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법원 난동과 헌재 월담… 2025년 서울 복판서 벌어진 일 맞나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19일 23시 30분


헌정 사상 초유의 사법테러, 부추긴 자까지 엄히 책임 물어야

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서울 서부지법에 지지자들이 진입해 소화기를 뿌리며 난동을 부리고 있다. 2025.1.19/뉴스1
19일 새벽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법원 앞에 모여 있던 지지자들이 법원 청사로 침입해 난동을 부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법치주의 최후의 보루인 법원 습격은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날 오후 시위대는 대통령 탄핵 심리를 진행 중인 헌법재판소 앞으로 몰려가 시위를 이어갔는데 이 중 3명이 헌재 담을 넘다 경찰에 체포됐다.

이날 서울서부지법에서 벌어진 폭력 사태는 모범적인 신흥 민주주의 국가의 수도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충격적이다. 이날 오전 3시경 윤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소식이 전해지자 대통령 지지자 수백 명이 경찰에게서 빼앗은 장비와 현장에 있던 철제 집기 및 소화기 등으로 법원 유리창과 외벽을 부수고 법원 청사로 뛰어들었다. 폭력 시위대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경찰 42명이 부상을 입고 공수처 수사관들도 구타를 당했다. 이들은 취재진을 향해서도 폭력을 휘둘렀다.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할 때까지 3시간 동안 서부지법은 무법지대였던 셈이다.

폭력 시위대는 “영장 판사 찾아내자”며 법원으로 난입했는데 실제로 판사실이 있는 7층까지 올라가 수색했다고 한다. 사무실에 판사가 남아 있었더라면 무슨 봉변을 당했을지 모를 일이다. 제3세계 정치 후진국에서나 간혹 벌어지는 법원과 판사를 겨냥한 폭력을 가장 안전한 도시로 꼽히는 서울 한복판에서 목격할 줄 누가 알았겠나. 당시 현장에는 극우 유튜버들이 ‘국민 저항권’ 운운하며 폭력 시위대를 선동했다고 한다.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심각한 범죄다. 법원 난동을 부린 자는 물론이고 폭력을 선동한 이들도 철저히 조사해 엄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 같은 폭력 사태에 대해 가장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할 사람은 윤 대통령일 것이다. 윤 대통령은 관저 농성 당시 지지자들을 향해 “애국 시민” “뜨거운 애국심” 운운하며 집단 행동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날 오후 옥중 입장문을 내고 “억울하고 분노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나 평화적인 방법으로 의사를 표현해 달라”고 했다. 경찰에는 “강경 대응보다 관용적 자세”를 요구했다. 공권력에 도전하는 불법 시위에 대해선 누구보다 강경 대응을 지시했던 대통령 아닌가.

여당도 폭력 사태를 규탄하면서도 “폭력 책임을 시위대에 일방적으로 물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경찰의 ‘과잉 대응’을 문제 삼았다. 윤상현 의원은 폭력 사태 하루 전 서부지법 담장을 넘다 체포된 시위대를 언급하며 “훈방될 것” “애국시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했고, 김재원 전 최고위원은 폭력 사태 후 “함께 거병한 아스팔트의 십자군 전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집권 여당의 정치인들이 지지자들의 불법 행위에 면죄부를 주며 선동하고 있다. 정치적 책임을 무겁게 물어야 할 것이다.

외신은 법원 난동 사태를 긴급 뉴스로 전했다. 한 달여 전 비상계엄이 국회의 신속한 결의로 무산되자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긍정 평가했던 외신들이다. 그런데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둘러싼 공권력 대치에 이어 법원 테러 사태까지 터졌으니 국가 위신과 대외 신인도가 얼마나 추락할지 우려된다. “끝까지 싸우겠다”는 옥중 메시지로 지지자들을 무책임하게 선동하는 대통령, 그런 대통령에 분명히 선을 긋지 못하는 무분별한 여당이 온 나라를 물리적 충돌도 마다하지 않는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다.
#법원#난동#헌재#월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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