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대한체육회장 당선인이 16일 서울 중구 프레이저 플레이스 센트럴에서 열린 제42대 대한체육회장 당선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유승민 전 대한탁구협회장의 대한체육회장 당선은 이기흥 회장 체제하에서 누적됐던 여러 퇴행적인 모습에 대한 체육인들의 개혁 열망이 뭉쳐진 결과라 볼 수 있다. 다음 달 28일 임기를 시작하는 유 당선인의 어깨에는 체육계 개혁이라는 사명이 놓여 있다.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유 당선인은 회장 취임 후 가장 먼저 그동안 체육계 불공정 논란의 핵심이 되어 왔던 ‘스포츠공정위원회’부터 개혁해야 한다. 스포츠공정위원회는 각종 심의를 통해 체육계 전반의 공정성을 확립하기 위해 마련된 기구다. 체육회 규정을 총괄 관리하고 단체와 개인에 대한 포상 및 징계를 심의한다. 여기에 체육회 또는 회원단체 임원의 연임 횟수 제한을 심의하고 체육단체 간에 발생하는 분쟁을 우선 조정 중재한다. 스포츠공정위는 ‘공정’과 ‘페어플레이’를 핵심으로 하는 체육계에서도 그 공정성 유지의 중심 역할을 담당하는 ‘심판’과도 같은 존재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스포츠공정위원회는 기존 이 회장 체제하에서 불공정의 상징처럼 되어 버렸다. 이 회장은 각종 혐의로 정부로부터 직무가 정지됐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측근이 중심이 된 스포츠공정위원회를 통해 ‘짜고 치는 고스톱’ 소리를 들으면서 3선 도전을 승인받았다. 스포츠공정위원회는 또한 축구 승부조작 관련자 기습 사면 시도 및 위르겐 클린스만,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을 둘러싸고 온갖 논란을 빚고 있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4선 도전도 승인했다. 이전에도 스포츠공정위원회를 둘러싸고 체육회 입맛에 맞는 임원은 가산점을 주고서라도 연임을 승인하고 그렇지 않은 후보는 탈락시켰다는 의혹을 받는 등 잡음이 있었다. 스포츠공정위원회의 그동안 행태가 불공정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러한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앞으로도 논란이 될 수 있는 핵심 조항은 바로 스포츠공정위원들의 선임 과정이다.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스포츠공정위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협의하여 총회에서 결정한다. 그러나 총회의 의결로 선임 권한이 회장에게 위임될 수 있고 회장은 외부 인사 과반수가 포함된 추천위원회를 구성하여 그 의견을 들어 선임할 수 있다. 즉 체육회가 회장에게 스포츠공정위원 선임권을 주어 회장이 스스로 스포츠공정위원들을 선임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외부 인사 과반수가 포함된 추천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지만 평소 자신과 관련 있는 인물들로 얼마든지 채워 넣을 수 있기에 눈 가리고 아웅 식이 될 수 있다. 이 회장은 바로 이를 근거로 2023년 대의원총회에서 스포츠공정위원 선임권을 위임받고 스포츠공정위원들을 선임했다. 그러고는 자신이 선임한 사람들이 중심이 된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3선 도전을 승인받은 것이다. 이 회장의 3선 도전 승인을 둘러싸고 ‘짜고 치는 고스톱’ ‘셀프 연임 심사’라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게다가 스포츠공정위원회의 승인만 받는다면 3선을 넘어 4선, 5선 등 얼마든지 연임이 가능한 구조다.
현직 회장이 마음만 먹는다면 각종 권한을 행사하며 대의원들을 장악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이렇게 장악한 대의원 총회를 통해 스포츠공정위원 선임 권한을 위임받은 뒤 자기 사람들로 채워 넣은 스포츠공정위원회를 통해 입맛대로 각종 제재와 포상 및 연임을 주무른다면 말 그대로 체육계를 사적으로 쥐락펴락하게 된다. 여기에 스스로에 대한 장기 집권까지 허용할 수 있는 구조여서 얼마든지 ‘체육 독재자’가 등장할 수 있다. 이러한 제도적 허점과 모순점을 고쳐 스포츠공정위원 선임 과정 및 그 역할에 대해 객관적 제어 장치를 도입하는 한편 그 활동 및 심사 기준과 내용을 공개해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유 당선인 앞에는 많은 숙제가 있다. 그동안 기존 체육회가 갈등을 빚어 왔던 정부와의 관계도 개선해야 하고, 체육회의 재정 자립 장기 계획을 세워야 하며, 선수들의 복지 및 인권 향상에도 힘써야 하고 학교체육 활성화 및 학생 운동부, 엘리트 체육의 균형 발전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하지만 그에 앞서 공정한 체육회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 시급하다. 유 당선인은 스포츠공정위원회의 대대적인 인적, 제도적 개선에 나서는 한편 객관성과 투명성을 확보함으로써 체육계의 자기 개혁이 가능함을 입증해야 한다. 그래야 정부의 과도한 입김으로부터 벗어나 체육계의 염원인 자율성 확보로 가는 길도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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