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극복 경제사령탑’ 강봉균 전 재경부 장관 별세

이상훈 기자 입력 2017-02-01 00:59수정 2017-02-01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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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대표 경제 관료로 꼽히는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사진) 장관이 31일 오후 별세했다. 향년 74세.

 타계한 강 전 장관은 박정희 정부 시절부터 김대중(DJ) 정부까지 수많은 경제정책을 만들고 실행한 정통 관료다. 우수한 인재가 모였다는 관가(官家)에서도 유달리 아이디어가 많고 두뇌 회전이 빨라 ‘꾀주머니’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1943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강 전 장관은 군산사범학교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를 지내다 늦깎이로 서울대 상학과에 입학했고 행정고시 6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장, 대외경제조정실장 등을 역임하며 거시경제 정책의 ‘큰 그림’을 그리는 업무를 맡았다. 특히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입안 작업에 다섯 차례나 참여하며 한국 경제개발 역사를 직접 쓴 산증인으로 꼽힌다.

 강 전 장관의 전성기는 단연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다. 정부 출범과 동시에 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을 맡으며 외환위기 돌파의 중책을 맡았고 경제수석에 이어 재정경제부 장관을 거치며 명실상부한 경제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 외환위기 여파로 건국 이래 한국 경제가 가장 큰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재경부 장관을 지내며 위기 극복에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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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 전 장관은 김대중 대통령이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추진했던 기업, 금융, 공공, 노동 등 4대 부문 구조조정의 입안과 실행에도 큰 역할을 했다.

 생전에 “일하는 게 유일한 취미”라고 말할 만큼 강 전 장관은 일에 대한 집착이 대단했다. 당시 재경부에서 근무했던 기재부 관계자는 “일요일 오전이면 정부과천청사 테니스장에 나와 테니스 몇 경기로 몸을 푼 뒤 오후에 간부들을 집합시켜 장관 회의실에서 직접 회의를 주재해 전 직원이 휴일도 없이 근무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2002년 재·보선에서 고향인 전북 군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했고 18대까지 3선 의원을 지냈다. 지난해 4·13총선 당시에는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냈고 최근까지 경제 원로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나 최근 췌장암으로 건강 상태가 급속히 악화됐다. 지난해 총선에서는 경기 대응을 위해 한국은행에 기준금리 인하와 주택담보대출증권(MBS) 직접 인수를 제안하는 ‘한국판 양적완화’를 화두로 던져 화제가 됐다.

 최근까지 경제정책에 적극적인 조언을 하며 ‘경제 브레인’으로 꼽혔다. 강 전 장관은 지난해 12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직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경제팀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경제심리를 안정시키는 것”이라며 “경제장관들이 대외적으로 한국이 흔들림이 없다고 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서혜원 씨(71)와 아들 문선(43), 딸 보영 씨(42)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세종=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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