기관을 설치함으로써, 변화된 수사 환경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국가 수사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을 고려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중립은 준사법기관인 검찰에
생명과도 같은 것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중립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하며 실천할 때 비로소
얻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치와 언론이 특정 사건에 있어 각자의
시각으로 만들어진 프레임을 통하여 수사과정을
바라보는 현재의 상황은 매우 안타깝고 우려스럽기
까지 합니다. 검찰 구성원 여러분들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의 의미를 가슴에 새기고 이를 수호
하는 데 매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검찰 가족 여러분!
우리 검찰이 안팎으로 직면한 많은 어려움에
대처하여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무거운 짐을 남기고 홀로 떠나는 송구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외풍에 시달려도 우리 모두가
자기의 자리에서 각자의 길목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차가운 시선에 위축되는 일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나, 모두가 용기를 잃지 마시고
서로 마음과 지혜를 모아 한 마음으로 단합하여
어려움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시기를 기원합니다.

아울러 현재 국민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현안 사건에 있어서도 그 실체를 철저하게 규명
하여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수사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유념하여야 할 것입니다.
함께 한 추억과 보람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밖에
서도 저는 늘 검찰을 응원하겠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20. 10. 23.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검사장 박 순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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