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춤인생 받쳐준 건 기본기와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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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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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 등 대표작 3편 내달 한국초연 앞둔 세계적 안무가 롤랑 프티 씨

“고전발레 테크닉에 충실한 뒤
새로운 시도 해야 진정한 모던”

5일 오전 러시아 모스크바 메리엇호텔에서 만난 안무가 롤랑 프티 씨는 작품을 관류하는 철학을 묻자 “예술이 특정한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훌륭한 무용수들과 함께 작업하며 내가 만들 수 있는 최대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뿐”이라고 말했다. 모스크바=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5일 오전 러시아 모스크바 메리엇호텔에서 만난 안무가 롤랑 프티 씨는 작품을 관류하는 철학을 묻자 “예술이 특정한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훌륭한 무용수들과 함께 작업하며 내가 만들 수 있는 최대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뿐”이라고 말했다. 모스크바=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아홉 살 때부터 춤을 췄다. 스무 살에 안무를 시작했다. 스물 셋에 발레단을 창단했다. 60여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시인 장 콕토부터 화가 피카소, 배우 메릴린 먼로, 프레드 아스테어까지 시대를 상징하는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했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안무가 롤랑 프티 씨(86). 그는 최근 볼쇼이 발레단이 공연하는 자신의 작품 ‘젊은이와 죽음’ ‘스페이드의 여왕’을 보기 위해 러시아 모스크바에 왔다. 5일 오전 모스크바 메리어트호텔에서 만난 그는 커피잔을 든 손을 떨고, 때로는 질문에서 벗어난 답을 하는 노인이었지만 인생 그 자체인 춤에 관해 이야기할 때만큼은 목소리에 힘이 넘쳤고 눈동자는 자부심으로 빛났다.

한국 국립발레단은 대표작인 ‘젊은이와 죽음’ ‘카르멘’ ‘아를의 여인’을 7월 15∼18일 ‘롤랑프티의 밤’이라는 이름으로 공연한다. 세 편 모두 국내 초연이다. 프티 씨는 “주변에서 한국 발레가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가고 있다고 하는데 다른 일정 때문에 한국을 방문하지 못하게 됐다”며 아쉬움을 표한 뒤 “세 작품 모두 내 대표작이기 때문에 환상적인 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46년 초연된 ‘젊은이와 죽음’은 영화 ‘백야’ 도입부에 나오는 발레로 국내 팬들에게 친숙한 작품. 4일 오후 볼쇼이 극장 무대 첫 순서로 오른 공연에서도 이 작품은 10여 차례 커튼콜을 받았다.

70년 세월에도 안무의 생명력을 잃지 않는 비결을 묻자 그는 “모든 것은 기본기와 테크닉에 달려 있다”며 “고전 발레의 기본기를 충실히 다진 뒤 그 위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진정한 모던이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현대무용계에는 내가 만든다면 하루만에라도 완성할 수 있는 작품이 많다”며 현대 무용의 가벼움을 지적했다.

프티 씨는 작품 속에 연극적 요소를 삽입하고 무용수가 공연 중 노래를 부르도록 하는 방식 등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실험적 시도를 해왔다. 뮤지컬과 음악영화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언제나 이유와 의미를 생각하며 일을 할 정도로 머리가 좋지 않다. 그냥 그때 그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뿐”이라고 했다. 1940년 16세의 어린 나이에 미래가 보장되는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입단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 위해” 4년 만에 탈퇴한 사실도 그의 자유분방한 면을 말해준다.

그의 자유로운 성격을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가 ‘카르멘’이다. 1949년 초연 당시로는 파격적으로 여성 무용수 의상에 치맛단을 없애고 주인공 카르멘과 돈 호세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관능적으로 표현해 화제를 모았다.

프티 씨는 “카르멘은 열정적인 인물이고, 그녀의 사랑을 감각적으로 그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전까지는 그런 작품이 없었다. 그래서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초연 당시 카르멘 역을 맡았던 동갑의 지지 장메르와 결혼해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다. 가장 아끼는 작품을 묻는 질문에도 그는 “‘카르멘’이다. 나의 카르멘인 지지를 만나게 해준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올해 가을 프랑스, 영국, 미국에서도 연이어 자신의 작품을 올린다. 그에게 “세계에서 당신의 작품이 공연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행복한가”라고 물었다.

“글쎄, 앞으로도 내 작품이 계속 공연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것과 상관없이 춤은 내 직업, 내 삶, 내 열정, 내 호흡이다. 그러니 계속 일할 거다. 지금이 바로 내 전성기다.

”모스크바=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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