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심리 악화, 외환-금융위기 때에 비견
이번에는 외부 충격 아닌 내부 불확실성 탓
정책대응 여력 제한돼 침체 장기화 우려
활력찾는 첫걸음은 정국안정 통한 불안해소
송인호 객원논설위원·KDI 경제교육정보센터 소장
한국 경제를 진단하는 요인으로 ‘경제 심리’라는 키워드가 등장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월 경제동향 보고서에서 우리 경제는 생산 증가세의 둔화로 경기 개선이 지연되는 가운데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경제 심리 위축으로 경기 하방 위험이 더욱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진단은 상품 소비를 중심으로 한 전반적인 소비 부진이 계속되고 있고, 2024년 12월 소비자심리지수가 전월 100.7에서 88.4로 급격히 하락한 점에 근거를 둔다. 특히 소비 심리 악화가 우려되는 이유는 한국 경제에서 민간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50%에 달하기 때문이다. 즉, 현재의 소비자심리지수 급락은 한국의 전반적인 경제 성장에 대한 중요한 경고 신호일 수 있다.
소비자심리지수 88.4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80대 초반 수준에 비견할 만하다. 물론 1997년 외환위기 당시의 65 선에 비하면 양호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당시와 현재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첫째,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는 갑작스러운 외부 충격이 경제 전반을 위축시킨 사례였다. 반면 현재의 경제 심리 위축은 외부적 충격보다는 정치적 불안정과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악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주요국의 통화 긴축, 지정학적 리스크가 경제 주체들의 심리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대내적으로 국내의 첨예한 정치적 갈등과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 부족이 겹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불확실성의 확대는 KDI의 경제불확실성지수(EPU Index)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EPU 지수는 2024년 10월 115.27에서 12월엔 523.99로 급격히 상승하면서 지수를 산출하기 시작한 2013년 1월 이후 약 12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둘째, 과거 위기 때는 극단적인 충격 후 V자형 반등이 가능했지만, 현재는 저강도 침체가 장기화할 위험이 있다.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당시에는 극심한 고통 후에 과감한 구조조정과 정책 대응으로 비교적 빠른 회복이 가능했다. 하지만 현재는 정치적 갈등을 중심으로 체제와 제도 자체의 불안정 요인이 얽혀 있어 단기간 내 극적인 해결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셋째, 과거 위기 때와 달리 현재는 정책 대응의 여력이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1997년이나 2008년에는 과감한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을 시행하면서 여러 경제 대책의 신뢰도가 함께 작용했다. 하지만 현재는 물가 상승과 재정건전성 부실에 대한 우려가 있는 데다 정책의 신뢰도마저 떨어지고 있어 정책 집행의 유효성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현재의 경제심리지수 88.4는 절대적 수치보다는 그것이 암시하는 구조적 문제에 더 주목해야 한다. 특히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제 심리를 위축시키는 상황에서, 정국 안정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 보인다. 과거 위기에서의 교훈을 되새겨 보면, 정치권의 합의와 협력이 있을 때 우리 경제는 더 빠른 회복력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경제 심리의 위축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은 실제 상당하다. 소비 심리가 크게 위축되면 가계는 지출을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행위를 보이게 되고, 이는 기업 매출 감소로 이어진다. 그리고 기업들은 이어 투자를 축소하거나 고용을 줄이는 등 보수적 경영에 나선다. 이는 다시 소비 심리를 악화시키면서 악순환이 반복된다.
경제학자 케인스는 일찍이 ‘본능적 충동(animal spirits)’이라는 개념으로 불확실한 상황에서 직관적이며 감정적인 행동이 경제 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다. 그는 “인간의 의지는 계산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직감과 본능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하며 심리적 요인이 호황이나 불황과 같은 경기 변동의 동인임을 주장했다.
예를 들어, 경제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떨어지고 비관적인 분위기와 불확실성이 확산되면 투자와 소비가 줄어든다. 이러한 불안한 경제 심리는 금융시장에서 즉각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대표적 사례가 1987년 10월 19일 발생한 ‘블랙먼데이’다. 당시 뚜렷한 경제적 이유 없이도 투자자들의 공포 심리가 매도를 부추기면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하루 만에 22.61%나 폭락했다. 이 충격은 순식간에 글로벌 증시로 전이되며 세계 경제를 뒤흔들었다.
지금은 경제 심리의 회복이 우리 경제가 활력을 되찾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여기서 여야가 극한 정치적 대립에서 벗어나 협치의 길을 모색할 때 경제 주체들의 불안 심리도 진정될 수 있다. 따라서 경제 회복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협력하는 자세가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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