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세계엔 새 규범 필요… 한두개 패권국 세계주도 시대 끝나”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입력 2021-01-05 03:00수정 2021-01-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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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새해특집]글로벌 석학 인터뷰
<3> 자칭궈 中베이징대 교수
중국 수뇌부에 자신의 생각을 곧바로 전달할 수 있는 극소수 학자로 평가받는 자칭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코로나19로 미국 등 서방국의 국가 운영 실력 부족이 드러났다”면서 “이로 인한 세계 질서 재편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칭궈 교수 제공
“그동안 미국이 주도해 온 국제질서의 재편이 불가피하다. 중국은 미국을 대신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다원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국 외교안보 분야의 석학 자칭궈(賈慶國·65)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한 서방국들의 국가 운영에서 총체적인 실력 부족이 드러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주장하는 세계화와 다원화의 핵심은 미국을 대신하는 패권국이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다원화된 세상에 필요한 새 규칙과 규범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 교수는 “서방이 중국의 코로나19 방역 대책을 사회주의 통제에 의한 일종의 인권 탄압으로 폄훼한다”고 지적하면서 “중국을 포함한 많은 아시아인은 집단 이익을 중요시하는 전통에 따라 자발적으로 마스크 착용과 거리 두기 등을 했다”고 반박했다. 또 “공공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제발 마스크를 써 달라’고 정부가 국민에게 부탁해야 하는 사회와 국민 스스로 불편함을 감수하고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회 중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지는 자명하다”고 했다.

그는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출범하게 되면서 미중 관계가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고 봤다. 그러나 양국이 기후 환경 등 분야에서는 협력하겠지만 경제 인권 문제에서는 충돌하는 양상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 이제는 총과 무기가 아닌 기술로 전쟁하는 시대가 왔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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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교수는 자신의 생각을 공산당 지도부에 곧바로 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국무원, 전국인민대표대회와 함께 중국 3대 정치기구로 꼽히는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상무위원이다. 2018년까지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원장을 지냈다. 지난해 12월 24일 베이징대 인근의 한 찻집에서 그를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코로나19 사태가 세계를 어떻게 바꿀까.


“나라마다 피해 규모와 회복 속도가 달라 국가 간 역학 관계에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하다. 주목할 것은 서방의 국가 운영 실력 부족이 총체적으로 드러났고 이런 현상이 앞으로도 가속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과정에서 개발도상국과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 경제국이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과거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국가가 세계 질서를 주도해 왔지만 이제는 한두 개 패권국가가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시대는 끝났다. 앞으로 세계는 지금보다 더 다원화, 다양화될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 국가 간 행동을 관리하기 위한 규칙과 규범이 더 많이 필요하다. 많은 부분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 이것이 지금 중국이 주장하는 다원화, 세계화의 핵심이다.”

―많은 이들이 결국 중국이 새로운 패권국가가 될 것이란 의미로 여긴다.

“믿지 않겠지만 중국은 패권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이미 선언했다(웃음). 중국은 미국과 같은 세계 패권국은 고사하고 아직 동아시아의 리더로도 준비가 덜 됐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여러 국가와 협력하고 갈등하는 관계를 풀어낸 경험도 부족하다. 한국과 일본이 중국을 동아시아 리더 국가로 인정할 리가 없지 않은가. 더 많이 소통하고 협력할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중국 내부의 일부터 잘 처리해 주변국들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한다.”

자 교수는 인터뷰 내내 중국의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려 애썼다. 그는 덩샤오핑(鄧小平)이 주창했지만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이후 한물 간 것으로 평가받았던 외교정책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름)’까지 언급하며 아직 미국과 맞설 단계가 아니라는 뜻을 내비쳤다. 바이든 당선인 집권 이후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바라는 중국 정부의 속내를 보는 듯했다. 최근 중국 누리꾼들의 도를 넘는 애국주의에 대해서도 “중국이 진짜 강하다고 믿는다면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며 “나 역시 당황스럽다”고 했다.

―중국 누리꾼의 지나친 애국주의 때문에 한중 갈등이 심각하다.

“나를 포함한 중국의 많은 지식인들이 당황스러워하고 있다. 중국은 경제적, 정치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용기를 북돋우는 작업이 많이 필요했다. 그 후폭풍이 지금 일부의 과도한 애국주의, 중국 중심 민족주의로 나타나는 것 같다. 한중 관계에서도 그동안 한국의 위상보다 중국의 위상이 더 많이 변한 것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지금까지 한국은 미국의 주변국처럼 움직여 온 것이 사실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중국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앞으로 한국은 자국 이익을 고려해 개별 사안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최선이다. 한국은 민주국가다. 여러 사안에 대해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 편에 서려고 할 때 반대 목소리가 있을 것이다. 이것을 미국에 전달하고 국민의 뜻을 앞세우면 한국이 못 할 일이 없다.”

―지난해 시 주석의 방한이 이뤄지지 않았다.

“코로나19 상황이 개선되면 시 주석의 방한은 분명히 이뤄질 것이다. 중국은 한국이 한중 관계를 더 중요시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서라도 시 주석의 방한이 필요하다.”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 미중 관계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계속 집권했다면 미중 관계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념 경제 군사 등 모든 면에서 중국을 경쟁자로 봤기 때문이다. 바이든 당선인의 대선 승리로 최악의 충돌은 피했지만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기조는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본다. 양국 관계 역시 협력과 경쟁을 반복할 것이다. 기후와 환경 문제 등에서는 협력을 강화하고 경제와 인권 문제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충돌이 발생할 것이다. 앞으로 중국과 서방의 최대 쟁점은 인권이 될 것으로 본다. 홍콩과 신장위구르 문제 역시 인권이 핵심이다. 이를 빌미로 서방이 중국에 상당한 압박을 가할 것이다.”

―중국의 코로나19 대응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서구에서는 논란이 많다.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효과적인 방법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중국 정치 체제가 권력이 집중된 형태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서구가 ‘민주화 수준이 낮은 사회이기 때문에 강한 통제가 가능했다’고 말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중국뿐 아니라 대만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라오스 등 아시아 국가의 방역 상태가 좋다. 그런데 이런 나라들이 다 (중국처럼) 사회주의를 택한 건 아니다. 정치 체제는 다양하다. 비결은 바로 문화에 있다. 동아시아 국가는 집단의 이익과 개인의 자유가 충돌할 때 집단 이익을 중요하게 여긴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에는 마스크 착용만으로도 상당한 방역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단순한 작업을 미국과 서방국가는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식 가치와 세계관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아시아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때가 많다. 공공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두고 ‘틀렸다’고 말하는 서방이 오히려 틀렸다.”

―중국과 미국의 기술전쟁에 대해 자주 언급해 왔다.

“미래는 총과 무기가 아닌 기술로 전쟁하는 시대다. 최근 중국 정부가 과학기술 자립을 강조하는 것도 서방과의 치열한 기술전쟁에 대비하려는 의도다. 중국과 미국은 우주항공 등 최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싸움을 벌일 것이다. 하지만 제조업 등의 기술 분야에서는 협력할 것이다. 미국도 중국 시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7년을 끌어온 중국과 유럽연합(EU) 간 투자협정이 타결됐다.


“이번 협정이 꼭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유럽과 손을 잡는 것은 아니다. 유럽은 그 자체로 거대한 시장이고 중국이 협력해야 할 상대다. 유럽 역시 새로운 시장으로서 중국이 필요하다. 몇몇 민감한 사안만 해결되면 중국과 유럽의 관계는 어느 때보다 좋아질 것으로 본다.”

―공산당 지도부와 친한 것으로 안다. 중국산 코로나19 백신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최고 지도부가 공개 접종을 하라고 권유할 생각은 없나.

“적지 않은 중국인들이 백신을 이미 맞았다. 접종 후 문제가 발생했다는 얘기를 아직까지 들은 적이 없다. 한국을 포함해 국제사회에서 중국산 백신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도부에 공개 접종을 건의해 보겠다. 진지하게 검토해 볼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자칭궈#중국 외교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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