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집으로’ 김을분 할머니 별세…이정향 감독 “영상통화가 마지막” 울먹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18일 14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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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집으로’의 김을분 할머니(왼쪽)과 이정향 감독.
영화 집으로’의 김을분 할머니(왼쪽)과 이정향 감독.
이 땅의 모든 외할머니를 대표했던 영화 ‘집으로…’(2002년)의 주인공 김을분 할머니가 17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5세.

김 할머니 유가족은 18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연세가 많으신 탓에 약 2년 간 병치레를 하시다 병원에서 돌아가셨다”고 밝혔다. 영화를 연출한 이정향 감독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병원에 들어가지 못하고 16일 영상통화로 김 할머니와 마지막 인사를 했다”며 “‘코로나19 풀리면 꼭 면회 가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직접 뵙지도 못해 너무 슬프다”고 울먹였다.

영화 ‘집으로’ 스틸컷.
영화 ‘집으로’ 스틸컷.

‘집으로…’는 7세 서울 꼬마가 TV도 없는 산골의 외할머니집에 와 살면서 벌어지는 일을 잔잔하게 담은 영화다. 말을 못하고 눈도 침침한 외할머니를 ‘벙어리’라며 함부로 대하던 철없던 손자는 모든 것을 넉넉히 감싸 안는 외할머니의 깊은 사랑을 깨닫게 된다.

이 영화에서 김 할머니는 딸이 맡긴 외손자 상우를 돌보는 77세의 언어장애 할머니 역을 맡았다. 당시 손자 역을 맡은 배우 유승호(28)와 자연스레 호흡을 맞춰 큰 감동을 선사했다. 영화는 430만 명이 관람해 크게 흥행했다. 연기 경험이 전혀 없었던 김 할머니는 이 영화로 대종상영화제에서 역대 최고령 신인 여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영화 ‘집으로’ 스틸컷.
영화 ‘집으로’ 스틸컷.
영화 ‘집으로’ 스틸컷.
영화 ‘집으로’ 스틸컷.
이 감독은 쪽진 머리를 하고 허리가 굽었으며 일곱 살짜리가 ‘만만하게’ 볼 수 있도록 체구가 크지 않은 모습을 한 할머니를 찾아 다녔다고 한다. 충북 영동에서 태어나 평생 고향에서 호두 농사를 짓고 있던 김 할머니는 그렇게 이 감독에 의해 캐스팅됐다.

영화의 결말을 몰랐던 할머니는 나중에 손자를 떠나보내는 장면에서 완전히 감정에 몰입해 서운한 마음에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극장에서는 이런 할머니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관객이 많았다. 이 감독은 자랄 때 외할머니와의 정이 각별했다. 영화 마지막에 ‘이 땅의 모든 외할머니에게 바칩니다’라는 문구를 넣은 것도 생전 외할머니한테 한번도 말하지 못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김을분 할머니.
김을분 할머니.

빈소는 서울 강동성심병원. 발인 19일. 02-2152-1360.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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