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2020]시나리오 ‘엄마로봇’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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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김이 활력이 되고… ‘선순환’ 꿈꾼다

● 당선소감


이다은 씨
이다은 씨
당선 전화를 받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일을 마친 엄마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며 엄마와 부둥켜안고 한바탕 울었는데 그때의 엄마 뺨이 차갑고 축축했습니다. 그 감촉이 생경했고 여전히 생각나며 자꾸 되새기니 죄송한 마음으로 이어졌습니다.

지난해 글 쓴다고 방안에 틀어박혀선 계절가전을 팍팍 돌리며 온갖 열을 내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나는 혼자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한기를 느끼며 엄마로봇을 썼습니다. 엄마 아빠와 내가 지닌 온도는 항상 정반대였고 그게 불만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안에 틀어박힌 딸을 위해 묵묵히 밖에 계셨던 두 분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다 큰 딸을 항상 인내하며 지켜보아 주시는 하나님과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야 조금은 제 몫을 한 것 같아 안도감이 듭니다.

투박하고 모난 이야기를 건져 올려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합니다. 이제 시작이다 마음을 굳게 다잡고 용기를 잃지 않고 끈질기게 써나가겠습니다. 끈질김이 이야기에 스며 활력이 되고 주저앉은 누군가의 마음에 동력이 되며 그 동력이 다시 제게 닿는 선순환을 꿈꾸며 나아가겠습니다.

△1991년생 서울 출생 △추계예술대 영상시나리오학과 졸업

▼AI소재-‘짠내’ 이야기… 읽는 재미 쏠쏠▼

● 심사평


작년에 비해 읽는 재미가 쏠쏠한 시나리오가 많았다. 심사위원들은 비슷한 장르의 범람 속에서 좀 다른 이야기와 소재를 찾고 싶었다. 영화 현장에서 관객과 마주한 제작 현실은 그런 갈증을 심하게 부른다. 심사위원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어떤 작품을 당선작으로 정했냐며 먼저 서로의 의견을 묻는다. 조금이라도 늦게 매를 맞겠다는 심정이랄까. 동시에 당선작으로 ‘엄마로봇’을 언급하면서 보는 눈은 비슷하다며 하하호호 한다.

인공지능(AI) 소재와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엄마로봇’은 휴먼 SF 드라마다. SF 코드와 관습적인 시큰한 ‘짠내’ 이야기가 만났다. 이질적인 설정이 조화롭게 직조되며 사라진 엄마에 대한 기대를 갖게 만든다. 한계도 명확해 보인다. 진짜 엄마가 사라지며 ‘엄마로봇’의 등장 퇴장의 개연성을 해결하고, 아쉬운 엔딩을 더 파고들어야 한다. 작가의 필력은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한다.

주필호 씨(왼쪽)와 이정향 씨.
주필호 씨(왼쪽)와 이정향 씨.
작가의 야심과 개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시나리오도 있었다. 판타지 심리극 ‘심장의 무게’를 두고 심사위원은 끝까지 저울질했다. 그만큼 ‘심장의 무게’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 제주도 사투리 대사의 가독성과 심장 이식에 대한 개연성만 해결해도 좋은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인과응보 미스터리 ‘검은 저수지’는 캐릭터와 이야기 구조를 제대로 갖춘 시나리오다. 공포로 방향을 틀어서 각색해 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시나리오의 최종 목표는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당선작이 극장에서 한 편의 영화로 관객과 만나는 날을 기대해본다.

주필호 주피터필름 대표·이정향 영화감독
#동아일보#신춘문예#2020#시나리오#엄마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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