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故박원순 사태에…“공황장애로 말하기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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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7월 13일 16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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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세상은 끔찍하다” 토로
“너무 많은 말을 해온 것 같다” SNS 중단 선언

서지현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부부장검사. 사진=뉴스1
서지현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부부장검사. 사진=뉴스1
“공황장애를 추스르기 버거워 한마디도 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미투 운동을 촉발시켰던 서지현 수원지검 성남지청 부부장검사가 13일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뒤늦게 입을 열었다.

법무부 양성평등정책 특별자문관을 맡고 있는 서 검사는 창원지검 통영지청에서 근무했던 지난 2018년 상관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해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박 시장 사건에는 침묵해 논란이 일었다.

서 검사는13일 오후 페이스북에 “인권변호사로서 살아오신 고인과 개인적 인연이 가볍지 않았다. 애통하신 모든 분들이 그렇듯 개인적 충격과 일종의 원망만으로도 견뎌내기 힘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개인적 슬픔을 헤아릴 겨를도 없이 메시지들이 쏟아졌다”며 ‘함께 조문을 가자’, ‘함께 피해자를 만나자’, ‘네 미투 때문에 사람이 죽었으니 책임지라’, ‘네 미투 때문에 피해자가 용기냈으니 책임지라’ 등의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13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고(故)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13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고(故)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이어 “한마디도 입을 뗄 수 없었다. 숨쉬기조차 쉽지 않았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말하는 분도, ‘피해자 옆에 있겠다’ 말하는 분도 부러웠다”며 “그 부러움조차 허용되지 않은 채 메시지는 더더욱 쏟아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어떤 분들은 ‘고인에 대한 기본 예의도 없이 무죄추정도 모르고 명복을 빌 수 있는 게 부럽다는 소릴 하냐’고 실망이라 했다. 저에게는 그리 저를 욕할 수 있는 것조차 얼마나 부러운 것인지 알지 못한 채…”라고 호소했다.

서 검사는 “어떤 분들은 ‘입장 바꿔 네 가해자가 그렇게 되었음 어땠을지 상상해보라’고 했다. 제가 그런 경우를 상상 안 해봤을까봐…”라며 “그 상상으로 인해 심장이 곤두박질치고 대책없이 떨리고, 그런 상황이 너무 거지같아 숨이 조여드는 공황장애에 시달려보지 않았을까봐…이 일이 어떤 트리거가 되었는지 알지 못한 채…”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제 자신의 송사조차 제대로 대응할 능력마저 부족함에도, 개인적으로 도착하는 메시지들은 대부분 능력 밖에 있었고, ‘함께 만나달라’는 피해자를 만나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아냥을 받고 의절을 당하기도 하고, 성직자의 부탁을 거절 못해 가졌던 만남으로 지탄을 받고 언론사와 분쟁을 겪기도 했다”고 부연했다.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 사진=뉴스1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 사진=뉴스1

아울러 “능력과 분수에 맞지 않게 너무 많은 말을 해온 것 같다”며 “제가 기적처럼 살아남았다는 것이 제가 가해자와 공범들과 편견들 위에 단단히 자리 잡고 서서 권력을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상태로라도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을 거라 믿으며 죽을힘을 다해 위태위태하게 매달려있다는 것을 다른 이들이 다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힘들다는 말을 하려는 것도 누구를 원망하려는 것도 아니다. 모두는 경험과 인식이 다르다”며 “극단적인 양극의 혐오 외에 각자의 견해는 존중한다. 모두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많은 기대를 해주시는 분들께 송구스럽게도 도져버린 공황장애를 추스르기 버거워 저는 여전히 한마디도 하기 어렵다. 한마디도 할 수 없는 페이스북은 떠나있겠다”며 “참으로 세상은 끔찍하다”고 토로했다.

서한길 동아닷컴 기자 stree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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