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손’ 장영자 씨가 처음 사기죄로 구속된 건 1982년이다. 당시 나이 38세였다. 사채업을 하던 그는 자금난에 시달리던 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담보로 그 금액의 2∼9배에 달하는 어음을 받은 뒤, 약속과 달리 어음을 현금화해 버렸다. 만기가 돼 어음을 막지 못한 기업이 부도 위기에 처하면서 사기 행각의 전모가 드러났다. 지금으로 보면 전형적인 폰지 사기인데 당시 장 씨는 “경제는 유통이에요. 난 경제 활동을 한 겁니다”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단군 이래 최대 사기극’이라 불린 장 씨의 어음 사기 피해액은 6400억 원이었다.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현재 가치로는 2조9000억 원가량이다. 기업들이 원금의 몇 배에 이르는 어음을 순순히 담보로 맡겼을 리 없으니 ‘권력형 비리’가 의심됐다. 장 씨의 남편은 중앙정보부 차장 출신으로 유정회 국회의원을 지낸 고 이철희 씨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도 인척 관계로 얽혀 있었다. 장 씨의 형부가 전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씨의 삼촌인 이규광 씨였다. 더욱이 하루 1000만 원씩 펑펑 써댄 장 씨의 호화생활이 알려지며 민심의 분노에 불이 붙었다. 결국 남편 이 씨와 함께 15년형을 선고받았다. 장 씨는 끝까지 “나는 권력투쟁의 희생양”이라고 강변했다.
▷장 씨가 최근 위조 수표를 쓰다가 5번째 구속돼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농산물 납품 계약을 체결하며 위조 수표를 건네고 3000만 원을 받아 가로챘다. 올해 81세인 장 씨는 4번의 사기죄로 이미 33년을 복역했다. 남편 이 씨의 삼성전자 주식 1만 주(액면분할 전)가 담보로 묶여 있어 돈이 필요하다거나, 비자금이었던 구권 화폐를 바꿔주면 웃돈을 주겠다는 등의 사기를 쳤다. 반복되는 사기로 장 씨가 처음 구속된 이래 감옥 밖에서 보낸 시간은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장 씨는 왜 사기를 멈추지 못할까. 과거 그를 수사했던 검사들의 증언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는 정신감정을 해야 할 만큼 자신을 과시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다. 누구든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고, 남을 속이는 데 쾌감을 느꼈다. 마치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처럼 허황된 측면이 있어 경제관념이 되레 부족해 보였다고도 했다. 서울 한 여대의 ‘메이 퀸’을 지낸 미모, 언변에다 돈과 권력까지 업었으니 이런 자기애적 망상이 부풀기만 했던 것 같다.
▷그가 궁극적으로 갇힌 곳은 철창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거짓 세상이다. 사기를 통해 일확천금을 노린 것인지, 세상을 쥐락펴락했던 그날을 잊지 못했던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자신조차 철저히 속이면서 헛된 욕망을 탐닉하는 데 일생을 허비하고 말았다. 돈, 권력, 가족…. 그 곁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탐욕의 덧없음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고통만이 그를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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