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빛과 소금으로]<2>청주 주님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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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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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슈퍼마켓을 한다고?
알고보니 소외 이웃 위해!

《교회와 슈퍼마켓, 상품권…. 어울리지 않는 단어처럼 보이지만 이를 사랑으로 하나로 묶어낸 교회가 있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 사창동 ‘청주 주님의 교회’(예장 대신 교단). 이 교회는 상품권을 발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슈퍼마켓도 운영한다. 신자가 아닌 일반인도 교회의 문턱을 느끼지 않는 열린 교회로도 알려져 있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 사창동의 청주 주님의 교회 일러스트. 담장도 없는 이 교회는 골목 옆에 문을 연 사랑의 나눔 마켓을 통해 교회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충북 청주시 흥덕구 사창동의 청주 주님의 교회 일러스트. 담장도 없는 이 교회는 골목 옆에 문을 연 사랑의 나눔 마켓을 통해 교회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주서택 담임목사
주서택 담임목사
최근 방문한 이 교회는 다른 곳과는 확실하게 달랐다. 먼저 눈길을 끈 것은 교회 본당과 작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있는 ‘사랑의 나눔 마켓’이다. 165m²(약 50평) 남짓한 공간에 쌀과 라면, 통조림, 세제, 화장지 등 60여 종의 생활필수품이 빼곡하게 진열돼 있다. 기부 받은 의류는 1000원에 판매한다. 이날도 서너 명이 필요한 옷과 생필품을 고르고 있었다.

2007년 4월 문을 연 이 마켓은 교회에서 운영하는 맞춤형 사회 구제의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아직도 끼니를 걱정하고 경제적인 이유로 삶을 포기하는 이웃들이 주변에 있습니다. 구호품을 받거나 식사를 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주서택 담임목사(59)의 말.

이 마켓의 운영 원칙은 분명하다. 실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하고,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도록 배려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회는 매년 1억 원어치의 ‘사랑나눔 상품권’을 발행한 뒤 매달 신자들에게 1인당 5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지급한다. 이 상품권들은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신자와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가족이 있다는 이유 등으로 사회안전망에서 소외된 이웃들에게 전달된다. 마켓은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며 매주 화∼목요일 열린다.

이 마켓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교회의 이웃사랑이 신앙에 관계없이 이뤄져야 한다는 신자들의 믿음이다. 자원봉사자 박영숙 씨(46·청주시 흥덕구 운천동)는 “일부 교회와 신자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차갑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교회 내에서 ‘끼리끼리’ 잘 지내는 게 아니라 세상과의 소통”이라며 “이 마켓은 교회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사랑을 실천하는 장이자 이제 우리 교회의 자부심이 됐다”고 말했다. 실제 이 교회는 전체 예산의 50% 이상을 선교와 교회 밖 이웃사랑에 사용하고 있다.

청주 주님의 교회가 운영하는 ‘사랑의 나눔 마켓’을 찾은 이용객들이 필요한 물품을 고르고 있다. 이곳에서는 교회 발행의 상품권만 사용되며 전체 손님의 약 80%가 교회와 관계없는 일반인들이다. 청주 주님의 교회 제공
청주 주님의 교회가 운영하는 ‘사랑의 나눔 마켓’을 찾은 이용객들이 필요한 물품을 고르고 있다. 이곳에서는 교회 발행의 상품권만 사용되며 전체 손님의 약 80%가 교회와 관계없는 일반인들이다. 청주 주님의 교회 제공
“교회 표어가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교회’입니다. ‘목사나 사람들의 꿈’이 아니라…. 사실 교회 건축이나 세습 등 요즘 대형교회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고민하면 쉽게 풀립니다. ‘스님의 정신이 무소유라면 교회 목사는 청지기’죠. 맡겨진 물질은 하나님 뜻에 따라 써야죠.”(주 목사)

2002년 12월 교회 개척부터 현재까지 교회는 ‘허리띠를 졸라 매며 살아야 한다’는 가난한 교회의 정신을 오롯하게 지켜가고 있다. 주 목사는 개척 당시 철거 직전의 헌 예배당 건물을 구입했다. 건축이 아니라 본당의 낡은 외부 벽돌을 교체하는 리모델링을 선택했고 의자와 집기는 주변 교회의 것을 재활용했다. 십자가조차도 한 신자가 나무를 베어 만든 것이다.

본당 외벽에서 다른 교회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것을 봤다. 이곳이 한때 다른 교회였음을 알리는 주춧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내부에도 ‘○○교회’라는 주변 교회의 표시가 있는 의자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대학부 간사인 강선화 씨(25)는 “높고 호화로운 치장은 하나님의 뜻과 관계없다. 검소한 교회 운영으로 주변을 돕고 있는 우리 교회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신자 7명으로 출발한 이 교회는 이제 1000여 명이 출석하고 있고 농어촌의 미자립 교회 100여 곳을 지원하고 있다.

민주적인 교회 운영 방식도 교회 재산을 둘러싸고 원로목사와 담임목사, 장로 등 내부 구성원의 갈등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는 개신교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교회는 처음부터 통상 70세인 담임목사의 정년을 65세로 낮췄다. 담임목사와 장로의 경우 임기제(6년)를 도입했고 출석 신자 3분의 2의 찬성을 받아야 연임이 가능하도록 했다.

외양이 아닌 제대로 된 청지기의 삶이 얼마나 힘든가는 주 목사의 말에서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설교가 참 어렵습니다. 설교 그대로 살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들이 설교대로 살고 있는지 성도(신자)들이 언제나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주서택 목사의 ‘내가 배우고 싶은 목회자’ 민병억 목사
정년 4년 남기고 조기 퇴임, 은퇴 목회자끼리 따로 예배

민병억 목사(75·사진)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의 총회장을 지냈다. 청주 복대교회에서 23년간 목회를 한 뒤 현재 원로목사로 있다.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70세가 아닌 66세에 조기은퇴해 교단과 한국 개신교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교회 울타리를 넘어 선교단체와 지역사회를 섬기는 데 앞장섰고 경로대학과 선교원을 운영하면서 미용과 목욕, 환경, 병원 등 다양한 선교 봉사단을 통해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해왔다.

요즘 원로목사와 후임 목사의 갈등이 개신교회 분쟁의 한 원인이 되고 있는데, 청주 복대교회의 경우 후임 목사를 청빙하는 과정에서 전적으로 성도들의 의견을 반영했다. 자신은 후임 목사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이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있고 다른 시골교회를 섬기면서 은퇴한 목회자들끼리 따로 예배를 하고 있다. 원로목사의 이상적인 모델이 되는 분이다.

청주=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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