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한애란]딥시크는 혁신이 아니다, 그러나…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4일 23시 12분


한애란 경제부 기자
한애란 경제부 기자
낯선 파란 고래 한 마리가 전 세계 기술업계를 뒤집어 놨다.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 얘기다. 성능은 오픈AI ‘o1’과 비슷한데 개발비는 5%밖에 안 되는 가성비 추론모델 ‘R1’을 지난달 내놨다. 대형 AI 모델 개발이 이렇게 적은 비용으로 가능할 줄이야. 그것도 중국에서.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부으며 AI 성능 경쟁에 열 올리던 실리콘밸리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른바 ‘딥시크 쇼크’다.

하지만 혹시 딥시크가 오픈AI 챗GPT 답변을 베껴 훈련한 건 아닐까. 그건 따져볼 문제다. 그리고 설사 베낀 적 없다는 딥시크 측 주장을 받아들여도 이런 비판은 충분히 가능하다. “딥시크는 데이터·알고리즘 최적화의 성공적 시도일 뿐, 기술의 파괴적 혁신은 아니다.” 다른 나라도 아닌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財新)이 내놓은 냉정한 평가다.


기존 기술 최적화의 결과


실제로 딥시크가 공개한 저비용 AI 개발 비법 중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라 할 만한 건 없다. 이를테면 효율성과 속도를 높여준 전문가 혼합(Mixture of Experts) 아키텍처. 복잡한 작업을 작고 쉬운 여러 개 작업으로 쪼개서 돌리는 머신러닝 기법인데, 그 시작은 1991년 나온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논문이다. 30년도 더 된 오래된 개념인 데다 미국 오픈AI나 프랑스 미스트랄도 이미 이전에 적용한 적 있다. 다만 딥시크 모델이 작업을 더 잘게 쪼갤 수 있게 잘 훈련됐다는 게 차이일 뿐이다.

또 사전 데이터 없이 AI가 스스로 학습하는 강화학습. 역사를 따지면 19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개념 역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양 연구자들이 만들어냈다. 9년 전 이세돌 9단과 대국했던 구글 알파고가 바로 강화학습을 통해 학습했다. 딥시크 연구진은 이미 알려진 이 개념을 가져와 AI 모델 훈련에 최적화했다.

즉, 기존에 알려져 있던 여러 기술을 가져와서 잘 조합하고 다듬는 데 성공한 것. 그게 딥시크 가성비 AI 개발 비결의 사실상 전부다. 냉정하게 따지면 대단한 혁신은 없다는 지적이 일리 있다.

그런데 기술 혁신이 아닌 최적화이면 별 의미가 없는 걸까. 딥시크만이 아니라, 세계 시장을 휩쓰는 중국 기업의 기술적 성취는 대부분 이런 최적화를 통해 이룬 것이다.

끊임없는 개선에 강한 중국

중국 바이트댄스가 운영하는 틱톡은 동영상 플랫폼 시장에서 후발주자이다. 하지만 추천 알고리즘 최적화로 이용자가 좋아할 만한 영상만 쏙쏙 골라 띄워주면서, 미국 MZ세대가 가장 사랑하는 숏폼 플랫폼이 됐다.

배터리 세계 1위 기업 CATL을 키운 건 소재 혁신이나 전에 없던 차세대 배터리가 아니다. CATL은 예나 지금이나 에너지 밀도가 낮은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주로 생산한다. 대신 배터리 구조를 최적화해서 배터리셀을 더 촘촘하게 채워 넣는 ‘셀 투 팩(Cell to Pack)’ 방식으로 소재가 가진 한계를 극복했다.

이미 나와 있는 기술을 활용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최적화는 이제 중국 기술기업의 특장점이 됐다. 연구개발에 매달릴 고급 기술 인력이 충분히 공급되기에 가능한 일이다.

최근 딥시크 쇼크를 소개한 파이낸셜타임스 칼럼은 이를 ‘카이젠(지속적 개선)’이란 용어로 설명한다. 1970, 80년대 일본 제조업의 성공 방식을 일컫는 카이젠을 이제 중국 산업계가 마스터하면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평가다. 중국 기업은 훨씬 더 큰 규모로 카이젠을 수행하기 때문에 그 변화 속도도 더 빠르다.

기술 세계에서 1등은 영원하지 않다. 우리는 천재적 창의성에 열광하지만, 역사를 보면 기술은 끊임없이 개선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최적화이든 카이젠이든, 딥시크가 혁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우습게 볼 순 없는 이유다.

#딥시크#중국#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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