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호정 “국회는 일터, 전철타고 7시전 출근…꼰대정치 깨려면 청년답게”

뉴스1 입력 2020-08-09 07:13수정 2020-08-09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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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 카페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20.8.3/뉴스1 © News1
춤을 추라고 했다. 신입사원들의 장기자랑이었다. 전사원 워크숍 프로그램의 하나였고, 연습도 시켰다. 왜 춤을 춰야 하냐고 항의하고 싶었지만, 처음부터 불평 불만자로 찍힐 것 같아 참았다. 일단 무대 위에 올라가 춤을 췄다. 불쾌함이 목까지 차올랐다. 마침 뒤풀이 시간.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인사팀 간부에게 다가갔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다가 오셨다고 이야기 들었는데, 못된 것만 배워서 오셨네요.” 순간 그 이야기를 들은 간부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통쾌했다. 수습사원이 간부에게 ‘못된 것’이라는 용어를 쓰며 항의한 것이다. 결국 그 이후 춤 장기자랑은 워크숍 프로그램에서 사라졌다.

◇“신입사원 장기자랑 왜 해야 하냐” 인사팀 간부에 돌직구

21대 국회의원 가운데 최연소(1992년 8월 9일생, 오늘이 생일이다)인 정의당 류호정 의원(28)이 사회생활을 하며 기성 세대, 그러니까 이른바 ‘꼰대’들에게 한방 먹인, 가슴 떨린 기억이다. 그는 역대 여성 국회의원 가운데 최연소다. 수치스러운 기억도 있다. 성희롱 관련이다.

지난 3일 오후 합정역 한 북 카페에서 만난 류 의원은 자신이 겪은 성희롱 경험을 되새기며 ‘미안해’ 했다. 자신이 용기가 없었고 비겁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불편한 기억이지만 이야기할 수 있나?” 조심스럽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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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초년생이었고 막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회사 내에서 성희롱을 당했다. 참았다. 이것도 사회생활의 일부라고 여겼다. 나만 참고 넘어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여자 후배가 비슷한 성희롱 피해를 당한 것을 나에게 하소연했다. 내가 침묵해서 이 일을 겪지 않아도 될 사람이 겪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배에게 너무 미안했다.

류 의원은 정치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지 1년 만에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정의당 비례대표였다. 20대 후반의 청년, 여성이기에 많은 시선을 받아야 했다. 그는 그것을 ‘낯섦’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런 낯섦에 맞서 하나하나 돌파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했다. 우선 청바지를 예를 들었다. (이 인터뷰는 류호정 의원이 원피스 복장으로 국회에 등원해서 복장 파문이 일어나기 이틀전 진행됐다.)

-17년 전 당시 유시민 국회의원이 의원 선서를 하려고 정장이 아닌 흰 바지(속칭 ‘백바지 사건’)를 입고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서자 일부 의원들은 국회를 모독한다고 퇴장까지 했고, 결국 하루 뒤 정장 차림에 의원선서를 해야 했다. 나는 처음부터 자유롭게 입었다. 때로는 반바지를 입고, 노란색 백팩을 메고 등원했다. 흰 티셔츠를 입고, 청바지를 주로 입었는데,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등원한 지 한달 만에 한 공중파 뉴스 시간에 유시민 전 의원의 흰 바지와 나의 청바지를 비교하며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보도했다. 이제 청바지 차림은 낯선 것이 아니다. 진짜 낯선 것은 곳곳에 있다.

◇주로 흰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 등원…경비원이 여러차례 제지

그는 국회 본회의장을 출입하며 경비원에게 제지당한 적이 여러 번 있다고 했다.

-경비원은 내가 국회의원이 아닐 거라고 여겨 붙잡곤 한다. 국회의원 배지는 거의 안 달고 다닌다. 혹시 내가 배지를 안 달아 걸렸나 생각했다. 다른 젊은 여성 의원들께 이 이야기를 하니까 그 의원들은 배지를 달아도 걸린다고 말했다. 아직 젊은 여성 정치인이라는 게 낯선 탓이다.

궁금했다. 하루를 어찌 시작하는지. 혹시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의 무게가 젊은 그를 억누르는 것은 아닌지. “하루 일과를 시작할 때 산뜻한 마음인가? 아니면 무거운 마음인가?”

-국회에 출근한 지 두달 정도 되니까 습관처럼 의원 생활이 몸에 밴다. 보통 새벽 5시 반 정도에 일어나서 7시 전에 여의도에 도착한다. 우리 사무실에 내가 제일 먼저 나온다. 오전엔 주로 공부를 한다. 뉴스도 자세히 보고 분석한다. 9시부터 본격적으로 일과를 시작하는데 이런 사이클이 이미 익숙해졌다. 일어날 때 나의 마음이 어떤지 살필 틈이 없다.

출근시간이 너무 일러 그는 수행비서의 차를 이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미안하기 때문이다. 전철을 타거나 함께 사는 어머니가 운전하는 자가용 차를 타고 출근한다고 한다.

뭔가 다를 것 같았다. 젊다는 것은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것이 자연스럽고 본능적이다. 그래서 물었다. “기존 국회의원들과 다른 업무 형태가 있나.”

-의원실 내부에 어떤 협업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의원과 보좌관 사이에 원활한 소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의원들은 카카오톡이나 라인 같은 메신저 기반으로 소통한다. 이 시스템은 빠른 소통이 장점이긴 하나, 흘러간다. 검색 기능도 없다. 여러가지 일을 한꺼번에 진행해야 하는데 헷갈리지 않게 대화방을 여러개 만드는 것도 번거롭다. 나는 ‘두레이’라는 협업툴을 쓴다. 메일과 메신저, 업무관리, 자료 공유가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올인원 협업도구다. 조금 더 효과적으로 업무를 관리하고 분배하기 위해 협업툴을 사용한다. 아이티(IT) 업계에서는 일상화된 것이지만 국회에서는 흔치 않다.

그는 대학(이화여대 사회학과)을 졸업하고 컴퓨터 게임회사에 근무했다. 노조가 없는 회사에 입사해서 노조를 만들려다가 퇴사했다. 권고사직을 당했다. 그 사건이 그가 노동운동에 뛰어들게 만들었고, 결국 국회의원으로 이어졌다.  

“무엇이 당신을 정치에 투신하게 만들었나?” 아마도 그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일 것이다. 역시 한 단어 빠질 것이 없이 명료하게 답변한다.

-평범하게 살았다. 그런 삶을 요구받았다. 학교에서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 가서, 좋은 배우자 만나 결혼해서 애 낳고 잘 살라는 평범한 삶을 요구받았다. 그러나 취직했더니 상황은 달랐다. 침묵을 강요당했다. 부조리가 많았다. 참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혼자 이야기를 하니까 회사 내에서 이상한 사람이 됐다. 장시간 노동에 수평적이지 않은 소통 문화 등등. 노동조합을 만들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거 같았는데 그것도 부족했다. 민주노총에 잠시 있었는데 국회 앞에서 집회를 했다. 마이크를 들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문득 노동자 목소리가 국회의 담을 넘어서 들어가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저 안에 들어가서 하면 안될 이유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국회의원이 될 결심을 했다. 불확실성에 몸을 던질 용기가 있었다.

그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에 들어가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선전 홍보부장를 맡았고, 정의당 성남시 위원회 부위원장, 정의당 경기도당 여성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국회에 들어왔다. 2~3년간의 짧은 기간이었다.

◇ “한국 노동운동의 홍보물은 류호정 이전과 이후로 구분”

그는 화학섬유 노조의 선전 홍보부장을 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섬식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를 줄여 친근하게 부른 것이다. ‘네이버는 파업을 하게 되나요?’라는 영상은 쟁의행위, 파업 등의 노동법 용어를 상세하게 설명해 노동운동 교육 영상으로 활용됐다. 한국음료의 파업 홍보 동영상에서는 코카콜라 등 한국음료가 만드는 음료병을 이용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노동조건이 나빠졌는지 소개했다. 병따개는 노조, 병뚜껑은 회사로 표현했다. 감각이 신선했고, 젊었다. 한 노동운동가는 “한국 노동운동의 홍보물은 류호정 이전과 류호정 이후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보 업무를 따로 공부했나?”

-내 자랑하려니까 어색하다. 민주노총 화섬노조에서 상근자로 일했을 때 오히려 노조 문화가 낯설었다. 기존의 홍보물 디자인과 구호 등이 관성적이었다. 고민을 했다. 노동은 누구나 하는데, 노조가 멀게 느껴졌다. 일상적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홍보라고 생각했다. 홍보 기술은 개인적으로 익혔다.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이제 법을 만드는 것이 그의 주된 노동이 됐다. “어떤 법안을 준비 중인가?”

-곧 ‘비동의(非同意) 강간죄’를 발의한다. 1호 법안인 셈이다. ‘강간’의 구성요건을 ‘상대방의 동의가 없는 경우’, ‘폭행,협박 또는 위계, 위력인 경우’, 그리고 ‘심신 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한 경우’로 유형화해 형벌을 규정한다. 강간과 추행에 대한 형량도 강화한다. 기존의 강간죄 성립 요건은 폭행과 협박을 구성 요건으로 한다. 동의있는 강간이라는 게 있을 수 없다. 이미 비동의 강간죄는 미국의 11개주와 유럽 여러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적용할 때가 됐다.

“입법 활동의 의미가 무엇인가?”

-우리의 일상을 바꿔내는 노동이라 생각한다. 법안이라는 것이 딱딱하긴 하지만 우리의 곁에 있는 것이다. 완벽한 세상이라는 건 없지만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아가고 있고, 그 과정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참여할 수 있다는 게 멋진 일이라 생각한다. 행복한 일이다.


◇박원순 조문 거부, 당내 갈등 아닌 토론의 시작 의미

그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장례식에 조문을 하지 않겠다고 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정의당 당원 1000여 명이 탈당했고, 심상정 대표가 사과를 하기도 했다. 그에게 조문 거부는 어떤 의미였을까?

-심상정 대표는 메시지 자체를 사과하지 않았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상처받은 분들이 있다면 사과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언론 보도 제목 자체가 조문 안 가겠다는 점이 부각돼서 많은 목소리가 오고 갔다. 당내 갈등이라기보다는 토론이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내가 글을 쓸 때 조금 더 설명을 많이 하고, 좀 더 친절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청년 정치’는 그에게 던져진 큰 화두다. 그는 청년 정치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을까?

-청년 정치는 청년들이 설명이 필요없는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평범한 삶에서 벗어났을 때 주변에서 너 왜 그렇게 살아? 이상한 거 아냐? 결혼을 왜 안해? 정체성이 왜 그래? 질문한다. 청년들은 평범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경쟁하면서 살아야 한다. 설명하지 않고서도, 내가 나답게 살아갈 사회, 내가 어떻게 살아가든지 손가락질하지 않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기존(꼰대) 정치에서 벗어나 청년 정치를 하려면 청년들이 하던 대로 하면 될 것이다. 아무리 50대 정치인이 따라하려 해도 안될 것이다. 20대의 눈으로, 청년의 눈으로 세상 바라보고 바꾸고자 행동하면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노동문제는 내가 국회에 들어온 주요 요인 중 하나였다. 정의당에서 추구하는 포괄임금제 폐지 관련 내용도 있고 일과 삶의 균형을 강조하는 ‘워라밸’이 있는 삶도 있었다. 그러나 입법 문턱에 가서 비껴가는 단서조항이 달리는 모습을 보면 답답하다. 노동 존중 정부가 되도록 다시 처음부터 했으면 좋겠다.

주택문제가 큰 이슈가 됐다. 그는 현재 반전세에 산다.

-주택 관련 법안이 본회의에서 토론없이 일방적으로 통과되고 있다. 여야 모두 소통에 문제가 있다. 나는 지상 원룸에서 반전세로 산다. 보증금 5000만원에 30만원 월세다.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와서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30만원인 고시원에서 살았다. 4층 건물인데 엘리베이터도 없었다. 그다음엔 반지하에서 살았다. 300에 30, 500에 40으로 쭉 살아왔다. 경제력이 조금씩 생기고 간신히 반전세로 옮겼다. 지금은 9.5평 정도 된다. 9평 정도는 돼야 사람이 살 만한 평수구나라고 느꼈다. 4평은 짐 놔두고 책상 넣으면 누울 자리만 생긴다. 서울의 1인가구 빈곤율이 비수도권에 비해 2배 이상 높다. 원룸에 대한 최소 주거기준이 보장돼 있지 않아 쪽방이 생겨난다. 최소주거기준에 대해 생각할 때가 됐다.

◇의원 세비 1000만원 수령, 버틸 수 없어 5000만원 융자

“국회의원 세비를 받으니 경제 형편이 좀 나아졌나?”

-지난달 세비 명세서를 보았다. 세전 1200만원에 세후 1000만원 정도였다. 정의당 비례대표이기에 세비 가운데 450만원을 특별당비로 낸다. 얼마 전 은행에서 5000만원을 빌렸다. 세비만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크게 웃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웃는 것이 버릇이라곤 하지만 솔직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웃음이다. 천성이 낙천적이라고 했다. 악플에 어찌 대응할지 궁금했다. 그는 오히려 보좌관들을 걱정했다. 정작 본인은 바쁘기에 댓글을 볼 시간이 없지만 보좌관들이 일일이 대응하는데 스트레스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어떤 정치인을 꿈꾸고 있을까? 고 김영삼 대통령은 최연소(26세) 국회의원 기록을 보유한 채 마침내 대통령이 됐다.

-필요할 때 곁에 있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평소에 정치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정치는 사회적 약자의 무기’라고 대답한다. 의원이 되고 보니 과연 권한이 크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다. 그 큰 권한을 이 사회의 투명인간들을 위해,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쓸 것이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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