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만에 ‘가요무대’ 돌아온 김동건 아나운서 “간신히 눈물 삼켰네요”

동아일보 입력 2010-05-13 19:48수정 2010-05-13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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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건 아나운서. 동아일보 자료 사진
김동건 아나운서(71)가 7년 만에 KBS 1TV '가요무대'에 복귀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 후인 2003년 이른바 '코드 논쟁' 속에 18년 동안 진행해 온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던 그로서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시 KBS측은 그의 교체를 "MC 세대교체"라고 강변했었다. 10일 복귀 후 첫 녹화방송을 마친 김 아나운서를 단독으로 만났다.

-복귀 소감은.

"얼떨떨하다. 그동안 몇 차례 다시 '가요무대'를 맡게 될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지만 이렇게 현실화될 줄은 몰랐다. 반갑게 맞아 준 방송국 식구들과 7년 동안 이 프로그램을 맡아 준 후배 전인석 아나운서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복귀 후 첫 녹화라 신경이 쓰였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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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인사를 드려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고 주위 분들로부터 의견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무대에 서니 떨리고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더라.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다음부터는 잘 될 것으로 기대한다."

김 아나운서는 1985년 11월 '가요무대'의 마이크를 잡은 이래 2003년 6월 16일까지 18년간 832회를 진행했다. '뉴스 파노라마' '우리들만세'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11시에 만납시다' 같은 정규 프로그램과 이산가족찾기,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같은 특별 생방송의 단골 진행을 맡았지만 '가요무대'는 그의 상징과도 다름없는 프로였다. KBS측도 "'전국노래자랑'하면 송해씨가 떠오르듯, 김동건 아나운서는 '가요무대'의 아이콘과 같은 존재"라며 "국내외 시청자들이 김 아나운서의 구수한 말솜씨를 듣고 싶어 해 '가요무대' 25주년을 기념해 모시게 됐다"고 말했다.

-정권이 바뀌면 방송 프로그램 진행자가 바뀌는 것은 아무래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그동안 '가요무대'에서 하차한 데 대해 일체 공식적 언급을 삼가 해 왔다. 하지만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던 것 같다. 7년 전 '가요무대'를 그만두게 된 상황을 설명해 달라.

"다 지나간 얘기라 시시콜콜 거론하고 싶지 않다. 아직 현직에 있는 후배들도 있고…. 사장이 바뀌면 간판 프로그램의 유지와 진행자 교체는 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한 가지 분명히 얘기해 두고 싶은 것은 어떤 경우에라도 시청자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인기가 있다고 한들 특정 진행자가 어떤 프로그램을 평생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나 역시 언젠가는 '가요무대'를 떠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교체 통보를 받고 보니 참 당혹스럽더라. 18년간이나 진행해 온 프로그램인데 최소한 시청자한테 인사할 기회는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는 완곡하게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방송가에서는 녹화를 마치고 나온 그에게 누군가 "다음 주부터는 다른 사람이 '가요무대'를 진행하게 되니 나오지 마십시오"라고 일방 통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방송국에 항의가 빗발치고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지만 그는 전화기를 끈 채 일절 대응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명예와 자존심이 걸린 문제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행자 교체에 대한 KBS의 설명은 무엇이었나.

"누구도 그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정권이 바뀌고 사장이 교체된 후 그렇게 됐다. 얼마 뒤 누군가로부터 '우리 입장을 좀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간곡한 요청이 있어 후배들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아무 내색하지 않고 KBS사장이 주는 감사패를 받아왔다."

연세대 교육심리학과 출신으로 1963년 3월 동아방송 1기로 아나운서에 입문했다. 현역 최고참 아나운서로 한국아나운서클럽회장을 맡고 있으며 방송사를 가리지 않고 후배 아나운서들을 챙긴다.

-동아방송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들었다.

"당시 동아방송 아나운서 실장은 전영우씨였고, 차장이 박종세씨였다. 당시 동아방송은 재밌고 비판적이어서 대단히 인기가 높았다. 군인 달러 장사 등 방송보도 내용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툭하면 난입하는 바람에 셔터를 수시로 내려야 할 정도였다. 동아방송 출신 아나운서라는 사실에 늘 자부심을 갖고 있다. 동기생이 8명인데 현업에 있는 사람은 나 혼자다."

-아나운서가 대학생들한테 최고 선망의 직종이 됐다.

"라디오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1950, 60년대에는 장기범 강찬선 황우겸 임택근 최계환 강영숙 이광재 전영우 박종세 아나운서 등이 전천후 스타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 아나운서들보다 더 인기가 있었다. 어쨌든 우수한 인재들이 아나운서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본다. 하지만 일단 아나운서의 길에 들어선 이상 전문성을 갖고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야지 한 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 나는 어쨌든 아나운서가 제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이 대목에서 그는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지난 총선 후 후배 아나운서들이 아나운서클럽회장인 그에게 "국회의원에 당선 된 아나운서들에게 축하패를 만들어 주자"고 했을 때 "국회의원 하다가 아나운서가 되면 축하할 일이지만, 아나운서 하다가 국회의원 된 게 무슨 축하할 일이냐"고 했다는 것이다. 아나운서에 대한 그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뼈 있는 농담'이 아닐 수 없다.

-아나운서가 '아나테이너(아나운서+엔터테이너)'화 하고 있는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아나운서는 다른 무엇에 앞서 우리말을 지켜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품위가 있어야한다. 품위가 없이 어떻게 한 나라의 모국어를 지킬 수 있겠느냐. 영국의 표준어는 BBC의 언어이듯, KBS 아나운서들이 사용하는 말이 국어사전에 표준어로 사전에 올라가야 한다. TV 출연자는 사투리를 써도 되지만 진행자는 반드시 표준어를 써야 한다. 아나운서는 자신이 품위를 지키지 못하면 나라의 품위가 떨어진다는 인식을 갖고 방송을 해야 한다."

-오랫동안 '가요무대'를 진행해 왔는데 개인적으로는 어떤 가수와 노래를 좋아하나.

"진행자로서 대답하기 곤란하다(웃음). 내가 이미자를 제일 좋아한다고 하면 패티 김이 섭섭해 할테고, 조영남이 노래를 잘한다고 하면 조용필이 기분이 안 좋을 것이 아니냐. 사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는 윤극영의 '반달'이나 현제명의 '고향생각' 같은 동요다."

-한국 가요의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가요는 아무래도 부르기 싶고 가슴에 와 닿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것 같다. 또 추억을 일깨워 주면서 위안과 위로를 주는 힘이 있다. 합창을 많이 하는 국민이 단결력이 있다는 얘기가 있다. 근데 우리는 합창 보다는 솔로를 좋아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외국에 가서 합창을 유도해 봐도 마땅히 부를 노래가 별로 없다. 앞으로 합창하기 좋은 노래들이 많이 작곡되고 불려 졌으면 좋겠다."

-다시 맡게 된 '가요무대'에 대한 소망이 있다면….

"'가요무대'를 통해 대한민국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국인들이 자긍심을 느끼고, 한 핏줄이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내가 한국인이구나' 하고 실감했다는 편지와 전화를 수도 없이 받았다. 또 이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민족이 지역과 남녀노소를 넘어서 진정한 국민 화합을 이룰 수 있었으면 좋겠다."
7년 만에 복귀한 김동건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1172회 가요무대는 17일 저녁 10시 KBS1 TV를 통해 전국에 방영 된다.

오명철 전문기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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