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록 시인 “날것 그대로 나만의 경험, 보편적 이야기로 풀어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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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 ‘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 펴낸 유병록 시인

평범한 사물의 본성을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하는 유병록 시인. 창비 제공
평범한 사물의 본성을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하는 유병록 시인. 창비 제공
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유병록 시인(32)의 첫 시집 ‘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창비)가 나왔다.

이번 시집에도 실린 시인의 등단작 ‘붉은 호수에 흰 병 하나’는 절명의 순간에 바쳐진 작품으로 생물의 마지막 한순간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는 평을 받았다. 문단에 발을 디딘 지 5년째, 평범한 일상에서 새로운 삶의 결을 발견해내는 시선은 섬세하고 이미지는 선명하다. 시인은 “그동안 적어온 시를 한 권의 시집으로 정리하고 보니 대체로 나의 이야기, 내가 겪고 본 일이더라”면서 “그런 경험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것보다 보편적인 이야기로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인은 바람에 날려 길바닥을 굴러다니는 구겨진 종잇조각에서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읽어낸다. ‘세계의 비밀을 누설하리라 다짐하던 때를 떠올렸을까 검은 뼈가 자라듯 글자가 새겨지던 순간이 어른거렸을까 뼈를 부러뜨리던 완력이 기억났을까//구겨지고 나서야 처음으로 허공을 소유한 지금은 안에서 차오르는 어둠을 응시하고 있을까’(‘구겨지고 나서야’)

주변에 존재하는 사물은 생명과 감각을 얻는다. ‘누군가의 살을 만지는 느낌//따뜻한 살갗 안쪽에서 심장이 두근거리고 피가 흐르는 것 같다 곧 잠에서 깨어날 것 같다//순간의 촉감으로 사라진 시간을 복원할 수 있을 것 같은데//두부는 식어간다/이미 여러번 죽음을 경험한 것처럼 차분하게 … 두부를 만진다/지금은 없는 시간의 마지막을, 전해지지 않는 온기를 만져보는 것이다’(‘두부’)

시인은 수록작 중 역동성과 희망이 깃든 ‘붉은 달’,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은 아픔을 담담하게 풀어낸 ‘사자(死者)의 서(書)’에 애착을 느낀다고 했다. ‘붉은 달’에서는 ‘붉게 익어가는/토마토는 대지가 꺼내놓은 수천개의 심장’(‘붉은 달’)이라면서 이 생의 붉은빛을 움켜잡고, ‘사자의 서’에서는 ‘늙어서 죽은 자는 지혜의 책이, 젊어서 죽은 자는/혁명의 책이 된다더군/아이가 죽으면 예언서가 된다더군’이라면서 고통을 신화적 상상력으로 승화시킨다.

손택수 시인은 “유병록 시인의 발자국은 일상의 평면을 파고들어 수직적인 심연을 선물하며 광활한 대지의 상상력으로 우리를 이끈다”고 했다. 유 시인은 “시를 쓴다는 자의식은 있지만 주변의 보통 사람들처럼 살고 싶다. 그래서 내 시를 읽는 독자들이 마치 자신의 이야기 같다고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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