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해 판사실을 수색하고 집기를 부수던 시점. 보수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에 ‘1·19 자유민주항쟁 선언문’이란 글이 올라왔다. ‘국민저항권’이 발동됐다는 글이었다.
작성자는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1·19 자유민주항쟁’이 시작되었음을 선포한다”며 “현직 대통령을 구속한 사법부와, 헌법재판소를 비롯한 기타 헌법기관 전체가 더 이상 국민을 대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의 자유민주항쟁 선언과 이에 따르는 개인 및 단체의 행동은 우리가 직면한 위기와 국가의 파멸 위험성을 고려하였을 때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적었다. 법원 난입 상황을 담은 영상에서도 “이제 국민저항권이야!”라고 외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국민저항권 담았다는 ‘자유민주항쟁 선언문’
같은 날 서울 광화문 집회에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이미 국민저항권이 발동된 상태이고 국민저항권은 헌법 위에 있다”고 주장했다. 7일 국민의힘 조배숙 의원도 국회에서 “(헌재가 헌법을 위반하면) 국민이 저항권을 발동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스팔트 우파를 넘어 제도 정치권에서도 국민저항권이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국민저항권. 우리 헌법에 적시된 개념은 아니다. 130조에 이르는 헌법 어디에도 국민저항권이란 말은 없다. 다만 헌법학자들은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적힌 헌법 전문에 국민저항권의 근거가 담긴 것으로 분석한다. 4·19는 국민이 스스로 들고일어나 정권을 무너뜨린 시민혁명이었기 때문이다.
헌재는 2014년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 결정을 내리면서 결정문(2013헌다1)에 저항권의 개념과 행사 요건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통진당이 집권 방안 중 하나로 저항권을 제시했던 만큼 저항권이 무엇이고, 어떻게 행사될 때 헌법적 정당성을 갖출 수 있는지 판례로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헌재는 저항권을 “공권력의 행사자가 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거나 파괴하려는 경우 이를 회복하기 위하여 국민이 공권력에 대하여 폭력·비폭력, 적극적·소극적으로 저항할 수 있다는 국민의 권리이자 헌법수호제도”라고 규정했다. 저항권은 ‘실력적 저항’이어서 ‘질서 교란’ 위험이 수반된다는 점도 인정됐다. 여기까진 윤 대통령 지지자들과 생각이 같다.
그러나 행사 요건으로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헌재는 저항권의 요건을 3가지로 엄격히 제한했다. 먼저 ‘단순 위헌’을 넘어 민주적 기본질서의 중대한 침해나 이를 파괴하려는 시도가 있어야 하고, 저항권 외에는 유효한 구제 수단이 없어야 한다. 무엇보다 저항권 행사는 ‘민주적 기본질서의 유지와 회복’이라는 ‘소극적인 목적’에 그쳐야 하고, 정치·경제·사회 체제를 개혁하는 수단으로는 이용될 수 없다.
尹 지지자 저항권은 헌재 판례와 어긋나
백번 양보해서 윤 대통령 탄핵안 의결과 구속으로 민주적 기본질서가 중대하게 침해됐다고 인정해 보겠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구제 수단이 충분하다. 비상계엄이 정당했다면 탄핵심판에서 이기면 되고, 석방을 원한다면 구속적부심이나 보석이 있다. 내란죄도 무죄를 받아낼 기회가 3차례나 주어진다. 하지만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바로 법원을 침탈하고 판사를 겁박해 사법부 기능을 마비시키려 했다. ‘소극적 목적’으로 민주적 기본질서를 회복하려 한 게 아니라 아예 파괴하려 했던 것이다.
헌재는 통진당의 저항권을 ‘폭력’으로 규정짓고 위헌정당으로 판단했다. 윤 대통령을 돕는 법조인들이 진정으로 지지자들을 걱정한다면, 헌재 판례부터 제대로 알려주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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