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회 인촌상… 영광의 수상자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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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사는 4일 인촌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34회를 맞은 올해 인촌상은 교육, 언론·문화, 과학·기술 3개 부문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기관 및 인물을 수상자로 선정했다. 심사는 부문별로 권위 있는 외부 전문가가 4명씩 참여해 7, 8월 2개월간 진행했다. 수상자들의 소감과 공적을 소개한다.》





교육 - 한동대학교
인성-전문성-글로벌역량 강조… ‘잘 가르치는 대학’첫손

‘잘 가르치는 대학.’

좋은 대학의 조건을 이야기할 때 예나 지금이나 빠지지 않는 덕목이다. 특히 학령인구 감소와 산업구조 변화로 대학의 위기감이 커지는 지금 더욱 필요한 요소로 꼽힌다. 하지만 잘 가르치는 대학이 과연 어떤 것인지, 그 실체를 아는 건 쉽지 않다.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고등교육 전문가들이 가리키는 곳이 바로 한동대다.

경북 포항시 한동대는 개교 25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유수의 대학도 하지 못한 혁신적 교육 방식을 과감히 도입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인촌상 교육부문에 선정됐다. 장순흥 총장은 1일 “학생 감소와 수도권 집중으로 지방대학이 어려움에 놓인 가운데 듣게 된 인촌상 수상 소식이 너무 반가울 따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한동대는 추구하는 인재상과 그에 맞는 교육 방식을 ‘工자형’ 교육모델로 표현한다. ‘工(공)’을 이루는 세 개의 직선은 아래서부터 △인성 및 기초교육 △전문성 교육 △국제화 교육을 의미한다. 인성과 실력을 갖춘 국제적 리더를 키우겠다는 철학을 시각화한 것이다.

인성교육의 대표적 예는 ‘무감독 양심시험’이다. ‘나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정직하게 시험에 임하겠다’는 답안지 문구에 서명한 뒤 시험을 보는 게 학교의 전통이다. 전문성 교육 측면에선 수요자 중심 교육을 강조한다. 신입생 전원을 ‘무학부 무전공’으로 뽑아 1년간 전공탐색 기회를 준다. 학기 중에 기업 등에서 활동한 뒤 학점을 인정받는 ‘자유학기제’도 2015년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영어 전공 강의가 전체의 약 40%, 외국인 전임 비율이 22.7%에 이를 정도로 국제화 측면에서도 우수하다. 2002년엔 미국식 국제법률대학원을 개원해 졸업생 중 약 70%(458명)를 미국 변호사로 배출했다. 민경찬 연세대 명예교수는 “잘 가르치는 대학이란 학교 고유의 인재상과 그에 부합하는 체계적 교육 방식을 갖춘 곳”이라며 “바로 한동대가 모범 사례”라고 설명했다.

한동대 총장의 임기는 4년이지만 연임 제한이 없다. 덕분에 미국처럼 총장이 과감하게 혁신을 추구할 수 있는 시스템과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1995년부터 2014년까지 초대 총장인 고 김영길 박사가 학교를 이끌었고, 이후 장 총장이 뒤를 잇고 있다. 학교가 잘 가르치는 만큼 학생들의 반응도 좋아 전국 곳곳에서 학생이 모여든다. 지난해 신입생 중 27.5%가 수도권 출신, 15.8%가 해외 출신이었다.


공적

지성·인성·영성의 고등교육을 목표로 1995년 설립된 기독교계 사립대. 초대 총장인 고 김영길 박사가 신입생 400명과 함께 문을 연 이래 현재까지 1만4153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국내 대학 중 최초로 ‘자유학기제’와 ‘국제법률대학원’ 등을 도입해 고등교육계에 혁신을 선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교육부의 학부교육선도대학(ACE) 육성사업(2010∼2019년 시행)에 매번 선정됐을 정도로 ‘잘 가르치는 대학’으로 명성이 높다. 2015년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최상위 등급(A등급)을 획득한 데 이어 올해 대학혁신지원사업에서도 최우수 등급(A등급)을 받았다.

포항=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언론·문화 - 봉준호 감독
일관된 작가주의로‘거장’반열에… “영화인 첫 수상 큰 의미”

“앞으로 저는 더욱더 긴 시간을 변함없이 창작의 한길로만 걸어갈 것임을, 여러분들께 고백합니다.”

봉준호 감독(51)은 3일 인촌상 언론·문화 부문을 받게 된 소감을 영화예술에 대한 변치 않을 사랑을 고백하는 것으로 갈음했다. 올 2월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기생충’으로 4관왕의 영예를 안고 귀국한 뒤 공식 외부 일정을 거의 잡지 않은 채 차기작 구상에 전념하고 있는 봉 감독은 이날 수상 소감을 동아일보에 서면으로 보내왔다. 봉 감독은 올해 34회째인 인촌상을 받은 예술인 가운데 영화인은 자신이 처음이라는 사실을 영예로 여기며 감격을 감추지 않았다. “평소 존경해 왔던 예술가이신 박경리 박완서 선생님께서 과거에 수상하셨던 상을 이번에 제가 받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 감사드립니다.”

특히 “제가 최근 발표한 ‘기생충’이라는 작품이 해외에서 여러 가지 상들을 받았기에 마치 ‘상에 대한 상처럼’ 주시는 상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며 인촌상이 결과가 아니라 한 예술인이 그때까지 걸어온 자취와 흔적, 거기에 쏟은 땀과 눈물에 대한 인정임을 잘 알고 있음을 드러냈다. 또한 100년이 넘는 한국영화사에서 묵묵히 대중을 위한 영화, 예술로서의 영화의 길을 개척해 온 선후배 영화인과 동료들에게 영광을 돌렸다. “이번이 영화인에게 주어지는 최초의 인촌상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저의 창작의 과정을 함께했던 모든 영화인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인촌상 심사위원단은 봉 감독이 대중적 파급력이 강한 영화라는 장르를 통해 한국문화의 저력을 국내외에 과시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판단해 만장일치로 수상자로 결정했다.

첫 장편 ‘플란다스의 개’(2000년)부터 ‘기생충’까지 모든 작품의 연출과 각본을 겸한 봉 감독은 계급 불평등 정의 같은 거대 담론을 다루면서도 일상의 풍자와 해학을 가미한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며 세계 영화계의 오퇴르(auteur·작가) 반열에 올랐다.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지 않고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를 충족하는 ‘문제작’을 꾸준히 만들었다. 기생충이 작품성을 강조하는 칸 영화제와 대중성에 비중을 두는 아카데미를 석권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봉 감독은 별명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 알려주듯 섬세함과 철저함으로 촬영 현장 안팎에서 존경을 받았다. 완벽주의자이면서도 배우와 스태프의 창의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소통형 리더로 인정받고 있다.


공적

2000년 ‘플란다스의 개’를 시작으로 20년간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 ‘옥자’ ‘기생충’ 등의 작품을 만든 영화감독이다. ‘살인의 추억’과 ‘괴물’로 대종상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 영화상을 여러 차례 수상했다. 특히 ‘기생충’을 통해 2019년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탔고, 2020년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4관왕을 차지해 한국 100년 영화사(史)를 다시 썼다.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 동시 수상은 미국 감독 델버트 만의 ‘마티’ 이후 65년 만이다. ‘기생충’은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과 영국아카데미상 각본상, 외국어영화상도 한국 영화 최초로 수상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과학·기술 - 차국헌 서울대 교수
고분자 재료 연구로 반도체 산업 견인… “사회기여 책임감 커져

“학자로서 새로운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앞으로도 독창적 연구를 통해 사회와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습니다.”

차국헌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62)는 인촌상 수상 소식을 듣고 “지식인으로서 영광이자 새로운 책임”이라며 이같이 소감을 밝혔다. 차 교수는 고분자 재료 및 고분자 나노구조 설계와 분석에서 세계 수준의 권위자로 꼽힌다. 1989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미국 IBM 앨머든 연구센터 연구원을 거쳐 귀국해 LG화학 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차 교수는 3년여 동안 민간 기업 연구소에서 일했던 경험이 학자로서 큰 자산이 됐다고 했다.

“기업에 있으면서 학자로서의 연구가 더 큰 의미를 가지려면 사회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제대로 응용할 수 있어야 비로소 지식이 고부가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이는 1991년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로 임용된 차 교수가 자신의 전공인 고분자 재료 관련 연구에 매진하며 끊임없이 산업계와 소통하는 계기가 됐다. 차 교수는 나노미터 단위로 설계되는 반도체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회로 사이의 간섭현상을 막아주는 차세대 저유전물질(전기적 특성이 적은 재료), 플라스틱 등 다양한 물질이 접촉할 때 일어나는 계면 현상 등을 연구했다. 차 교수가 개발한 기술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에 이전돼 한국 반도체 산업 발전에 쓰이고 있다.

차 교수의 최근 관심사는 황이다. 정유 시설에서 발생해 산업폐기물 취급을 받던 황을 플라스틱처럼 활용하는 연구다. 특히 황을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카메라용 고굴절 렌즈 등의 제조에 활용하는 기술을 선보여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처음에는 별 반응이 없었지만 50편 정도 계속 논문을 발표하니 학계의 인정도 받고 독창성도 확보하게 됐다”고 했다.

현재 서울대 공과대학장을 맡고 있는 차 교수는 지난해 시작된 소재 부품 장비(소부장) 육성 정책이 유지돼야 한다고 했다. 1년 사이 많은 성과를 냈지만 정부나 기업이 단기 성과에 취한 나머지 관심이 시들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소부장의 경쟁력은 반도체로, 2차 전지로, 나중에는 제약 바이오 분야까지로 파급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20, 30년을 내다보고 연구하고 지원하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공적

고분자 재료 관련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 석학으로 인정받고 있다. 국제적 권위의 학술지에 30여 년간 370편 이상의 우수 논문을 발표했고 국제 학술대회 기조 강연을 100회 이상 맡아 했다. 특히 반도체 나노 구조에 쓰이는 물질 등을 연구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에 신기술을 이전하는 등 학계와 산업계 모두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에는 산업폐기물인 황을 이용해 배터리 개발 등 고부가가치 고분자 소재 개발에 응용하는 방법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시도해 주목받고 있다. 1989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국내로 들어와 연구 활동과 후학 양성에 주력해 왔다. 1991년부터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7년부터는 공과대학장을 맡고 있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제34회 인촌상 심사위원::

교육 △위원장 김도연 울산공업학원 이사장·전 포스텍 총장 △위원 김경성 서울교육대 명예총장, 김성훈 동국대 교수, 백순근 서울대 교수

언론·문화 △위원장 양승목 서울대 교수 △위원 왕은철 전북대 교수·문학평론가, 이주향 수원대 교수, 최맹호 전 동아일보 대표이사 부사장

인문·사회 △위원장 김용학 연세대 명예교수·전 총장 △위원 권보드래 고려대 교수,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

과학·기술 △위원장 권오경 한양대 교수·한국공학한림원 회장 △위원 김성근 서울대 교수·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이사장, 김승환 포스텍 교수, 전호환 부산대 교수·전 총장
#제34회 인촌상#한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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