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주한명예영사의 세계

동아일보 입력 2014-04-19 03:00수정 2014-04-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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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은 없지만… 비자발급 업무까지 맡은 ‘민간 외교관’
국내 명예영사들 부산서 첫 총회 10일 부산 해운대구 누리마루 APEC하우스에서 열린 주한명예영사단 부산총회에 참석한 명예영사들이 강의구 부산명예영사단장(마이크 든 사람)의 제의에 맞춰 건배를 하고 있다. 부산=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주한명예영사단 총회가 10일 오후 7시 부산 해운대구 누리마루 APEC하우스에서 열렸다. 부산총회에는 주진우 모리셔스 명예영사(사조그룹 회장)와 정희자 과테말라 명예영사(아트선재센터 관장) 등 각 나라가 임명한 명예영사 40명과 미국 러시아 일본의 부산 주재 총영사, 허남식 부산시장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주한명예영사단은 국내에 있는 명예영사들의 모임으로 1977년 발족한 외교부 인가 단체다. 이날 총회는 지난해 10월 새로 꾸려진 주한명예영사단 집행부를 축하하고 이를 계기로 명예영사들이 단합하자는 뜻에서 부산명예영사단이 자리를 마련했다. 국내 명예영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처음이다.

유승필 주한명예영사단장(아이티 명예영사·유유제약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부산총회를 계기로 명예영사들이 더욱 화합, 소통하고 활발하게 활동해 명예영사단의 명예를 드높이자”고 말했다.

최종현 외교부 의전장은 축사에서 “우리나라 국력이 커지면서 명예영사를 임명한 나라와의 관계 증진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며 “주한명예영사단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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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대사관이 따로 없는 나라의 명예영사는 직업 외교관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래서 명예영사들은 공무 차량에 외교 번호판을 부착하는 등 영사업무 수행에 필요한 권익 확보에 나서기로 했다. 또 홈페이지를 만들어 명예영사의 활동 상황을 널리 알리기로 했다.

한 명예영사는 “임명국의 고위 당국자가 방한했을 때 공항에 영접하러 갔던 명예영사가 직업 외교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귀빈실과 주차장에 못 들어가 망신을 당한 적도 있다”며 “빈 협약에 규정된 명예영사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명예영사는 임명국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국내에 있는 임명국 국민과 여행자의 신변을 보호하고 비자를 발급하는 등의 영사 업무를 주로 한다. 임명국과 한국의 경제, 문화, 과학 교류 등과 관련된 협력 사업도 추진한다. 이들은 외교사절의 직무와 특권을 규정하고 있는 빈 협약에 따라 직업 외교관에 준하는 권리를 갖는다. 임기는 5년이며 대부분 연임한다.

명예영사 임명 절차는 외교관과 비슷하다. 임명국이 외교부에 명예영사 임명 아그레망(신임장)을 요청하면 외교부 장관이 이를 인가한다.

명예영사는 명예직이어서 월급은 없다. 그러나 돈을 써야 하는 일은 많다. 명예영사관에 임명국 국기와 인가장을 걸어놓고 직원을 고용해 비자 발급 등 영사 업무를 봐야 한다. 임명국에서 방한 사절이 오면 영접, 면담 주선, 식사 대접 등 각종 편의를 제공한다.

명예영사 중에는 교수나 의사, 변호사 등도 있지만 대부분이 기업인이다. 대개 본업과 명예영사 명함을 따로 갖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명예영사에 기업인이 많은 것은 영사 활동에 필요한 재력과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고, 활동 범위도 넓기 때문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명예영사들이 누리는 혜택은 임명국을 방문할 때 공항에서 영접 서비스를 받는 정도다.

명예영사 임명장
국내에서 활동 중인 명예영사는 108개국이 임명한 132명이다. 여성은 5명이다. 우리나라에 대사관을 개설한 55개국이 75명, 대사관을 개설하지 않은 53개국이 57명의 명예영사를 두고 있다. 명예영사는 서울에 71명, 부산에 38명, 기타 지역에 23명. 명예영사를 임명한 나라를 지역별로 보면 유럽 39개국(49명), 아프리카·중동 25개국(26명), 중남미 22개국(28명), 아시아·태평양 21개국(28명), 북미 1개국(1명) 등이다. 외교관을 대규모로 파견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4개국은 명예영사를 두지 않고 있다. 이 국가들은 부산에 총영사관을 개설해 운영한다.

국내에 명예영사를 두는 나라는 아이티, 크로아티아, 알바니아처럼 영사 업무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거나 대사관 운영비를 부담하기 어려워 일본과 중국 등에 있는 자국 대사관이 한국 공관을 겸임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에 대사관을 개설한 국가들도 우리나라와의 무역 규모가 커지고 자국 국민의 출입이 늘어나자 최근 부산 광주 대전 등에 명예영사를 두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명예영사제 도입 초기인 1970년대에는 임명국이 영사 업무를 담당할 적합한 사람을 찾아 달라고 외교부에 의뢰했다. 1977년부터 38년째 아이슬란드 명예영사를 맡고 있는 조해형 나라홀딩스 회장은 “쌍용 대표일 때 박동진 당시 외교부 장관이 잠깐 보자고 해 갔다가 임명됐다”며 “당시는 정부가 수출 증대를 위해 종합상사 사장들에게 명예영사를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고 회고했다.

무역 강국이 된 지금은 임명국이 거래 관계가 있는 기업이나 개인에게 맡기거나 추천해 달라고 하는 일이 많다. 삼성은 2004년 항구도시 리예카의 항만 현대화사업을 삼성물산이 맡으면서 크로아티아와 인연을 맺었다. 크로아티아는 현명관 당시 삼성물산 회장을 명예영사로 임명했다. 현 전 회장이 은퇴하면서 양인모 전 삼성엔지니어링 부회장이 이어받았다.

부산명예영사단 단장인 강의구 포르투갈 명예영사(코스모스마린 회장)는 2개국 동시 명예영사, 부부 명예영사 등 이색 기록을 갖고 있다. 그는 미국 유학 시절 같은 과 친구였던 온두라스 교통부 장관, 파나마 항만청장의 아들에게 편의치적(便宜置籍)에 대해 듣고 배운 뒤 귀국해 해운회사를 세웠다. 경비 절감을 위해 선박을 자국이 아닌 제3국에 등록하는 편의치적은 일부 국가의 수입원이다. 1985년 온두라스가 명예영사를 제의했다. 아시아의 많은 배를 등록시켜 큰 수익을 안겨주자 온두라스는 그에게 선박 검사를 관장하는 선급협회장을 맡겼다.

공직을 동시에 2개 맡을 수 없어 명예영사 직을 10년 만에 내놓자 파나마와 포르투갈이 영입에 나섰다. 파나마는 외교부 미주국에, 포르투갈은 구주국에 명예영사 승인 요청서를 보냈다. 같은 날 인가장이 교부됐다. 전산화가 안 돼 부서별로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2개국의 명예영사로 인가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난처해진 외교부는 양국 대사를 설득했으나 실패했다. 강 명예영사는 편의치적 강국인 파나마는 다른 사람이 맡아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포르투갈을 택했다. 그러나 파나마는 ‘접수국 인가장이 없어도 맡길 수 있다’는 빈 협약을 들어 임명했다. 15년간 명예영사를 맡다 파나마를 설득해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의 주명희 상무에게 넘겼다.

그는 캄보디아 국제선박등록청장(차관급)도 맡고 있다. 선주와 국제해사기구가 편의치적 선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며 비판하자 캄보디아는 그를 영입하기 위해 부산에 영사관을 개설하고 국제선박등록청을 뒀다. 그리고 부인 구정숙 코스모스마린뷰류 대표를 명예영사로 임명했다.

“주한명예영사들 화합-소통하자” 주한명예영사단 부산총회에 참석한 명예영사들이 엄지를 세우고 화합과 소통을 다짐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가수 윤형주는 2011년부터 몰디브 명예영사를 맡고 있다. 원양업을 하는 지인으로부터 후보를 물색 중이라는 소식을 전해 듣고 몰디브 외교장관을 만났다. 그는 “해수면 상승으로 몰디브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은 오존층 파괴에 무관심했던 인류의 공동 책임인 만큼 홍보영상을 만들어 유수 언론을 통해 심각성을 알리고 세계적 지원도 끌어내도록 하겠다”고 활동 계획을 말했다. 그는 자신이 이사로 있는 국제구호한국본부(IAK)를 통해 몰디브에 약품과 영양제 등 22만 달러어치를 지원했다. 침수 위기에 처한 섬들을 살리자는 캠페인 송을 ‘소녀시대’, ‘카라’ 등 한류 스타와 만들어 이슈화해 나갈 계획이다.

박수관 베트남 명예총영사(YC TECH 대표)는 2010년 임명되자마자 큰일을 겪었다. 전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만큼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고사했으나 베트남대사가 여러 차례 찾아와 권유하는 바람에 맡았다. 그런데 베트남 새댁이 시집온 지 일주일 만에 남편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지에서 외교 단절 얘기까지 나왔다. 그는 시신을 병원에 안치하고 임시 상주를 맡는 한편 유가족을 초청해 숙소 등 편의를 제공했다. 전국에서 성금과 위로가 답지하면서 일단락됐다. 그는 지난해 국내 10개 기업으로 투자시찰단을 꾸려 하노이를 방문했다.

도용복 엘살바도르 명예영사(사라토가 회장)는 나이(72세)를 잊고 지금도 오지 여행을 즐긴다. 사업자금을 마련하려고 백마부대 창설 요원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그는 삶의 여유를 찾기 위해 50세 때부터 지금까지 150여 개국의 오지를 찾았다. 오지 여행을 토대로 1998년 ‘남미·아프리카 기행1’을 펴내자 여러 곳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왔다. TV에도 출연했다. 강연을 들은 지인이 명예영사를 찾던 주한 엘살바도르대사관에 그를 추천했다. 그는 ‘음악이 있는 세계문화기행’을 주제로 전국을 돌며 강의하고 있다. 명예영사 배지를 늘 달고 다니는 그는 강의 때 시간을 쪼개 엘살바도르를 소개한다.

김정순 독일 명예영사(한국담수토부 대표)는 1966년 22세 때 간호조무사로 독일에 건너가 현지 병원에서 일하면서 독일어를 배웠다. 68년 본대학 간호학과에 입학했으나 가족의 종용으로 2년 수료 뒤 귀국해 메리놀간호대에서 간호사 자격증을 땄다. 독일어 실력 덕분에 72년 부산에 설립된 한독직업훈련원에서 일했고, 독일 조선 기자재 기업의 대리점을 맡기도 했다. 84년 독일 기업과 선박 부품을 생산하는 합작기업을 세웠다. 2003년 독일인 명예영사가 작고하자 이듬해 그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명예영사로 임명됐다. 그는 부산독일문화협회를 만들고 자신의 빌딩에 독일문화원을 열어 독일을 알리고 있다.

정동창 세이셸 명예총영사(인오션M&C 대표)는 2003년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 참가한 케냐 선수에게 편의를 제공한 게 계기가 돼 명예영사가 됐다. 마라톤 전문 여행사를 경영했던 경험을 살려 휴양지 홍보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세이셸에서 국제마라톤대회를 열고 있다.

재계에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아일랜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그리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브라질) 구자열 LS그룹 회장(베트남)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마다가스카르)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뉴질랜드)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솔로몬 제도) 김영대 대성산업 회장(에콰도르) 등이, 학계에선 신일희 계명대 총장(폴란드) 조원권 우송대 부총장(라오스) 조동성 서울대 명예교수(핀란드) 등이 명예영사를 맡고 있다. 김승호 투발루 명예영사(보령제약그룹 회장)와 김은선 에콰도르 명예영사(보령제약 회장)는 부녀이고, 선승훈 스웨덴 명예영사(대전 선병원장)와 선경훈 루마니아 명예영사(선치과병원장)는 형제다.

우리나라도 세계 91개국에 150명의 재외 명예영사를 두고 있다.

김상철 전문기자 sckim007@donga.com
#주한명예영사#민간 외교관#명예영사#부산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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