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셋째 주 서울에서 가장 집값이 크게 오른 지역은 송파구였다. 서울 전체 아파트 가격 변동률은 지난해 말부터 지난주까지 4주 연속 0%였는데 송파구는 0.09%나 올랐다. 상승 폭은 전주(0.04%)의 2배가 넘었다. 대출 규제가 지속되는 가운데 탄핵 정국에 따른 정치 불안까지 겹치면서 서울 전역에서 집을 사려는 매수 심리가 얼어붙은 가운데, 송파구 집값만 크게 뛴 것이다.
송파구의 ‘나 홀로 상승’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입에서 비롯됐다. 오 시장은 14일 민생토론회에서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은 투기 수요를 차단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규제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 대지면적이 6㎡ 초과 주택은 실거주하는 경우만 살 수 있으며 2년간 실거주 의무도 부여된다. 전세를 끼고 집을 미리 사두는 갭투자가 원천 차단되는 것이다.
현재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개발 예정지 인근인 ‘잠상대청(송파구 잠실동, 강남구 삼성동 대치동 청담동)’을 비롯해 압구정과 여의도동, 목동 재건축 단지 등이 토지거래허가구역이다. 이 가운데 5년째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는 잠상대청 해제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갭투자가 가능해지면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에 호가를 높이는 집주인들이 나타나면서 집값이 들썩이고 있다.
그동안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에 부정적이었다. 지난해 8월에는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에 대해 깊이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서초구 반포동 일대 신고가 거래가 잇따르면서 “왜 반포동은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빠졌냐”는 형평성 논란이 일자 추가 지정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그랬던 오 시장이 5개월 만에 해제 카드를 꺼낸 걸 두고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지난해 하반기 내내 오르던 서울 집값이 최근 상승세를 멈추긴 했지만, 단순히 집값 때문이라면 고금리 여파로 연중 집값이 하락했던 2022, 2023년에 해제했어야 자연스럽지 않냐는 지적이 나온다.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두고 정치적 해석과 논란이 일어나는 건 지정과 해제 기준이 두루뭉술하기 때문이다. 관련 법령에는 ‘국토부 장관이나 시도지사가 투기적인 거래가 성행하거나 지가(地價)가 급격히 상승하는 지역과 그러한 우려가 있는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한다고 돼 있다. 어느 정도 올라야 급격한 상승 또는 그러한 우려가 있다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은 그 어디에도 없다.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하지만 결국 장관이나 시도지사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은 국가나 공공이 대규모 개발 사업을 추진할 때 필요한 제도다. 투기 수요를 막지 않으면 그만큼 개발 비용이 올라가 공공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다만 아무리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일지라도 개인의 재산권을 제한할 때는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야 한다. 그래야 주민 반발을 최소화하고 괜한 오해도 사지 않을 수 있다. 장관과 시도지사의 판단에 좌우되는 토지거래허가구역 제도를 손봐야 하는 이유다. 당장 법 개정이 어렵다면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새로 지정하거나 해제할 때 그 기준을 상세하게 공개하는 게 첫걸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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