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레드야드 “한국 古지도의 매력은 생물 같은 역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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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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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서 펴낸 개리 레드야드 美컬럼비아대 교수

‘강리도’서 진화한 ‘천하도’ 왼쪽 끝은 강리도의 윤곽. 오른쪽 끝은 천하도의 윤곽이다. 개리 레드야드 교수는 강리도가 진화해 천하도에 이르렀다고 설명한다. 강리도의 홍해와 아라비아 해가 천하도에서 강으로 진화하고 아라비아 반도는 그 사이에 낀 반도가 됐으며 아프리카 도 대륙의 본체로 융합됐다는 것. 레드야드 교수는 이처럼 천하도가 동아시아 최고의 지도인 강리도와 맥락을 같이한다고 주장했다. 소나무 제공
‘강리도’서 진화한 ‘천하도’ 왼쪽 끝은 강리도의 윤곽. 오른쪽 끝은 천하도의 윤곽이다. 개리 레드야드 교수는 강리도가 진화해 천하도에 이르렀다고 설명한다. 강리도의 홍해와 아라비아 해가 천하도에서 강으로 진화하고 아라비아 반도는 그 사이에 낀 반도가 됐으며 아프리카 도 대륙의 본체로 융합됐다는 것. 레드야드 교수는 이처럼 천하도가 동아시아 최고의 지도인 강리도와 맥락을 같이한다고 주장했다. 소나무 제공
하얗게 핀 구름처럼 백두산이 가장 높은 곳에 솟아 있다. 다른 산들보다 더 희고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산으로 둘러싸인 한가운데 천지가 심장처럼 오롯이 자리 잡고 있다. 남쪽으로 펼쳐지는 무수히 넓은 지형. 산맥과 산맥이 맞닿아 꿈틀꿈틀 요동치는 것 같다.

‘갑산부형편도(甲山府形便圖).’ 마치 살아 있는 듯한 이 지도의 매력에 사로잡힌 외국인이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의 개리 레드야드 한국학 명예교수(79·사진). 한국의 고지도와 역사 연구에 매진해온 그가 최근 ‘한국 고지도의 역사’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이 지도는 꼭 기사에 실어줘야 합니다. 많은 한국인 독자들께 꼭 보여드리고 싶거든요.”

그는 호기심 많은 소년 같았다. ‘갑산부형편도’는 백두산 이남의 넓은 지역을 관할하던 갑산부(甲山府)에서 이 지역의 형세를 파악할 목적으로 18세기 말 제작한 지도. 그는 이 지도에 ‘생명이 진동한다’고 했다.

“기괴한 형세가 꼭 사람의 뇌 같지 않나요. ‘대동여지도’처럼 실용적인 지도도 좋지만 저는 그보다는 상상이 들어 있고 변덕스러운 지도가 더 좋습니다. 이 지도는 제가 세계에서 제일 좋아하는 지도입니다.”

그는 이어 “지도는 살아서 진화하는 생명체와 같다”는 독특한 주장을 펼쳤다. “17세기에 대량 유통됐던 ‘천하도(天下圖)’는 1402년에 만들어진 ‘강리도(疆理圖)’가 진화한 결과입니다. 예전에 ‘천하도가 불교에 기원을 두고 만들어졌다’든지 ‘중국 고대 지도인 산해경(山海經)을 모방했다’든지 했던 설명은 모두 잘못된 것이죠.”

사람 뇌를 닮은 ‘갑산부형편도’ “기괴한 형세가 살아 움직이는
 사람의 뇌와 같다.” 개리 레드야드 교수는 갑산부형편도(甲山府形便圖)를 생명을 갖고 진동하는 지도라고 표현했다. 갑산부는 백두산
 남쪽의 넓은 지역을 관할하던 조선 관청. 백두산이 지도 왼쪽 위에 보인다. 지도 한가운데 ‘갑산’이라고 동그라미로 표시돼 있다.
 18세기 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람 뇌를 닮은 ‘갑산부형편도’ “기괴한 형세가 살아 움직이는 사람의 뇌와 같다.” 개리 레드야드 교수는 갑산부형편도(甲山府形便圖)를 생명을 갖고 진동하는 지도라고 표현했다. 갑산부는 백두산 남쪽의 넓은 지역을 관할하던 조선 관청. 백두산이 지도 왼쪽 위에 보인다. 지도 한가운데 ‘갑산’이라고 동그라미로 표시돼 있다. 18세기 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를 줄여 부른 말인 강리도는 조선왕조 개국을 기념해 국가적 프로젝트로 권근이 제작한 동아시아 최고(最古)의 세계지도다. 천하도는 제작 시기가 일정치 않은 세계지도로 둥글게 생긴 지도의 가운데에 내대륙(內大陸)이 있고 고리 모양의 바다(내해·內海)가 둘러싼 추상적인 세계지도다. 제작 시기에서 두 세기나 차이가 나는 두 지도의 연관성을 주장한 학자는 레드야드 교수가 처음이다.

“강리도는 서쪽 부분에서 아프리카가 대륙의 본체로 융합됩니다. 이때 아라비아 해와 서인도양은 남쪽으로 흐르는 하나의 긴 강으로 진화하죠. 즉 천하도의 삼각형 모양 반도는 아라비아 반도의 흔적이고 커다란 내해는 지중해의 흔적이 됩니다.”

그는 동아시아 최고의 지도인 강리도와 그 맥락이 닿아 있는 천하도가 조선인들의 전통적인 세계관을 잘 반영해 서양식 세계지도가 보급된 19세기에도 큰 인기를 끌었다고 설명했다.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김정호에 대해서는 한때 교과서에 ‘나라를 위해 조정에 지도를 바쳤다가 오히려 국가의 안보기밀을 유포한 혐의로 체포돼 감옥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쳤다’는 내용이 실리기도 했지만 오늘날에는 식민주의 사관을 가졌던 일본 역사학자들이 지어낸 얘기로 받아들여진다. 그는 “만약 조정에서 그런 조치를 취했다면 정부 기록이나 개인 저술에 관련 내용이 무엇이든 남아 있었을 것”이라며 “김정호는 세계적인 지도학자지만 (그의 업적이나 삶이) 과장되거나 왜곡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레드야드 교수는 6·25전쟁 직후 1954년 미군 상병으로 한국에 처음 왔다. 그는 서울 인사동과 명동에 있던 클래식 다방을 특히 좋아했다며 “지금은 없어진 ‘돌체’라는 다방에서 한국 연구를 결심했고 그 뒤로 50여 년간 그 길을 걸어왔다”고 회상했다.

김진 기자 holyj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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