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입주의 독서’ 주창 佛 바야르 교수, 한국 소설가 - 평론가들과 좌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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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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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스토리 재창작, 누가 막겠나”

피에르 바야르 교수는 “작품 속 등장인물이 자율성을 갖게 되면 작가도 그를 모를 수 있다”며 “독자의 세계가 반영된 새로운 스토리를 구축하는 것은 언제나 가능하다”고 말했다. 좌담회에 참석한 번역가 백선희 씨, 문학비평가 방민호 서울대 교수, 바야르 교수, 소설가 김연수 씨, 영화비평가 박유희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왼쪽부터). 출판사 여름언덕 제공
피에르 바야르 교수는 “작품 속 등장인물이 자율성을 갖게 되면 작가도 그를 모를 수 있다”며 “독자의 세계가 반영된 새로운 스토리를 구축하는 것은 언제나 가능하다”고 말했다. 좌담회에 참석한 번역가 백선희 씨, 문학비평가 방민호 서울대 교수, 바야르 교수, 소설가 김연수 씨, 영화비평가 박유희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왼쪽부터). 출판사 여름언덕 제공
‘독서는 창작인가.’

27일 오후 서울 중구 봉래동1가 프랑스문화원에서 열린 예사롭지 않은 제목의 좌담회는 청중의 열기로 뜨거웠다. 다소 도발적인 제목을 단 좌담회의 중심 인물은 피에르 바야르 프랑스 파리8대학 문학교수(57)였다.

정신분석학자이기도 한 바야르 교수는 2007년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출간한 이후 ‘셜록 홈즈가 틀렸다’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등과 같은 비평을 통해 ‘독자에게는 저자가 구축해 놓은 세계에 개입해 등장인물의 보이지 않는 행동까지 읽어내고, 저자와 다른 결론을 낼 수 있을 정도로 능동적인 독서를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주장을 펴왔다. 이날 좌담회에는 소설가 김연수 씨와 문학비평가 방민호 서울대 교수, 영화비평가 박유희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번역가 백선희 씨(사회자)가 참석했다.

바야르 교수가 추구해온 독서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창조적 독서’다. 그는 독자의 적극적인 개입을 주장하는 ‘개입주의 비평’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그는 ‘셜록 홈즈가…’에서 작가인 코넌 도일이 놓친 용의자들의 행동까지 이성적으로 유추하고 상상한 뒤 ‘주인공 홈즈가 지목한 범인이 틀렸다’는 주장을 새로운 추리소설을 쓰듯이 풀어냈다. 나아가 ‘햄릿’과 같은 고전에도 손을 뻗쳐 햄릿의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삼촌 클로디어스가 아닌 새로운 인물로 지목하기도 했다.

좌담회에서 바야르 교수는 “상상의 세계로 도피한 작가가 본 것을 독자가 그대로 볼 수 없다”며 “독자의 세계가 반영돼 보일 수밖에 없고, 이런 독자의 주관성이 작품의 느낌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독자의 이 같은 적극적 개입을 작가가 반대하거나 기분 나빠하지는 않을까.

김연수 씨는 “작품을 쓰면서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한 명이라도 그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며 “어쩔 수 없이 창조적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것이 독자의 입장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글을 쓸 때 작가의 특성이 응축된 ‘유령작가’가 나를 대신해 이야기를 짓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내 이야기에 손을 댈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적극적 개입이 독자에게 위안과 쾌감을 준다는 해석도 나왔다. 박유희 교수는 “한국은 독서를 신성시하는 독서 강박이 강한 나라다. 바야르 교수의 비평서는 그런 것을 통째로 날려주는 통쾌감이 있다”고 평했다.

개입주의 비평이 창조성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백선희 씨는 원래 저작과 다른 범인을 지목하는 대담함에 놀랐다고 운을 뗐다. 방민호 교수는 “바야르 교수의 적극적 독법은 신선하면서도 충격적”이라며 “‘모든 독서는 오독(誤讀)일 수밖에 없다’는 기존 독서이론은 부정적이었는 데 비해 바야르 교수는 마치 ‘오독이 어딨어? 독자가 다 창조하는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바야르 교수가 책으로 펴내기도 했던 ‘예상 표절’ 개념도 토론회에서 또 하나의 논제였다. 문학작품들 중에는 미래 작가가 쓴 기법을 시대를 앞당겨 활용한 듯한 작품들이 눈에 많이 띈다는 것이다. 이는 작품 대 작품으로만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작품과 작가의 실제 생활과 연결되기도 한다. 예컨대 장 자크 루소는 소설 ‘신 엘로이즈’의 주인공 ‘쥘리’를 만든 뒤 실제로 쥘리와 닮은 ‘소피 두드토’라는 젊은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바야르 교수는 “‘예상 표절’을 통해 새로운 작품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미래의 독자와 작가를 상상해서 소재를 찾을 필요가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며 “미래 문학을 연구하는 교수직을 신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야르 교수는 창조적 독서를 위해 저자가 다른 사람이라고 상상하고 읽는 방법도 제시한다. 영화 ‘전함 포템킨’을 히치콕 감독이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작품 속에서 서스펜스의 요소를 읽어낼 수 있다는 식이다.

이날 청중은 바야르 교수의 개입주의 비평을 작가의 내면만을 서술한 작품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 바야르 교수의 방법이 일반화되면 비평가의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등 10여 개의 질문을 쏟아내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바야르 교수는 “작중 인물은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 작가가 다 알지도 못한다. 그 틈새에서 독자가 상상의 날개를 펼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며, 텍스트는 아주 민감한 유동체”라는 말로 마무리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 바야르 교수는 ::
문학비평에 정신분석 접목해 주목


1954년생. 프랑스 파리8대학 프랑스문학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 2007년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출간한 뒤 프랑스를 넘어 영미권 평단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정신분석학을 문학 비평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충격적인 논리와 결론을 이끌어내 알려졌다. ‘독자는 문학 텍스트와 지금보다 훨씬 자유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2007년 뉴욕 퍼블릭 도서관에서 자신의 독해법 등 독서를 주제로 움베르토 에코와 대담을 하기도 했다. 국내에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비롯해 ‘셜록 홈즈가 틀렸다’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예상표절’ ‘햄릿을 수사한다’ 등이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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