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불 앞의 ‘패밀리 푸드’ 퐁뒤[정기범의 본 아페티]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26일 23시 09분


좀처럼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프랑스 파리에 한파가 계속된다는 일기예보를 들은 아이들이 퐁뒤를 먹을 때라며 며칠째 노래를 부른다. 간단한 준비 과정으로 한겨울 식탁 분위기를 이보다 좋게 하는 음식이 있을까 싶은 생각에 치즈와 바케트 두 개를 사들고 귀가했다.

정기범 작가·‘저스트고 파리’ 저자
정기범 작가·‘저스트고 파리’ 저자
음식을 뜨거운 액체에 담가서 먹는 요리의 일종인 퐁뒤는 그뤼예르나 에멘탈과 같은 경성 치즈를 굵게 갈아 화이트 와인, 백후추, 약간의 다진 마늘과 감자 전분을 두툼한 퐁뒤 냄비에 넣은 뒤, 촛불 또는 알코올 램프로 가열해 빵에 찍어 먹는 스위스와 프랑스 산악 지대의 겨울 인기 음식이다.

이 음식은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스위스의 요리책에 처음으로 레시피가 소개된 것이 1875년이다. 목초지에서 여름을 보낸 목동들에 의해 발명된 퐁뒤는 겨울철에 한정된 자원인 빵과 치즈를 기반으로 한 음식이기에 비슷한 환경의 산간 지역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해 보관성이 좋은 치즈와, 오래된 빵과 화이트 와인만 있으면 가족이 불가에 모여 앉아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1930년대 스위스 치즈협회에서 치즈 소비를 늘리기 위한 방법으로 대대적인 장려 운동을 펼치면서 퐁뒤는 국민 음식화됐고, 알프스 자락을 공유하는 프랑스의 산간 지역과 스키장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빠른 속도로 전파됐다.

프랑스에서 흔히 즐기는 퐁뒤용 치즈는 파리 여행 중에도 마켓이나 치즈 전문점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사부아 지역의 그뤼예르, 에멘탈 치즈 정도면 훌륭하다. 작은 스토브나 버너 위에 주물 냄비(조금 두께가 있는 냄비로도 가능)를 놓고 버터를 계란 크기 정도로 충분히 넣은 다음, 치즈가 녹기 시작하면 긴 막대기에 작게 자른 바게트를 꽂고 옛날 솜사탕을 만드는 식으로 접시 주위를 둘러 빵과 치즈를 함께 먹으면 된다.

프랑스에서는 퐁뒤를 먹을 때 재밌는 놀이를 한다. 긴 막대기 끝에 빵을 꽂아 치즈에 담글 때 냄비에 빠뜨린 사람이 일행이 마시는 술값을 지불하기도 하고, 여자가 빵을 빠뜨리면 양옆 사람에게 키스를 하게 하는 식이다. 과거 로마인들은 퐁뒤 파티를 할 때 빵을 놓쳐 치즈에 빠뜨리는 사람에게 몽둥이 찜질이나 호수에 뛰어들게 하는 무서운 벌칙을 내리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치즈 퐁뒤 말고도 정사각형 모양의 작은 쇠고기 덩이를 끓는 기름에 넣어 먹는 부르고뉴식 퐁뒤나, 화이트 와인에 큐브 형태의 작은 닭고기나 쇠고기를 넣어 먹는 와인 퐁뒤, 그리고 초콜릿 퐁뒤까지 있어 주물 냄비 하나만 있으면 다양한 퐁뒤를 즐길 수 있다.

파리에서 치즈 퐁뒤를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는 ‘레 퐁뒤 드 라 라클레트(Les fondus de la raclette)’나 ‘르 샬레 사부아야르(Le Chalet Savoyard)’, ‘사뵈르 드 사부아(Saveur de Savoie)’를 추천한다. 이곳들은 정겨운 시골 분위기를 내는 장식과 사부아 지역의 신선한 치즈를 사용해 잠시나마 파리가 아닌 프랑스 산골 마을 별장이나 스키장에 초대된 듯한 기분을 만끽하게 해준다. 한국이나 프랑스 어디에서도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는 퐁뒤는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겨울을 나게 해주는 ‘패밀리 푸드’임에 틀림없다.

#겨울#불#패밀리 푸드#퐁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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