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그런 적 없다” “그게 아니다” “나 아니다” 그리고 “잘 살펴 달라”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21일 23시 30분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3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차기환 변호사와 대화하고 있다. 2025.01.21.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3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차기환 변호사와 대화하고 있다. 2025.01.21. 사진공동취재단
비상계엄 사태로 탄핵소추된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헌법재판소에 처음으로 출석했다. 대통령이 헌재 재판관들에게 “잘 살펴달라”며 직접 입을 연 만큼 솔직하고 논리적인 답변을 기대했지만 윤 대통령에게서 나온 것은 “그런 적 없다” “그게 아니다” “나 아니다”로 요약되는 거짓과 모르쇠 그리고 남 탓이었다.

계엄 당시 해제 요구 결의안 표결을 방해하기 위해 국회에 군을 투입한 게 아니라는 주장부터 어이가 없다. 윤 대통령은 “군인들이 (국회) 직원들이 저항하니까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는데도 그대로 나오지 않았느냐” “계엄 해제 요구 결의를 보고 바로 군을 철수시켰다” 등의 주장을 폈다. 하지만 이는 표결을 안 막은 게 아니라 못 막은 것이라는 게 현재까지의 수사 결과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의 검찰 공소장을 보면 윤 대통령은 ‘총이나 도끼를 써서라도 국회 본회의장 문을 부수고 들어가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군에 지시했다. 현장 지휘관들이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다. 윤 대통령 측이 14일 헌재에 낸 답변서에서 “계엄이 적어도 며칠간 이어질 걸로 예상했다”고 한 것도 계엄 실행 의지를 보여 준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수방사령관, 특전사령관에게 의원을 끌어내라고 지시한 사실이 있느냐’는 재판부 질문에 “없다”고 했다. 군 사령관들 탓으로 돌린 것이다. 또 국회 무력화 시도의 핵심 쟁점인 ‘비상입법기구’에 대해서도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비켜 갔다. 윤 대통령은 ‘비상입법기구 예산을 편성하라는 쪽지를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줬느냐’는 질문에 “준 적 없다. 계엄 해제 후 기사에서 봤다”며 “이걸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김 전 장관밖에 없는데…”라고 했다. 이는 윤 대통령이 참고하라고 하면서 당시 옆에 있던 실무자를 통해 이 쪽지를 주었다고 한 최상목 기재부 장관의 발언과도 배치된다.

윤 대통령은 ‘부정선거론’을 계엄 선포의 배경으로 든 것에 대해선 “음모론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팩트 확인 차원”이었다고 했다. 대국민담화에서 “총체적인 부정선거 시스템이 가동된 것”이라고 주장했고, 실제 무장한 군이 투입됐는데도 마치 자신은 부정선거 의혹이 있으니 한번 체크해 보란 취지였다고 짐짓 발을 뺀 것이다.

나아가 윤 대통령 측은 “포고령은 계엄의 형식을 갖추기 위한 것이지 집행할 의사가 없었고 집행할 수도 없는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도 내놨다. 하지만 경찰은 포고령에 따라 국회를 봉쇄했고, 윤 대통령은 경찰청장에게 “국회 들어가려는 의원들 다 체포해. 포고령 위반이야”라고 지시했다는데 이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다.

국회와 선관위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계엄 해제 표결을 막으려 했는지, 정치활동을 금지하려 했는지는 계엄의 위헌·위법성을 가를 핵심적인 부분이다. 계엄의 최종 책임자인 윤 대통령의 결심 없이 이뤄질 수 없는 사안이라는 건 상식이다. 몇 마디의 억지와 궤변으로 덮어질 일이 아니다.
#윤석열#대통령#헌법재판소#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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