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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횡설수설/정성희]宗家의 紋章

입력 2010-11-17 03:00업데이트 2010-11-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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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紋章)은 유럽의 군주나 귀족들이 가문의 권위와 위엄을 보여주려고 만든 상징이다. 유럽에서 문장이 발달한 이유는 투구 때문이었다. 기사가 얼굴을 뒤덮은 투구를 착용하면서 전투나 기마경기 중에 적과 아군을 구분할 수 없게 되자 방패에 문양을 표시한 것이다. 그래서 유럽에서 대부분의 문장은 테두리가 방패 모양이다. 프랑스 국왕은 백합 문양을, 영국 국왕은 사자 문양을 쓴다. 영국 랭커스터 가문과 튜더 가문이 왕위를 놓고 벌인 전쟁을 ‘장미 전쟁’이라고 하는 것도 각각 붉은 장미, 흰 장미를 문장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무사(武士·사무라이)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도 문장이 꽃을 피웠다. 메이지 일왕(日王)이 왕권 강화에 기여한 사이고 다카모리에게 하사한 국화 문장, 가마쿠라 막부를 세운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다이묘인 사타케 요시노부에게 준 부채 문장이 유명하다. 일본의 문장은 오동나무 해바라기 등나무 등 식물을 많이 채택한다. 유럽에 비해 디자인이 단순하고 색채도 수수하다. 이런 문장은 현대로 이어져 다카시마야 백화점, 스미토모사(社) 등이 설립자 가문의 문장을 회사의 로고로 사용한다.

▷문장은 왕권이 약하고 귀족과 막부의 세력이 강했던 봉건제도를 배경으로 번성했다.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가진 조선 왕조나 중국 왕조에서 문장 문화가 없었던 이유다. 가문의 위세를 드러내는 문장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왕과 황제에 대한 불경(不敬)이 될 수 있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종가(宗家)가 가장 많이 있는 경상북도가 도내 종가들에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을 만들어 주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문장 제작을 의뢰받은 서울대 조형연구소는 해당 가문의 가보나 사연 등을 형상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문장의 테두리는 대중을 향해 열린 종택(宗宅)의 대문을 상징하는 세로줄로 통일했다. 영주 연복군 종택 문장에 들어 있는 소나무, 눈, 꽃은 연복군의 아호인 송설헌(松雪軒)을 이미지화했다. 시인 조지훈 생가인 영양 한양 조씨 종택 문장에는 매가 들어 있다. 매가 내려앉은 곳에 집터를 정했다는 일화에서 따왔다. 새로 만드는 문장이 잊혀지고 있는 종가와 선비문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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