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대박 뒤에 사회갈등 숨어있다

동아일보 입력 2013-08-30 03:00수정 2013-08-30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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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영화들 여름 극장가 점령… 한달 관객수 2000만명 사상 첫 돌파
설국열차(왼쪽) 숨바꼭질(오른쪽)
‘설국열차’ ‘더 테러 라이브’ ‘숨바꼭질’ ‘감기’…. 여름 극장가를 점령한 이 영화들 덕분에 이달 한국 영화 한 달 관객 수가 사상 처음으로 2000만 명을 넘겼다. 그런데 다른 쪽에서는 작품의 내용을 유심히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화들은 공통적으로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불안을 담고 있다. ‘설국열차’가 892만, ‘더 테러 라이브’ 547만, ‘숨바꼭질’ 444만, ‘감기’ 283만 명. 모두 2000만 명이 이 같은 ‘어두운 영화’들에 공감한 셈이다.

○ 영화는 사회를 담는 창

영화는 드라마와 달리 관객이 능동적으로 구매하는 콘텐츠다. 무차별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드라마에 비해 표현의 제약도 적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 대중이 생각하는 것, 원하는 것이 보인다.

‘설국열차’는 체제 내의 계급 갈등에 대한 묘사와 새로운 시스템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더 테러 라이브’는 공사 현장에서 억울하게 죽은 노동자의 아들이 정부와 언론에 억울함을 호소해도 안 되자 테러를 벌이는 이야기다. ‘숨바꼭질’에서는 잘사는 아파트 주민에 대한 집 없는 극빈층의 공격성이 드러난다. ‘감기’에선 위기 상황에서의 계층 갈등이 도드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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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영화들은 가족 단위 관람이 가능한 ‘순한 콘텐츠’보다 스릴러, 누아르(범죄, 폭력을 담은 영화) 같은 ‘독한 콘텐츠’가 대세다. 올해 흥행 순위 10위 안에는 ‘7번방의 선물’과 ‘박수건달’을 제외하면 모두 스릴러나 누아르다. ‘베를린’ ‘감시자들’ ‘신세계’ 같은 영화들이 모두 이런 장르다.

반면 미국 극장가는 따뜻한 감성을 담은 가족 영화가 대세다. 올해 흥행 순위 10위권에 ‘슈퍼배드2’ ‘몬스터대학교’ ‘오즈의 마법사’ 등 초등생이 관람 가능한 영화가 7편이나 된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요즘 한국 영화는 확실히 무거운 소재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보연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정책센터장은 “영화를 제작할 때 관객이 공감하는 소재를 선택하는 것은 기본”이라며 “한국 영화들이 요즘 어두운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했다. 한 영화 제작사 대표는 “시대가 요구하는 이야기를 담아야 영화가 폭발력이 있다. 요즘 시나리오 작가들은 불안감, 분노, 권력의 폭력, 부조리 같은 소재를 그린 각본을 많이 가져온다”고 전했다.

○ “불안한 시대에 영화에서 탈출구 찾아”

전문가들은 독한 영화의 득세를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닥친 신자유주의의 확장과 2008년 이후 이어진 경제위기에서 원인을 찾는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보수 정권이 성장에 가치를 두면서 이런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점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본도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21세기 소년’이나 ‘진격의 거인’ 같은 종말론을 담은 만화가 빅 히트를 쳤다. 요즘 영화들에는 젊은 세대의 절망이 반영돼 있다. 영화 제작자들이 이 점을 놓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더 테러 라이브(왼쪽) 감기(오른쪽)
계층 간 소통의 부재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요즘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사회 이동에 대한 대중의 기대치도 낮아 패배의식이 팽배해 있다. 그런데 ‘숨바꼭질’이나 ‘설국열차’에서 보듯 영화에서는 폭력적이나 폭발적인 방식으로 해결을 한다.” 김석호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의 해석이다.

신분 상승에 대한 절망감은 수치로 확인된다. 통계청의 전국 성인 대상 설문조사에서 ‘다음 세대에서 계층 상승이 가능하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가능성이 낮다”는 응답은 1999년 11.1%에서 2011년 42.7%로 치솟았다.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동과 계급의 문제가 사회적 공간으로 나오지 못하고 문화적 영역에서 소비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문제를 법적, 제도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상상 속에서만 해결하는 방식으로 가고 있지 않은지 우려된다. 정치권과 엘리트 계층이 영화에 표현된 대중의 심리를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한국영화#사회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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