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박육아 해결 없인 저출산 못 벗어나”… ‘네 이웃의 식탁’ 출간 소설가 구병모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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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주택 남기 위해 다자녀 출산… 공동육아의 불편한 진실 그려내

자녀가 한 명 이상 있고, 10년 이내에 아이를 셋 이상 둔다고 자필 서약서를 내야 부부가 입주할 수 있는 공공임대 아파트가 있다. 이를 지키지 못하면 나가야 한다. 구병모 소설가(42·사진)는 새 장편소설 ‘네 이웃의 식탁’(민음사)에서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고육책으로 내놓은 이 실험공동주택에서 벌어지는 네 가구의 공동육아를 비판적으로 그렸다.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1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구 씨는 “아이를 키우며 육아가 엄마에게 집중되는 현실을 경험하면서 공동육아가 가능한지 질문하게 됐다. 과거 정부에서 ‘가임기 여성 출산 지도’를 발표한 걸 보고 여성을 아이 낳는 도구로 여기는 위정자들의 인식을 다시 확인하자 집필에 가속도가 붙었다”고 말했다.

‘위저드 베이커리’ ‘아가미’ ‘파과’ 등 환상성이 짙은 작품을 주로 선보여 온 그는 ‘네 이웃…’에서 현실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네 가정은 공동육아를 하지만 육아의 대부분을 떠맡는 건 엄마들이다. 약국에서 보조원으로 일하며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요진은 반찬 만드는 날 순서가 돌아오면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 음식을 한다. 일거리가 없어 집에서 주로 지내는 남편은 요리를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마을 공동육아를 하는 이들이 낸 책을 봐도 엄마들 위주로 아이들을 키우더라고요. 마을이든, 가정이든 집중적으로 육아를 책임지는 사람이 늘 존재하죠. 한 사람이 ‘돌봄 노동’을 전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과 문제에 대해 절망을 갖고 쓴 작품입니다.”

네 부부가 참여하는 공동육아는 점점 균열이 생긴다. 그는 여성이 일상에서 겪는 부당함과 불편함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낸다. 산부인과 검사대에서 어떤 자극에도 반응하지 말아야 하고 워킹맘은 두 배로 일하는 게 당연한 반면 전업주부의 노동은 평가 절하된다. 작품에서는 여성이 가임 기간에 낳은 평균 출생아 수를 뜻하는 ‘출산율’ 대신 ‘출생률’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출산율은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의미로 여겨지기 때문이란다. 이런 의미에서 ‘네 이웃…’은 출산과 육아를 둘러싼 현실에 대한 우울한 자화상인 동시에 페미니즘 소설로도 읽힌다.

“가정, 이웃을 결코 긍정적으로 그리지 않았습니다. 기존의 관념을 전복하는 게 문학의 역할이니까요. 남성뿐 아니라 여성들도 단점이 많고 불안정하게 묘사한 건, 결함을 지닌 존재 그 자체가 인간임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독박육아#네 이웃의 식탁#구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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