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태세 강화한다했는데…軍, ‘소형 보트’ 13차례 포착에도 이틀간 몰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5일 20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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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5월 충남 태안군으로 연이어 밀입국한 소형 보트 2척이 해상 감시장비에 포착됐지만 군은 이를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4일 추가로 발견된 고무보트까지 포함하면 한 달여 만에 서해 경계가 3번이나 뚫린 것이다. 게다가 해안 경계 책임이 있는 군과 해경 모두 고무보트를 발견한 주민 신고가 있기 전까지 이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지난해 6월 북한 어선의 ‘삼척항 노크 귀순’으로 뚫린 동해에 이어 서해 경계마저 허점이 드러나면서 군 대비태세에 대한 총체적 의구심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13차례 포착됐지만 이틀간 몰라
지난 4월과 5월 중국을 출발해 충남 태안에 도착한 밀입국 소형선 2척을 해안경계를 담당하는 군부대가 포착하고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합참은 “군은 이번 사안에 대해서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제반 경계나 감시, 추가적인 조치에 대해서 대비책을 마련해 면밀히 경계작전에 임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 News1
지난 4월과 5월 중국을 출발해 충남 태안에 도착한 밀입국 소형선 2척을 해안경계를 담당하는 군부대가 포착하고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합참은 “군은 이번 사안에 대해서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제반 경계나 감시, 추가적인 조치에 대해서 대비책을 마련해 면밀히 경계작전에 임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 News1

5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중국인 밀입국자 8명은 레저보트를 타고 지난달 20일 중국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항을 출발해 다음 날인 21일 오전 11시 23분경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방파제에 도달한 뒤 육상으로 도주했다. 이틀 뒤인 23일 주민의 신고로 뒤늦게 조사에 나선 군은 해당 보트가 해상 감시장비에 총 13차례 포착된 것을 확인했다. 해안레이더(6회)는 당시 근무자가 인지하지 못했고 해안감시카메라(4회)와 열상감시장비(TOD·3회)로 해당 보트를 실시간으로 확인했지만 근무자가 이를 낚싯배로 여겨 추적 감시하지 않았다. 군은 해상과 해안 경계, 해경은 밀입국자에 대한 감시 및 검거 임무를 담당하고 있다.

군과 해경의 조사 과정에서 4월 20일 의항해수욕장 해변에서 발견된 고무보트가 지난달 레저보트 밀입국과 동일한 방식으로 침투한 사실도 뒤늦게 밝혀졌다. 중국인 밀입국자 5명이 타고 온 이 보트는 중국 웨이하이항에서 일리포 해안 돌출구로 침투하는 과정에서 해상레이더에 3회 포착됐으나 근무자가 이를 보지 못했다. 뒤늦은 조사로 인해 해안감시카메라 기록도 저장기간(30일)이 지나 자동 삭제된 상태였다고 한다. 게다가 밀입국 시간대에 TOD는 녹화기능 부품이 고장 나 있었다. 합참 관계자는 “TOD 기능상 녹화된 영상을 임의로 삭제할 순 없다”고 말했다.

합참은 4일 태안군 마도 방파제 인근에서 추가로 발견된 고무보트 1척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감시경계를 소홀히 한 군 관계자들을 엄중 조치할 방침이다. 해양경찰청은 5일 ‘태안 보트’ 관련 초동대응 미흡 책임을 물어 하만식(51) 태안해경서장을 직위 해제했다고 밝혔다.
●1년 전 ‘삼척항 노크 귀순’ 판박이
국방부 청사. © News1
국방부 청사. © News1
군은 지난해 6월 ‘삼척항 노크 귀순’ 사건을 계기로 경계태세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사건 발생 5일 만에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또다시 비슷한 일이 반복되며 군 안팎에선 “사실상 1년 동안 아무것도 안 했다는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군은 보트 침입 사건이 웨이하이항에서 태안 해안으로 들어오는 신종 밀입국 루트로 이뤄졌고 시간대도 아침(오전 11시경)이라 감시 및 추적이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소형 보트가 들어올 당시 인근 해상엔 10여 척의 민간보트 및 어선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항적추적장치를 달 필요가 없는 2t 이하 보트만 하루에 수백 척”이라고 전했다. 또 두 차례 모두 해상에서 해군 함정 및 초계기, 헬기 등의 경계 작전이 이뤄지고 있었으나 경계 범위가 넓어 탐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번에 밀입국한 소형 보트들은 길이가 5m 이내로 삼척항 북한 어선(10m)보다 규모가 작지만 동해와 달리 서해는 파고가 낮아 해안레이더에 보트가 식별될 확률이 훨씬 높다. 근무태세가 이완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해안 감시장비 근무는 장비당 2명의 근무자(병사)가 배치돼 레이더 및 모니터를 지켜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지난해 6월 강원 삼척항 부두에 정박한 북한 어선도 해안 감시장비에 포착됐지만 군은 우리 어선으로 판단했다. 군 관계자는 “1년 전 장관의 대국민 사과가 무색해진 상황이다. 근무자의 단순 착오로 볼 게 아니라 전군 근무태세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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