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숍에서 하는 공부, 공공도서관에서 금전 부담없이 할 수 있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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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복지 전도사’ 김세용 SH공사 사장 인터뷰

교통섬과 빗물펌프장 위에 들어설 공간복지 시설 공간복지
 개념을 적용해 사실상 방치됐던 유휴부지, 시설에 추진 중인 복합시설 조감도. 교통섬에 들어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주택(왼쪽)은
 창업지원센터, 도서관, 옥상 텃밭, 운동시설 등이 함께 조성된다. 은평구 증산빗물펌프장 위에는 덱을 설치해 새로운 지층을 만들고
 주택, 사무실, 빨래방, 주방, 피트니스센터 등이 마련된다. 서울주택도시공사 제공
교통섬과 빗물펌프장 위에 들어설 공간복지 시설 공간복지 개념을 적용해 사실상 방치됐던 유휴부지, 시설에 추진 중인 복합시설 조감도. 교통섬에 들어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주택(왼쪽)은 창업지원센터, 도서관, 옥상 텃밭, 운동시설 등이 함께 조성된다. 은평구 증산빗물펌프장 위에는 덱을 설치해 새로운 지층을 만들고 주택, 사무실, 빨래방, 주방, 피트니스센터 등이 마련된다. 서울주택도시공사 제공
“도시에는 차를 타야만 갈 수 있는 대형 공원보다는 걸어서 쉽게 갈 수 있는 크고 작은 공원이 많아야 합니다. 또 젊은이들이 과제, 토론 등을 하려고 자주 커피숍을 찾는데, 이런 모습보다는 공공도서관이 많아져서 비용을 들이지 않고 공공시설에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하죠.”

김세용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사장은 “이제 달라져야 한다”며 “공공 공간에서 다양한 혜택을 누리며 삶의 질을 높이는 게 진정한 의미의 공간복지”라고 말했다. 공간복지는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체육시설, 독서실, 노인정 등 생활 사회간접자본(SOC) 시설을 갖춰 주민들이 편하게 복지 혜택을 누려야 한다는 개념이다.

김세용 SH공사 사장(가운데)이 임직원들과 회의하는 모습. 서울주택도시공사 제공
김세용 SH공사 사장(가운데)이 임직원들과 회의하는 모습. 서울주택도시공사 제공
김 사장은 지난해 1월 사장에 취임하면서 공간복지를 SH공사의 핵심 비전으로 내세우고 ‘공간복지 전도사’를 자처했다. 그는 “공간복지는 우리 사회가 빠른 속도로 양적인 발전만을 추구해온 탓에 놓쳤던 많은 일상적인 혜택을 되찾자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개포로 SH공사 사옥에서 김 사장을 만나 공간복지의 의미와 미래 방향에 대해 들었다.

―공간복지란 무엇인가.

“그동안 우리 사회는 삶의 질을 좌우하는 공간으로 ‘집의 내부’에 주목해 왔다. 이 덕분에 주거 환경은 많이 개선됐다. 반면 일상적으로 활용하는 ‘집의 외부’와 관련된 공간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경로당, 놀이터 등을 아파트 단지마다 법적 기준에 맞춰 지으면 될 뿐이라고 여겼다. 노인 인구 증가를 반영해 시설을 개선하거나 친환경 놀이터 등 과거와 달라진 주민들의 요구는 크게 반영하지 않았다. 경로당, 놀이터, 도서관, 체육시설 등을 통해 주민들의 다양한 욕구를 공공 공간에서 구현하는 게 공간복지의 개념이다.”

―그동안 공간복지를 소홀하게 다뤘다는 것인가.


“4년 전 미국 뉴욕과 보스턴의 대학교에서 강의를 할 때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국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지 발표해보라고 했다. 케이팝, 빠른 경제 성장 등을 제시할 줄 알았다. 그런데 ‘3포’(일자리 부족에 취업, 결혼, 출산 등 포기), ‘헬(hell·지옥)조선’ 등과 같은 단어를 거론했다. 외국인 학생들도 유튜브 등을 통해 한국 청년들의 좌절을 다 알고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한국은 급하게 발전해 경제 수준에 맞는 복지 등을 고려하지 못했다. 이제 경제 수준에 맞는 삶을 보장하기 위해 관련 인프라가 필요하다.”

―과거보다 공간복지가 더 중요해진 이유는….


“1인, 2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집의 크기는 좁아진다. 좁은 집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기 어려우니 결국 외부에서 그런 활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은 그럴 만한 장소가 부족하다. 그래서 커피숍에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사실 이런 것은 공공도서관 등 공간시설에서 담당해야 할 부분이다. 결혼과 출산은 줄고 인구는 고령화되면서 1인, 2인 가구는 늘어나고 은퇴 이후의 삶도 길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주민들에게 필요한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과거에는 돈을 벌면 집이나 차를 구입했다. 이제 달라졌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며 주택을 구입하기 어려워졌고 차는 점차 소유의 개념이 희박해지고 있다. 차량을 소유한 사람들이 점점 줄면서 걸어서 갈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공간복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00년대 중반 성북구 장위동 뉴타운 개발을 계획하는 ‘마스터 플래너’를 맡았다. 당시 내가 냈던 계획안은 장위동 뉴타운 안에 작은 공원을 여러 개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지방자치단체는 일산 호수공원이나 분당 중앙공원처럼 커다란 공원을 원했다. 당시 담당 공무원들과 격론을 벌였다. 큰 공원을 만들면 주민들에게 홍보하기도 좋다. 그래서 지자체 공무원들은 큰 공원을 선호한다. 하지만 걸어갈 수 있어야 주민들이 공원을 자주 찾고 주민들이 자주 찾아야 공원은 제 기능을 한다. 이때부터 걸어서 10분 안에 갈 수 있는 공원과 문화시설이 필요하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공간복지를 구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동안 공공시설을 계획할 때 관성적으로 가급적 큰 시설을 만들려고 했다. 아시아 최고, 세계 최대 등 양적인 부분을 중시했다. 주민들도 별다른 이견을 가지지 않고 수용해 왔다. 하지만 이제 달라졌다. 공원이나 문화시설은 언제나 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시민의 생각이 바뀌니 정책 결정자들은 이런 부분을 반영해야 한다. 정부가 내년부터 ‘생활 사회간접자본(SOC) 3개년 계획’을 실시하는 등 공간복지 실현을 위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세밀하게 정책을 짜야 한다.”

―공간복지를 지역 균형 발전이나 빈곤 완화 정책으로 보기도 한다.


“지난해 박원순 서울시장이 강북구 삼양동에서 1개월 동안 거주할 때 나도 삼양동과 강북구 주민을 많이 만났다. 강북구는 강남권 지역과 비교할 때 기업, 병원 병상수 등 민간 시설뿐만 아니라 공공도서관이나 문화시설조차 부족했다. 그동안 서울지역에서도 공공 투자에서 차별이 존재했던 것이다.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공간복지 정책이 필요하다. SH공사가 강북지역에서 공간복지 시범 프로젝트를 우선 시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간복지를 빈곤 완화 해결책으로 보는 것은 가난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일상적인 공간복지 혜택이 부족하고 이런 이유로 가난이 대물림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이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공간복지를 SH공사 핵심 비전으로 제시했다. 취임 후 2년이 지났는데 성과는 무엇인가.

“노후 임대아파트 단지의 공간 효율성을 개선하는 ‘공간닥터 프로젝트’가 이달부터 본격적인 시설 공사에 들어간다. SH공사가 발표한 콤팩트시티 계획에도 주민 커뮤니티 시설 같은 공간복지 시설을 넣도록 했다.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한 맞춤형 임대주택인 ‘청신호’ 1호 ‘정릉동 행복주택’은 곧 입주가 진행된다. 여기에 주민을 위한 키즈카페, 커피숍, 노인정, 코인세탁실 등을 갖췄다. 빈집을 매입해 공간복지 시설로 전환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새롭게 구상 중인 공간복지 계획이 있다면….

“공간 복합화 전략을 쓰려고 한다. 요즘 젊은층이 애용하는 공간 중 하나가 빨래방이다. 빨래방에 커피숍을 결합하면 많은 이들이 반길 것이다. 이처럼 한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도서관과 보육원을 결합하거나 도서관과 빨래방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공간 복합화를 추진해 한 공간에서 여러 일을 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결국 시설 효율성도 커진다.”

―SH공사의 자산을 활용해 공간복지를 구현하고 있다. 앞으로 공간복지를 더 구현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일단은 SH공사가 갖고 있는 자산을 잘 활용하는 것도 큰 작업이다.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 확대되기를 바라고 있다. 공간복지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누구와도 함께 추진하고 싶다. 건설업체,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문화 콘텐츠 기업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공간복지 구현에 협업할 수 있다.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지만 SH공사와 대기업이 손을 잡는 방안도 기대하고 있다. 공간복지의 개념과 관련해 이론적으로도 더 공고히 할 필요성도 느낀다. 사람들이 ‘공간복지가 뭐지’라고 더 이상 묻지 않을 때까지 개념을 정립하고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힘쓰겠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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