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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정치

[中 탈북자 31명 전원 북송]기어코 死地로…

입력 2012-03-09 03:00업데이트 2012-03-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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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세계 여론에 밀리면 北 김정은체제 위태” 강행
“한국 측의 관심을 중요시할 것이고 오늘 예방 내용을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에게 전하겠다.”

중국 양제츠(楊潔지) 외교부장이 2일 청와대에서 탈북자 북송 중지를 요청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 대답이다. 그러나 중국은 한국 국민과 세계의 호소를 묵살한 채 탈북자 31명을 북송시켜 버렸다.

중국은 왜 그처럼 서둘러 강제북송을 강행했을까. 우선 이는 탈북자 문제에서는 어떠한 비난을 감수하고라도 절대 밀리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특히 탈북자 문제가 새롭게 출범한 김정은 체제를 위협할 중요한 변수라 보고 중국이 기존의 강경정책에서 물러날 경우 북한 체제까지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북한 체제가 붕괴돼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이 사라지거나 급속한 난민 증가로 동북지역의 치안이 마비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인권 문제에 대한 비난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특히 국방위원장이던 김정일이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지고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이 시작된 뒤로 탈북자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더욱 강경해졌다. 이 기간 양국 공안 수장들 사이에 빈번한 교류가 있었으며 중국은 국경에 철조망을 쳐주고, 전파탐지장비를 넘겨줬으며 중국 내 탈북 브로커들을 꾸준히 체포해 수감시켰다. 한국대사관에 진입한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보내주지 않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부터다. 김정일 사망 이후 중국은 북한의 아킬레스건을 탈북으로 보고 북한과의 공조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중국이 이번에 여론의 조명을 받아온 31명의 탈북자들을 서둘러 북송시킨 또 다른 이유는 과거의 학습효과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 등 국제사회는 그동안 탈북자 체포 소식이 전해지면 한동안 어느 정도 떠들었을 뿐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다시 잠잠해지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가 한국을 넘어 국제사회로 확산될 조짐이 보이자 서둘러 불을 끄기 위해 북송시킨 것으로 보인다. 비난받을 골칫거리를 계속 갖고 있어 여론의 뭇매를 맞을 바에는 빨리 북송시키는 것이 여론을 잠재우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과거에도 탈북자를 북송시키면 탈북자에 대한 관심과 여론이 급속히 식었기 때문이다. 특히 후진타오 주석이 26일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하기 전에 탈북자 이슈를 가라앉히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전략적 동기가 무엇이든 중국이 자국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최우선에 내세우며 어린아이와 노약자들까지 모두 죽음의 길로 떠민 것은 살인의 공범을 자임한 반인륜적 행위로 국제적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이는 유엔인권협약의 핵심조항인 ‘강제송환금지원칙(농르풀망 원칙)’을 거스른 엄중한 위반 사례로 국제사회의 정의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선 우선 탈북자에 대한 관심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비록 31명은 북송됐지만 아직도 중국에는 이름도 짓지 못한 생후 21일(8일 현재)된 아기를 포함해 수많은 탈북자가 수감돼 있다. 현재 중국에서 한 달 안에 북송될 위기에 처해 있는 탈북자는 300명에 이른다.

국제사회가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를 계속 이슈화함으로써 중국이 자신들의 국격 유지에 이 문제가 얼마나 큰 걸림돌이 되는지를 깨닫게 만드는 것이 중국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지름길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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