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임우선]숫자로 만들어진 트럼프의 비즈니스적 세계관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26일 23시 15분


임우선 뉴욕 특파원
임우선 뉴욕 특파원
‘난 10달러를 달라는 게 아닙니다. 심지어 5달러도 아니에요. 2달러만 주세요.’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약 석 달 동안 거의 매일, 어떤 날은 하루에 두 번 이런 내용의 문자가 왔다. 발신자의 이름은 도널드 트럼프. 대선 취재를 위해 트럼프 캠프에 연락처를 등록했더니 생긴 일이었다. 요청 액수는 매일 달랐다. 12달러, 9달러, 14달러…. 어떤 날은 ‘당신이 내게 5달러를 줘야 할 5가지 이유’와 같은 논리적인(?) 메시지가 왔다. 기부가 일상인 미국이라지만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매일 ‘돈을 달라’는 집요한 메시지를 보내는 건 ‘컬처 쇼크’였다. 카멀라 해리스 캠프에서는 받지 못한 문자였다.

아메리카 퍼스트? 머니 퍼스트!

그에게는 취임식도 ‘비즈니스’였다. 미국 대통령 취임식은 공식 행사만 정부 자금으로 치르고, 부대행사 격인 무도회 등은 당선인 주관의 취임 위원회에서 기부금을 확보해 준비한다. 이번 취임식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100만 달러 기부자에게 자신과의 만찬 참석권 등 각종 ‘특전’을 제시해 역대 최고 금액인 1억7000만 달러를 모았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기부금을 합친 것보다 많은 액수다.

돈을 향한 그의 열망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자신과 아내의 이름을 딴 가상화폐인 일명 ‘트럼프 코인’과 ‘멜라니아 코인’을 발행했다. 가상화폐 업계에서조차 ‘이건 아니다’란 말이 나올 정도로 이해충돌 논란이 뜨겁지만, 어쨌든 그는 문자 그대로 하루아침에 수백억 달러의 시장을 갖게 됐고 첫날 거래 수수료로만 5800만 달러를 벌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틱톡 금지법’에 따라 미국에서의 사업을 접어야 할 운명에 처한 중국계 플랫폼 틱톡에도 그는 ‘딜’을 시도했다. ‘지분 절반을 미국에 주면 사업을 허가해 주겠다’고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설명할 때 ‘거래 중심적(transactional)’이란 말이 빠지지 않는 이유다.

그는 큰돈이 있지만 작은 돈벌이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는 모자, 달력, 심지어 성경책도 판다.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라는 제목의 이 성경은 59.99달러지만 사인이 들어간 한정판은 1000달러다.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벌 수 있는 건 다 벌자’는 의지가 느껴지는 행보다.


비즈니스 마인드로 협상 전략 짜야


온 세상을 숫자로 보는 ‘비즈니스적 세계관’을 가진 트럼프 대통령의 특징은 외교와 통상 정책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그는 취임도 하기 전부터 파나마에 ‘옛날에 우리가 지어준 파나마 운하에서 미국 배들에 돈을 뜯어갈 거면 다시 파나마 운하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캐나다에는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면 관세가 없다’고 했고, 그린란드에는 ‘돈 줄 테니 그린란드를 팔라’라고 했다. 모든 결정에 ‘돈’이 중심인 그에게 품위, 염치, 예의, 존중 따윈 ‘0원짜리’ 가치일지 모른다.

그런 그는 한국에 어떤 거래를 요구할까.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당일 행정부에 “4월 1일까지 미국의 무역적자 원인을 조사하고, 기존 무역협정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한국 역시 대미 무역에서 흑자를 보고 있는 만큼 봄이 되면 어떤 식으로든 ‘청구서’가 날아올 가능성이 높다.

비록 한국 정치는 눈 뜨고 보기 힘들 만큼 엉망일지라도 외교와 통상 분야만큼은 ‘숫자’가 정해지기 전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사전 정보를 확보하고 선제적 대응을 했으면 한다. 남은 시간은 60일. 정해지고 난 뒤엔 늦다. 오직 ‘기브 앤드 테이크’ 마인드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비즈니스 외교를 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상대하려면 한국 역시 철저한 비즈니스 마인드로 우리가 ‘기브한’ 것과 ‘기브할’ 것을 앞세워 치밀하게 협상을 벌여야 할 것이다.

#트럼프#비즈니스#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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