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기자의 사람이야기]노조법 개정안 통과시킨 추미애 환노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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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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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웠지만 외로워졌죠… 떳떳했기에 후회 안해요”

토요일(9일) 늦은 오후. 추미애 환경노동위원장(52)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본청 위원장실에서 만났다. 연말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여당과 합의 처리한 ‘혐의’로 민주당의 집중 성토 대상이 되고 있어서인지 피곤해 보였다. 잔주름이 별로 없는 얼굴은 실제 나이보다 어려 보이고 전체적인 인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부드러웠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매서웠다. ‘추다르크’ ‘독불장군’ 등 그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생각났다.

그는 요즘 “지방을 돌아다니며 개정 노동법을 설명하고 있는데 다들 이해를 잘해 주시는 것 같아 마음이 좀 가라앉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주말에도 바쁜 듯 보였다.

―어제(8일) 징계문제를 논하는 민주당 의원총회에 인사만 하고 나갔다고 들었다.

“내가 있으면 말들을 막을까 싶어서였다. 면전에서 상처 주는 말들이 오가는 것도 원치 않았고….”

―연말에 “외롭다”는 말을 했는데….

“‘외롭다’하고 ‘의롭다’가 점 하나 차이다. 의로운 결단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후회 없다.”

이날 그의 입에서는 ‘괴롭다’ ‘외롭다’ ‘고독하다’는 말들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남들의 이목이나 평가에 상관없이 살아온 것 같은 그의 외길 행보를 볼 때 매사 남들보다 마음고생을 덜할 것 같았는데 의외였다. 그런 정서적 단어들을 쏟아내면서도 특별히 표정이 변하거나 감정이 묻어나지는 않았다.

―어떻든, 당론을 거스르는 당원 태도는 무책임한 거 아닌가.

“엄밀한 의미에선 어떤 지침일 텐데 민주당에선 그런 것 자체가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민주당론인 서민 근로자, 중산층, 중소기업을 위한 정책을 내는 대안 정당이라는 당론을 어겼나? 오히려 당론을 충실히 따라 민주당을 지켰다. 떳떳하다.”

―위원장이 문을 닫아 버리고 경비까지 불렀다고 (의원들이) 분노하는 것 같던데….

“노동법은 ‘노사’라는 국민이 개입된 문제다. 단순한 정치권의 문제가 아니다. 오랜 숙제이니만큼 꼭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가 있었고 회의장에서 끝장토론하자고 여러 차례 호소했었다. (마지막 날) 시간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의원들이) 주장만 하다 퇴장한 거다. 나도 민주당 의원들이 나가 버릴 줄은 생각 못했다.”

연말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여당과 합의 처리한 ‘혐의’로 동료의원들이 집중 성토 대상이 되고 있는 추미애 환경노동위원장이 대화 도중 활짝 웃었다. 인터뷰 때 그의 입에서는 ‘외롭다’는 말들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지만 입장과 소신을 밝히는 데에는 거침이 없었다. 변영욱 기자
연말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여당과 합의 처리한 ‘혐의’로 동료의원들이 집중 성토 대상이 되고 있는 추미애 환경노동위원장이 대화 도중 활짝 웃었다. 인터뷰 때 그의 입에서는 ‘외롭다’는 말들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지만 입장과 소신을 밝히는 데에는 거침이 없었다. 변영욱 기자
―소통에 실패한 것은 아닌가.

“스킨십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노동법 자체가 누구에게도 점수를 딸 수 없는 사안이다. 오죽하면 환경노동위를 ‘불량 상임위’라고 하겠느냐. 열심히 해도 성과는 없고 원망만 들으니 다들 싫어한다. 의원도 제일 적다. 그러니 13년 동안 법이 발목 잡혀 있었던 거 아닌가. 기본적으로 동행자를 구하기가 어렵다. 한나라당의 직권상정을 막아 잘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는데 오히려 후유증이 남는 것을 보고 굉장히 괴로웠다.”

―실제 보니 사진보다 예쁘기까지 하다.

“하하하. 안 그래도 약하게 보이면 자꾸 더 (무시 당)할까봐 카메라맨들 앞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기운을 넣는다. ‘당당하게 웃으면서 포즈를 취해야지. 카리스마를 내뿜어야지’ 생각한다. 그렇게 기합을 넣고 찍으니 늘 그렇다(강해보인다는 뜻).”

―약한 모습을 전략적으로 써보는 건 어떤가.

“이번 노동법 개정 때 좀 그랬다(웃음). 순식간에 나를 둘러싸고 의원들이 무력을 쓰는데 의자가 흔들리고 정말 신체적 위협을 느꼈다. ‘당하는 모습을 보이면 위원장 체면이 말이 아닌데’ 하면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순간, 누군가 어깨를 꾹 누르는데 정말 아팠다. 나도 모르게 “어깨 만지지 마세요. 진짜 아파요” 하는 말이 터져 나왔다(추 위원장은 실제로 심한 오십견을 앓고 있다고 한다).”

기자가 “그건 약한 모습이 아니라 느낀 그대로 말한 건데”라고 토를 달자 그 말이 들렸는지 안 들렸는지 “어떻든 당신(의원)들도 좀 심했다 싶었는지 곧 평온해졌다”는 답이 돌아왔다. 정말 ‘약한 추미애’의 모습이 있었을까 싶어 낙선 직후 떠난 미국 생활을 물었다.

―미국에서 동료 정치인들에게 전혀 연락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땐 정치에서 벗어나고 싶었나.

“때로 나도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땐, 아무도 나를 보호해줄 사람이 없다, 나 혼자라는 생각이 강했다. 갈라져 싸우고 오해가 오해를 낳는 상황에서 말을 해봐야 소용이 없으니 철저히 고독을 즐기자고 생각했다. 밑바닥까지 가보면 뭔가 있을 것이라 믿었다.”

―‘뭔가’가 (실제로) 있던가.

“어떤 날은 온갖 생각으로 주체할 수 없어 꼼짝 못하고 세 끼 밥도 잊고 밤 12시까지 그대로 앉아 있었다. 너무 속상하고 남이 원망스럽고 그런 부정적인 생각들이 생겼다가 꺼졌다가 하면서 어느 순간 ‘내가 이럴 필요가 없다’ 하고 마음이 열리는 것 같았다.”

―미국에 있을 때 어떤 책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고 들었다.

“‘팀 오브 라이벌스(Team of Rivals·한국말 번역본 ‘권력의 조건’)’라고 링컨 리더십에 관한 책이었다. 링컨의 정치, 링컨의 시대에 대한 책인데, 내 눈에 띈 것은 링컨의 고민이었다. 어떤 결단을 내릴 때 링컨이 가졌던 고독이 절절하게 다가왔다. 정치를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그런 고독감이 이심전심으로 와 닿았다.”

더 말이 이어질 듯싶었는데 끊어졌다. 뭔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내면을 너무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걸까, 기자가 이런 생각을 하며 “어떤 심리인지 말해 달라”고 묻자 말이 이어졌다.

“음…. 누구로부터도 이해받을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는 거다. 가장 가까운 가족마저도 나눌 수가 없는. 그러고 나중에야 비로소 상황이 다 끝나서야 이해받는 상황. 아시다시피 링컨 시대가 지금 우리 시대 이상으로 변화무쌍했잖은가. 책을 보니 링컨도 이해받지 못할 때가 많았더라. 그리고 애초부터 링컨 자체도 위대한 결정체가 아니었다. 순간순간 진심을 다하고 방향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더니 어떤 궤적이 그려진 것이었다. …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는 인터뷰에서 “9분 능선에서 보는 것은 3분 능선에서 보는 것과 다르다”는 말을 했다. 자신이야말로 남들보다 더 멀리 더 많이 보고 있다는 자신감으로 읽혔다. 그리고 세상이 자기를 몰라줘도 언젠가는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도 강해 보였다. ‘링컨의 고독’을 이야기한 것도 그 때문으로 보였다. 연말에 노동법 개정을 주도하며 했던 “십자가를 진 심정” “운명으로 받아들인다”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이 났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포용하고 아우르는 정치의 영역은 홀로 순수하게 외길을 가는 순교자의 심정과는 분명 다르다. 그의 말을 뒤집어 곱씹어보면 ‘열기’보다 ‘닫기’, ‘현재’보다는 ‘다른 곳’에 눈을 두고 있다는 말로도 들린다. 이런 점이 그를 둘러싼 갈등의 출발이기도 할 것이다.

―요즘 한나라당에선 박근혜 전 대표가 세종시 문제를 두고 소신을 강조해 추 위원장도 비슷하다는 말들이 있던데….

“(웃으며) 박 전 대표하고 나하고는 묘한 인연이 있다. 15대 국회에 나란히 입성한 것도 있고 박 전 대표 지역구인 달성군에 다사읍이 있는데 내가 다사 태생이다. (그건 그렇고) 박 전 대표님은 당내 지분 같은 게 있다. 흔히 말하는 ‘친박(친박근혜)’계이다. 정치적 지분이란 건 파워이고 끌고 당길 수 있는 현실적인 힘이다. 박 전 대표님은 그냥 말씀 한 마디만 하셔도 나서서 강변해주고 변호해주는 사람이 줄을 서지만 나는 다르다. 같은 당 의원들에게까지 비난을 듣는다. 그리고 박 전 대표님하고 저하고는 아무래도 (세상 보는) 관점이 다르지 않은가. 이를테면 사학법이나 노사문제 등을 바라보는 관점 같은 것에서 말이다.”

추 위원장은 예전에 인터뷰에서 “정치를 연(꽃) 밭”에 비유했다. 사회의 온갖 더러운 것을 연꽃으로 승화하는 것이 정치의 기술이요, 힘이라면서 말이다. 지금도 이런 생각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3선 중진의원이 정치라는 복잡한 세계를 몰라서 하는 레토릭은 아닐진대, 실제 국민에게 보이는 정치는 그와 반대이니 누구 탓일까.

어둠이 내린 국회에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미추(美醜)도 없고 호오(好惡)도 없이 세상을 덮는 저 눈 같은 세상을 ‘한국 정치’가 과연 만들어줄 수 있을까. 국회를 나오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추미애 의원의 심경 토로

■ 기자가 본 추위원장은

‘고독의 끝’ 경험하고
다시 돌아온 정치인
아직 ‘판사DNA’가…


추미애 위원장은 대구 경북(TK) 출신으로 1995년 당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다. 한양대 법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후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의 길을 걸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가 정동영 의원과 함께 ‘차세대 주자’라고 치켜세우기도 했지만 2004년 노무현 탄핵을 주도한 민주당의 총선 선대위원장을 맡아 3보일배로 눈물의 유세를 펼쳤으나 고배를 마셨다.

낙선 후 2004년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로스쿨 초빙연구원으로 떠났다가 2년 만에 돌아와 18대 총선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드물게 수도권 지역(서울 광진을)에서 당선됐다.

그에게는 정치인이라기보다 ‘판사적 유전자(DNA)’가 강하게 보였다. 어느 인터뷰에선가는 “아버지 성격을 많이 닮았다. 어느 누군가가 틀린 이야기를 하면 대놓고 잘못을 지적하고 싸움이 나도 ‘심판자’ 역할을 했던 아버지 모습을 보고 자랐다”고 했다. 추 위원장은 ‘고독의 끝’을 경험하고 다시 돌아온 정치는 어땠느냐는 질문에 “덜 연연해한다”고 답했다. 그동안 거친 욕설이나 취중(醉中) 언행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는 점을 지적하자 “나는 아닌데 상대방이 딴소리를 하니 답답해서 그랬다. 요즘엔 좀 달라진 것 같다. 어제(의원 총회) 같은 경우도 ‘예전의 추미애’ 같으면 물러서지 않고 그 자리에서 이해시키고 설득하려고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도 이제 지천명에 들어선 것일까.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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