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는 절망의 끝에서 문학이 나를 찾아왔다… 735대 1 경쟁 뚫은 9인 “마음을 두드리는 글을 쓰고 싶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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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00주년 신춘문예 2020

서울 종로구 청계천에 지난해 12월 23일 모인 2020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은 “힘든 이들에게 내일을 살아갈 힘을 전하는 작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왼쪽부터 이민희(중편소설) 조지민(희곡) 김동균(시) 이현재(영화평론) 심순(동화) 홍성희(문학평론) 서장원(단편소설) 정인숙(시조) 이다은 씨(시나리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서울 종로구 청계천에 지난해 12월 23일 모인 2020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은 “힘든 이들에게 내일을 살아갈 힘을 전하는 작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왼쪽부터 이민희(중편소설) 조지민(희곡) 김동균(시) 이현재(영화평론) 심순(동화) 홍성희(문학평론) 서장원(단편소설) 정인숙(시조) 이다은 씨(시나리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대학원 진학을 설득하려 고향집을 찾았다. 글을 쓴다는 딸이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 알 길 없는 부모는 취업을 하길 바랐다. 입이 떨어지지 않아 머뭇하는 찰나, 전화벨이 울렸다. 조지민 씨(26·희곡)는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전하자 부모님께서 바로 ‘한번 해봐라’고 하셨다”며 미소를 지었다.

시나리오 부문 당선자인 이다은 씨(29)의 상황도 비슷했다. 컴퓨터 앞에서 늘 뭔가를 하는 딸을 남몰래 지켜보던 부모에게 신춘문예 당선은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전날 엄마가 고향집에서 잔치를 벌이는 꿈을 꾸셨대요. 주택복권 2장을 사시곤 떨어지자 혹시 다은이 꿈이 아닌가 하셨다지요. 소식을 듣고선 오열을 하셔서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죠.”

202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응모자 6612명 가운데 당선의 기쁨을 맛본 9명이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 모였다. 이들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기쁘고, 겁이 나고, 막막하고, 또 기쁘다”고 입을 모았다.

중편소설 당선자인 이민희 씨(48)는 지난 1주일간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중학생 때 청소년 문학상에서 만난 한수산 작가가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돼라”며 어깨를 다독인 일, 10여 년 전 본심에 올랐던 한 공모전, 그리고 2013년 본심에서 낙방했던 동아일보 신춘문예…. 쓰면서 견뎌온 지난날이 하나둘 떠올랐다.

“‘당연히 떨어지겠지’ 하는 마음에 응모작을 퇴고하고 있었어요. 취재에 시간이 오래 걸려 20일 만에 집필했거든요. ‘이 작품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더 이상 고칠 수 없는 원고를 공개한다’는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어요.”

중학생 때부터 시인을 꿈꿔온 김동균 씨(37·시)는 지하철에서 당선 소식을 듣고선 오랫동안 울먹였다고 한다. 20대 초반 이후 15년 만에 다시 도전한 신춘문예라 감회가 남달랐다. 그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한동안 시 주변을 맴돌다가 2년 전부터 다시 매진하기 시작했다. 낙선도 무감해진 즈음 날아든 당선 소식이라 먹먹했다”고 했다.

영화평론 부문 당선자 이현재 씨(27)는 전화를 받고선 “장난인가” 했을 정도로 얼떨떨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영화에 빠져 지낸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영화감상, 사유, 글쓰기로 청소년 시절을 보냈어요. 공부를 전혀 안 했는데 영화에 대해 끼적인 글 뭉치 덕분에 대학에 갈 수 있었죠. 매년 300번 이상 찾을 정도로 좋아하는 영화인데, 제 글이 누군가에게 가닿을 수 있게 돼 행복합니다.”

소설을 쓰던 심순 씨(48·동화)는 몇 해 전 운명처럼 동화의 세계에 눈을 떴다. 동화적 이야기를 쓸 때면 소설에 매달리느라 각박해지는 마음이 치유되곤 했다. 철학 동화 모임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당선작에서 죽어가는 소희를, 몸이 점점 가벼워져 공중에 뜨다가 어느 순간 하늘로 날아갈 수도 있는 존재로 그렸어요. 최근 여러 상실을 경험했고 많이 힘들었는데, 상실을 마냥 아프게만 그리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서장원 씨(30·단편소설)는 7년간 내리 신춘문예에서 낙방해 에너지가 바닥난 상황에서 당선 소식을 들었다. “소설가 한강 선생님을 오래 전부터 흠모하며 글을 써왔다. 계속된 낙방에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다가 날아든 당선 소식이라 더없이 기쁘다”고 했다.

시조 부문 당선자 정인숙 씨(56)는 자녀들에게 ‘다른 엄마’가 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생계 전선에서 밤낮없이 일하고 집에서는 잠만 자는 모습으로 남고 싶진 않았다.

“당선 소식을 전해들은 딸이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고생했고 외롭고 쓸쓸했을지 알겠더라. 그러니 글을 썼겠지. 나는 무조건 엄마 팬이야’라고 하더군요. 딸의 이야기 하나로 저는 성공입니다.”

신춘문예 당선으로 부모님과 새롭게 소통하게 된 당선자도 있었다. 홍성희 씨(32·문학평론)는 당선 소식을 전하자 부모님이 이구동성으로 “나도 책을, 문학을 좋아했다”고 하셔서 놀랐다고 했다.

“전혀 몰랐는데 아버지가 희곡을 쓰셨었대요. 엄마는 못 말리는 책벌레라고 하시더군요. 부모님이 ‘우리의 이런 면모가 너에게 피로 이어진 거 같다’고 하시면서 웃음꽃이 피었지요. 앞으로 부모님과 문학 이야기도 종종 나누려 합니다.”

당선작들은 새해 첫 지면과 동아닷컴 신춘문예 사이트에서 만날 수 있다. 이제 첫걸음을 뗀 이들은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을까.

“가장 중요한 독자는 저 자신이에요. 다른 포부는 엄두도 안 나고, 제 마음에 드는 글부터 만들고 싶습니다.”(서장원 씨)

“지적인 유희, 실험적 문장 등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이야기를 짓고 싶어요. 소설의 기본은 ‘소통’이라고 생각하거든요.”(이민희 씨)

“‘닫힌 평론’이 아닌 열린 글을 쓰고 싶습니다. ‘학문적’ 또는 ‘대중적’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평론이 분리되면 서로에게 소외되는 것 같아요. 감히, 두 가지 측면이 어우러지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홍성희 씨)

이설 기자 snow@donga.com
#동아일보#100주년#신촌문예#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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