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극일’ 내세운 文, 올해는 ‘협의’ 강조… 한일갈등 악화 차단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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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경축사]
文대통령, 8·15 對日 메시지 수위 조절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5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이날 행사에 참석한 애국지사들과 함께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우리 정부는 언제든 일본 정부와 마주 앉을 준비가 돼 있다”며 “지금도 협의의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5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이날 행사에 참석한 애국지사들과 함께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우리 정부는 언제든 일본 정부와 마주 앉을 준비가 돼 있다”며 “지금도 협의의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극일’을 내세운 지난해와 달리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을 자극하지 않고 대화를 제안한 것은 한일 갈등의 골이 더 이상 깊어져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일본제철이 우리 법원의 자산 압류명령에 즉시 항고해 실제 배상을 위한 현금화 시점이 상당 기간 늦춰진 만큼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가 또다시 일본의 수출 규제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등으로 불똥이 번지는 걸 막기 위한 메시지라는 것이다.

○ 극일(克日) 메시지 없이 공동 노력 강조

문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서 “대법원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의 유효성을 인정하면서도 개인의 ‘불법행위 배상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며 기존 한국 정부의 원칙을 거듭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받은 피해자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인 이춘식 씨를 거론하면서 “한 개인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 결코 나라에 손해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것”이라고 말해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인식도 재차 내비쳤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일본의 국가적 책임을 드러내 강조하기보다 인도적 차원에서 해법을 찾기 위한 한일 양국의 노력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삼권 분립에 기초한 민주주의,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국제법의 원칙을 지켜가기 위해 일본과 함께 노력할 것”이라며 “한 사람의 인권을 존중하는 일본과 한국의 공동 노력이 양국 국민 간 우호와 미래협력의 다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고 문제 해결에 피해자의 동의가 가장 중요하다는 원칙을 재확인하면서도 대화의 문은 열어둘 테니 일본이 피해자의 인권을 고려해 문제 해결에 나서 달라는 제안인 셈이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은 일본의 수출 규제를 언급하며 “오히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로 도약하는 기회로 만들었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협력으로 ‘소재·부품·장비의 독립’을 이루며, 일부 품목에서 해외투자 유치의 성과까지 이뤘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문 대통령의 올해 광복절 경축사는 지난해에 비해 유화적인 톤이 두드러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경축사에서는 “이웃나라에 불행을 주었던 과거를 성찰하라” “지금이라도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고 일본을 꾸짖으면서 “일본을 뛰어넘는 길” 등 극일을 전면에 내세웠다. 반면 올해에는 “(강제징용 배상판결 갈등의) 원만한 해결방안을 일본 정부와 협의해왔고 지금도 협의의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다”며 일본과의 협력, 협의 등을 강조해 대일 메시지 수위가 상당히 달라졌다. 이를 두고 청와대 안팎에선 문 대통령이 한일관계의 파국을 피하되 일본 측의 대승적인 양보를 기대하면서 “해결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 “구체적 해법 없어” vs “악화만 막아도 의미”

하지만 문 대통령이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않은 채 대화만 촉구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1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이 ‘대립 일변도는 피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며 메시지 수위를 조절했다”면서도 “갈등의 실질적 해소를 위한 입장 변화는 아직 없어 보인다. 문을 살짝 열고 슬쩍 밖을 내다보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한일 갈등의 ‘레드 라인’으로 통하는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따른 일본 기업 자산 현금화 시점이 예상보다 늦어질 것으로 최근 평가되면서 정부가 현 단계에서 한일 갈등을 풀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자산 최종 매각을 위한 감정평가가 늦어지고 패소한 일본제철이 자산 압류결정에 불복해 항고하는 등 실제 현금화는 올해를 넘길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일각에선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대한 해석을 두고 한일 양국이 평행선을 달리는 상황에서 유화적 대일 메시지로 상황 악화를 막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황형준 constant25@donga.com·한기재 기자
#문재인#광복절경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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