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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이기홍 칼럼]상상초월 MBC

입력 2022-11-25 03:00업데이트 2022-11-2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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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벗어난 MBC 행태 근본 배경은
언노련 노조 위세 막강한 ‘勞營방송’
노조 등지고는 정상적 직장생활 어려워
이기홍 대기자이기홍 대기자
우리 사회가 정신적 내전 상태처럼 갈라져 있다 해도, 국민 과반수가 동의하는 상식의 추(錘)는 작동한다. 그런 상식의 추로 판단할 때 MBC의 행태는 도를 넘었다.

“대통령실은 잘했느냐”는 반박으로 덮어 버리는 건 억지다.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 대응의 적절성은 그것대로 따져야할 문제고, 보수성향 언론들도 숱하게 비판해 왔다.

MBC의 문제라 할 때 필자는 최근 대통령실과의 상호 작용 과정에서 감정적 급상승으로 빚어진 대목만을 지적하는 게 아니다.

지난 대선 과정을 포함해 최근 수년간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일부 보도들에서부터 최근의 괄호속 (미국) 자막과 PD수첩까지 이어지는 보도·시사물에 드러난 문제들은 우발적인 실수나 오류 차원이 아닌 걸로 보인다.

PD수첩이 김건희 편에서 대역 고지를 안 한 것을 여당이 문제 삼는데 더 심각한 건 그게 아니다.

“어렵게 만났다”는 소개와 함께 모자이크 처리되고 음성 변조된 제보자가 등장했는데 실제론 대역이었다고 한다. 모자이크와 변조를 하면 누구나 실제 인물이라 여긴다. 이를 응용한 게 모큐드라마다. 불륜 현장 급습 같은 장면 연출에 많이 사용된다. 시청자를 속일 의도가 아니라면 시사프로가 대역을 쓰면서 모자이크 처리하고, 음성 변조할 이유가 별로 없다.





제보자 목소리 녹음을 방영할 수 없는 사정이 있으면 그래픽 처리를 해서 자막으로 발언을 내보내고 진행자가 읽어주면 된다. 2008년 광우병 편 제작자들이 그랬듯이 ‘적개심이 하늘을 찌른’ 상태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결론에 닿기 위해 골몰하는 제작진의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만약 전임 정권 때 임명된 사장과 간부들이 아직 보직을 맡고 있던 문재인 정부 초기에 문 대통령이나 김정숙 여사를 다룬 방송에 이런 식의 마사지가 가해졌다면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 MBC본부’(이하 노조)는 사장과 제작 간부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을 것이다.

MBC 전·현직 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노조와 현 경영진에 비판적인 입장인 사람들이다.

―노영(勞營)방송이라고들 하는데, 실제로 노조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가.

“노조가 곧 회사다. 단지 파워가 세다는 차원이 아니다. 워낙 공고하게 노조 중심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노조에 등을 지고는 버티기가 어렵다.”

전·현직 사장이 모두 노조위원장 출신이고, 보도국은 국장을 비롯한 보직간부 전원이 노조원이라고 한다. 공채로 들어온 기자들은 의무처럼 노조에 가입한다. 다른 일반 부서들도 대부분 노조원이다.

“노조 주도 파업에 불참하면 정상적인 직장 생활이 어렵다. 투명인간 취급하고 심지어 들리는 소리로 욕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비노조원으로 지낸다는 건 왕따를 자처하는 중고생이나 마찬가지다.”

2017년 전임 정부 때 임명된 사장이 임기가 2년 넘게 남은 상태에서 쫓겨나고 최승호 전 노조위원장이 사장에 취임한 이튿날 MBC에서는 ‘대숙청’이 벌어졌다.

“우리는 그날을 일이팔(128) 사태라 부른다. 2017년 12월 8일 오후 4시경이었다. 저녁 뉴스 준비로 정신이 없는데 노조원들이 동시에 보도국에 밀어닥치더니 다짜고짜 자리를 내달라고 했다. 인사 발령이 났다는 것이다. 데스킹 보던 기사나 저녁뉴스 아이템을 넘겨줄 수도 없었다. 분장실에 있던 메인 뉴스 앵커들도 그대로 쫓겨났다.”

파업 불참자들은 전원 비제작 부서나 단순 지원 업무로 전보됐다. 정상화위원회 타이틀 아래 한때 동료였던 기자가 동료 선후배를 앉혀 놓고 과거의 리포트, 데스킹 기록을 따지는 나날이 이어졌다.

―어떻게 이런 지경에 이르렀나.

“1988년, 92년 파업 등의 영향으로 원래 노조가 강한 분위기였던 차에 언노련 결성 핵심인 최문순 전 노조위원장이 2005년 차장급에서 사장으로 발탁되면서 노조의 위세가 몇 단계 상승했다. 특히 문 정부 들어 2012년 파업 때 해직됐던 전직 노조위원장들이 연거푸 사장이 되면서 노조의 파워는 절정에 달했다.”

MBC 경영진 임면권은 여야 6 대 3으로 구성된 방문진 이사회가 갖는다. 이사 임기는 3년인데 좌→우로의 정권교체인 이명박 정권 출범 때는 기존 이사들 임기를 보장해 줬다.

그러나 우→좌로 바뀐 문재인 정권 출범 때는 노조와 좌파단체들이 보수 성향 이사들의 집 학교 교회까지 쫓아다니며 압박했다. 버티다 못한 2명이 사퇴함으로써 6 대 3이 4 대 5가 되며 기존 사장을 쫓아낼 수 있었다. 자신들이 정권을 잡으면 노조가 몰려가 쫓아내고, 정권을 뺏기면 임기 존중을 외치며 버티는 편리한 방식이다.

현임 박성제 사장의 임기는 내년 2월까지지만 현 방문진 이사진은 작년 8월에 구성돼 2년 가까이 임기가 남았다. 임기 3년의 다음 사장도 민주당 성향 인물을 앉힐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일부 시민들 사이에 MBC 광고중단 운동이 일고 있는데 정치권은 일절 개입해선 안 된다. 일부 국민의힘 의원이 광고중단을 얘기한 것은 자유시장경제의 가치 훼손뿐만 아니라 전술적으로도 하급 행태다.

물론 더 어이없는 것은 MBC와 일부 야당 의원들이 1974~75년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태를 들먹이며 동일시하려는 행태다. 동아일보 광고탄압은 모두가 권력에 굴종하고 침묵할 때 유일하게 언론의 정도(正道)를 지킨 한 신문에 대해 정권이 기업을 압박해 광고를 못 주게 한 사건이다.

MBC 사태는 정반대다. 요즘 세상에 정권 비판을 못 하는 언론은 없다. MBC에 대해 광고중단 운동까지 거론되는 것은 정권을 비판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자산을 위임받아 운영하면서 언론의 가장 기본적인 윤리와 가치마저 팽개친 듯한 행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언론의 본령이 권력 비판이라고 할 때 그 권력은 정권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야당, 노동단체 등도 감시·견제되어야 할 권력이다. 언론이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할 때 어용, 나팔수라 부르듯이, 특정 이념·진영·정파의 전위대처럼 편향된 행태를 거듭하면 ‘진영의 사냥개’라 불리는 날이 올 수 있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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