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을 바라보며[이준식의 한시 한 수]〈299〉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16일 22시 54분


아침 일찍 방에서 일어나니, 누군가 알려온 눈 내린다는 전갈.
문발 한껏 올리고 서설(瑞雪)을 구경하는데, 멀리 정원 계단에 어른대는 새하얀 빛.
휘날리는 그 기세는 화로에서 피어나는 연기, 새하얀 풀에는 차갑게 매달린 옥패(玉佩).
분명 이건 신선이 잔뜩 술에 취해서, 마구마구 흰구름을 비벼 뿌린 것이리니.
(畵堂晨起, 來報雪花墜. 高捲簾櫳看佳瑞, 皓色遠迷庭砌.
盛氣光引爐煙, 素草寒生玉佩. 應是天仙狂醉, 亂把白雲揉碎.)

―‘청평악(淸平樂)’ 이백(李白·701∼762)


눈발 세례, 이건 신선의 조화(造化)임이 분명하다. 고주망태가 된 그이가 흰구름을 마구 비벼대며 주사를 부리고 있다. 눈 내린다는 전갈을 듣자 시인은 눈발이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어림한다.

반가운 서설, 주렴을 걷어 올리니 눈발은 화로에서 연기 피어오르듯 기세등등하다. 하얗게 눈을 뒤집어쓴 정원의 풀은 주렁주렁 옥패를 매달고 있다. 주선(酒仙)이란 별칭에 걸맞게 시인은 자신과 신선이 다 천생 주당(酒黨)이라는 연대감에 뿌듯해하고 있는 듯하다.

송대 시인 양만리(楊萬里)는 한 자 넘게 쌓이는 눈을 바라보면서 ‘누가 저 눈송이 비벼 음식 만들어, 사람들 배 속을 뜨뜻하게 해줄지’(‘눈을 바라보며’)라고 기원했다.

동요 속의 상상 또한 경쾌하고 훈훈하다. 펄펄 내리는 눈을 보며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하얀 가루 떡가루를 자꾸자꾸 뿌려주는’(이태선 ‘눈’) 선물이라 노래한다. 후인들의 이 갸륵한 배려심을 읽는다면 이백은 어떤 심정일까. ‘청평악’은 곡명, 내용과는 무관하다.

#눈발#청평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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