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월담을 시도하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법치주의의 최후 보루인 법원이 폭력 시위대에 침탈당하는 충격적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집권세력이 오히려 경찰을 문제 삼는 듯한 발언을 내놓고 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20일 “폭력은 정당화할 수 없다”면서도 “민노총 앞에서 순한 양이던 경찰이 시민에게 한없이 강경했다”며 경찰을 비판했다. 또 “거대 야당에 줄 선 수사기관, 권력의 눈치를 보는 비겁한 사법부가 헌정질서를 유린하는 장본인”이란 주장도 폈다. 권성동 원내대표 역시 “경찰의 과잉 대응을 규명하겠다”고 했다. 법치를 강조하던 보수정당 지도부가 했다고는 믿기 힘든 궤변이자, 내로남불이다. 극우 성향 종교인이 “헌법 위에 국민저항권 있다”며 수준 이하의 선동 행위를 하는 것에 끌려가는 듯하다.
국민의힘이 폭력 시위대의 잘못을 지적하면서도 경찰의 강경 대응 운운하며 양비론적 태도를 취하는 것 자체가 법치주의 부정이다. 선진국에서 법원이 시위대에 습격당하는 일이 벌어졌다면 경찰이 어떻게 대응했을지 상상해 보라. 이는 불법 폭력시위 엄단을 강조해온 당 정체성과도 맞지 않다. 국민의힘은 한나라당, 새누리당 시절부터 민노총 등의 폭력시위 때마다 엄단을 주문해 왔다. 반대편의 불법엔 엄벌을 요구하고, 내 편의 불법은 “분노를 이해한다”며 감싸는 것인데, 이런 이중잣대는 동의받기 어렵다.
누구보다 무책임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폭력난입 사태 뒤 옥중 입장문을 통해 뒤늦게 평화적 의사 표현을 강조했지만, “억울하고 분노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엄밀히 따지면 “끝까지 함께 싸우겠다”는 대통령의 선동성 발언이 지금의 사법부 침탈 행위로 이어진 측면도 있는 것 아닌가. 불법파업 세력을 이권 카르텔로 규정하고 “폭력에 굴복하면 악순환이 반복된다”던 그 대통령이 맞나 묻게 된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가 이러니 윤상현, 김민전 등 몇몇 의원들의 무분별한 발언과 행동을 탓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다. 검사장까지 지낸 석동현 변호사의 발언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는 17일 “우파의 장점이자 약점은 민노총처럼 경찰차 뒤집지 못하는 것인데, 도저히 감내할 수 없다면 우리도 저항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현직 대통령을 변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듯한 선동이다. 그는 최근 외신기자들에게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이 내전으로 이어질 것처럼 말하기도 했다. 대통령 뜻으로 여겨질 변호인의 강성 발언이 반복되지만, 집권세력 누구도 지적하는 이가 없다.
서울서부지법에서 폭력을 휘두르다 2030청년을 포함해 90명이 체포됐다. 정치 지도자라면 이들에게 옳고 그름, 해야 할 일과 피할 일을 제시해야 한다. 대법원은 긴급회의를 열고 “서울서부지법 침탈이 마지막이 아니라 (헌법기관 연쇄 공격의) 시작이 되어선 곤란하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대통령과 집권당은 어떤 책임의식을 갖고 있는가.
시위대의 이번 난동은 사법부에 대한 심각한 테러다. 대통령이 무장병력을 국회로 보내 입법부를 유린한 것과 다를 게 없다. 집권 세력이 “분노 이해” 운운하며 오히려 시위대보다 경찰을 책망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앞으로도 이들의 행위를 옹호하거나 적어도 제어하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그런 정당을 어떤 상식적인 국민이 지지하겠나. 이제라도 불법적인 폭력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극단 세력과 단호히 절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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