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강변하며 ‘통치행위론’을 꺼내 든 것은 퇴진 거부 방침을 분명히 밝힌 지난달 12일 담화에서였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권 행사는 사면권, 외교권 행사와 같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행위”라는 것이다. 사법의 영역을 넘어선 결단이므로 탄핵이나 수사·재판의 이유로 삼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후 윤 대통령 측은 통치행위를 명분으로 수사 절차를 거부했지만, 법원의 체포·구속영장 심사에서는 인정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 측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변론에서 계엄 선포는 “헌법 질서 수호를 위한 최후 수단”,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이라고 강조하며 통치행위론을 반복하고 있다. 헌재가 이를 받아들인다면 탄핵안이 각하될 수도 있기 때문에 윤 대통령으로선 포기할 수 없는 카드라고 여길지 모른다.
외교권·사면권과 계엄선포권은 다른 차원
하지만 그동안의 헌재 결정과 법원 판결을 살펴보면 ‘계엄=통치행위’라는 주장은 허상에 가깝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외교권’ 사례는 2003년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에 관한 헌법소원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헌재가 통치행위로 보고 각하한 유일한 사례다. 헌재는 국방·외교에 관련된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라는 점과 함께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를 지켜 이뤄진 것임이 명백”하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이번 계엄은 어땠나. 지금까지 나온 진술과 정황으로 보면 흠결이 한둘이 아니다.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표결을 막기 위해 국회에 병력을 투입했다는 점이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졌고,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는 허겁지겁 진행하다 국무위원들의 부서 없이 끝났다. 계엄 건의는 총리를 거치지 않았고, 계엄 선포문 공고 절차도 없었다.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에 대해선 “사면권자의 고도의 정치적·정책적 판단에 따른 ‘시혜적’인 조치”라고 본 대법원 판례가 있다. 그렇지만 형량을 줄이거나 복권해 주는 사면과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는 계엄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실제로 헌재는 금융실명제 실시, 신행정수도 건설법, 개성공단 전면 금지 조치 등에 관한 헌법재판에서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직접 관련된다”는 이유로 통치행위가 아니라 심판 대상이라고 했다. 이런 점들은 언급하지 않은 채 통치행위가 광범위하게 인정되는 듯이 말하는 건 ‘눈 가리고 아웅’이다.
판결문 앞뒤 자르고 유리한 부분만 부각
나아가 일부 여권 인사는 ‘전두환·노태우 내란 사건’ 판례를 통치행위론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제시한다. 앞뒤 자르고 유리한 부분만 떼어낸 일종의 기만이다. 판결문에는 “비상계엄 선포·확대는 고도의 정치적·군사적 성격을 지닌 행위”라면서도 “국헌 문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해진 경우에는 범죄에 해당하는지 심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결국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을 보면 어디에 방점이 찍혔는지는 자명하다. 계엄 포고령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더 적극적이다. 정치활동 목적의 집회·시위 금지, 언론·출판 검열, 영장 없는 수색·구속 등을 규정한 유신 계엄 포고령은 “위헌이고 위법해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번 포고령에도 비슷한 내용이 들어 있다.
계엄선포권이나 긴급재정경제명령권 같은 국가긴급권은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권한이고, 헌법에 정해진 대로 사용했는지 사법적으로 판단하는 게 마땅하다. 다시 말해 계엄선포를 무조건 통치행위로 인정해 사법 심사에서 배제한다면 굳이 헌법에 발동 요건과 절차를 명시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런데도 계속 통치행위론을 방패처럼 앞세우는 것은 어떻게든 계엄의 책임을 회피해 보겠다는 말이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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