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사랑처럼[이은화의 미술시간]〈270〉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7일 23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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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가 성모와 아기 예수를 그린 성모자상의 규범을 만들어 냈다면, 그의 영향을 받은 사소페라토는 독립적인 성모 초상화로 기독교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다.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가 자랑하는 ‘기도하는 성모’(1640∼1650년·사진)가 바로 그의 대표작이다.

사소페라토는 1609년 이탈리아 마르케의 사소페라토 마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조반니 바티스타 살비였지만, 출생지 이름으로 활동했다. 21세 때부터 수도원을 위한 제단화를 그렸던 그는 특히 성모 초상화를 잘 그려 인기가 많았다.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이상화되어야 했다. 범속한 이웃집 여인으로 보여선 절대 안 될 일. 사소페라토는 깊은 어둠 속에서 성모가 기도 중인 모습을 그렸다. 티 없이 깨끗한 피부, 온화한 눈빛, 부드럽게 모은 두 손, 우아한 의상과 자태 등 헌신적이면서도 이상적인 천상의 여인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실물 크기로 그려진 이 그림 앞에 서면 성모가 마치 우리 앞에서 기도하는 것 같다. 화가는 단순하고 깜깜한 배경과 대조적으로 성모의 의상을 사실적이면서도 도드라지게 묘사했다. 색상은 흰색, 빨강, 파랑 세 가지로 제한했다. 그중 빛을 받은 망토의 강렬한 파란색이 우리의 시선을 압도한다. ‘울트라마린’이라 불리는 이 색은 파란색 중 가장 훌륭하고 귀한 안료였다. 아프가니스탄의 광산에서 채굴된 청금석을 수입해 갈아 만든 울트라마린은 선명한 색 때문에 화가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금만큼 가격이 비싸서 성모의 옷처럼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에만 한정적으로 사용됐다.

울트라마린은 보존만 잘하면 영구적인 안료다. 믿음과 순종, 헌신과 사랑 등 성모를 상징하는 이 단어들도 기독교에서는 영원히 변치 않는 가치일 터. 그림 속 성모는 어두운 세상을 등지고 우리를 위해 영원히 기도 중이다. 울트라마린처럼 강렬하게, 어머니 사랑처럼 짙게 말이다. 17세기 그림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도 그 위안의 메시지 때문은 아닐까.


이은화 미술평론가
#어머니의 사랑#이은와의 미술시간#기도하는 성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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