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줄어도 교부금 계속 늘어… “일부 떼서 대학지원” 목소리[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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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된 ‘교육교부금’ 제도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부터 서울 시내 중고교 신입생들에게 30만 원을 지원한 데 이어 올해는 지급 대상을 초등학교 신입생(20만 원)으로 확대했다. 또 올해부터 3년간 매년 600억 원을 투입해 서울지역 중학교 신입생과 교원에게 태블릿PC를 무상 지급하기로 했다. 경기도·울산시·인천시·충북도·세종시교육청도 지난해 중고교 신입생 전원에게 20만∼30만 원씩 교복비를 지원했다. 2020, 2021년에는 서울 등 11개 교육청이 학부모에게 총 4700억 원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입학지원금부터 교복비, 재난지원금까지 이 모든 돈은 정부가 지급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에서 나온다. 일각에서 교육당국이 정부 재정을 물 쓰듯 쓰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현상이 벌어진 데에는 저출산으로 학령인구가 감소한 반면에 교육예산은 계속 늘어난 영향이 크다. 정부가 지방 교육청들에 매년 나눠주는 교육교부금이 국가예산의 일정 비율로 고정된 구조에 따른 것이다.》



○ 50년 된 교육교부금 성립 배경

내국세와 연동된 교육교부금 제도가 생긴 건 1972년. 당시 베이비붐 세대 학생들이 초중등 학교에 넘쳐나 교사나 시설이 그 수를 따라가지 못했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믿을 건 교육밖에 없다는 국민들의 절박함도 교육재정 확충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이루는 데 일조했다.

정부는 학령인구가 계속 늘 것이라는 가정하에 국가예산에 비례해 초중등 교육예산이 자동으로 증가하도록 교육교부금 제도를 설계했다. 소득세, 법인세 등 내국세에서 일정 비율(1972년은 12.98%, 현재는 20.79%)을 매년 떼어내 각 교육청에 교부하기로 한 것. 여기에 1982년부터 교육세(올해 3조6000억 원)도 추가됐다.

이후 출산율 감소로 학령인구가 줄었지만 경제규모가 지속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교육교부금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교육교부금 지원대상 인구(6∼17세)는 2013년 657만 명에서 올해 532만 명으로 줄어든 반면에 같은 기간 교부금은 41조619억 원에서 81조2976억 원으로 늘었다. 이에 따라 학생 1인당 교부금은 2013년 625만 원에서 올해 1528만 원으로 2배 넘게 늘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교부금 지원대상 인구는 2060년 297만2000명으로 300만 명 아래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 추세라면 1인당 교육교부금은 더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 “열악한 고등교육 재정으로 돌려야”

정부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등을 제정·개정해 교육교부금 일부를 대학을 지원하는 고등교육 재정으로 돌리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교육교부금 중 교육세 부분을 ‘고등·평생교육 지원 특별회계’로 바꿔 대학 경쟁력 강화, 반도체 등 미래인재 양성, 평생교육 지원, 지방대학 육성 등에 쓰자는 것이다.

이는 오랜 등록금 동결로 재정이 악화된 대학들을 달래는 방안이기도 하다. 교육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등록금 동결 정책이 시작된 2009년부터 2020년까지 물가 상승률은 19.2%였지만 사립대 등록금은 0.76% 오르는 데 그쳤다. 올해 1인당 정부 지원금액은 초중고생의 경우 1528만 원이지만 대학생은 385만 원에 불과하다.

고등교육 투자는 해외와 비교해도 열악한 수준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1인당 교육비(민간+공공)는 초중고의 경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대비 132%에 달했으나, 대학은 66.2%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최상대 기재부 2차관은 7일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 및 고등·평생교육 재정확충’ 토론회에서 “기술 진보와 노동시장 고도화에 따라 고등교육 수요 증가는 세계적인 현상”이라며 “국제기구도 적극적인 고등교육 투자를 강조하고 있지만 고등교육 1인당 지출액이 초중고보다 낮은 국가는 OECD 회원국 중 그리스, 콜롬비아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81조 원이 넘는 교육교부금에서 약 3조 원만 떼어내 고등교육에 지원하는 것은 미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10년이 넘는 등록금 동결로 악화된 대학 재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특별회계 3조6000억 원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초중고 교육계는 정부 대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재남 전국시도교육감협회 정책과장은 “대학교육에 재정을 투입하려면 국가에서 재원을 따로 마련할 일이지 동생(초중등교육) 돈을 뺏어서 형(고등교육)한테 줄 일이 아니다”라며 “정부가 추진하는 ‘전일제 학교’ 정책으로 학교는 앞으로 돌봄 기능도 수행할 텐데 교육교부금을 오히려 줄이는 건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 “교육 수요 반영한 예산배정 필요”

학생 수와 상관없이 자동으로 늘어나는 교육교부금 구조 자체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선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흐름을 반영해 교육교부금 인상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학령인구 감소 속도가 교부금과 연동된 내국세 증가 속도를 추월하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학령인구가 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줄어드는 해에는 교부금 산정 시 경제성장률보다 낮은 증가율을 적용하자는 것이다. 교부금 규모를 매년 늘려야 한다는 교육계 주장을 반영한 대안이다.

이에 대해 재정 전문가들은 실제 교육 수요에 맞춰 교육교부금을 조정하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한다. 복지, 보건, 국방 등 다른 분야처럼 내년도 사업에 필요한 비용을 계산한 뒤 이에 맞춰 예산을 배정해야 한다는 것. 이렇게 되면 매년 줄어드는 학령인구에 맞춰 교육교부금도 감소하게 된다. 하연섭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앞으로 복지, 환경 등 재정수요가 계속 늘 텐데 내국세로 10조 원을 더 걷으면 무조건 2조 원을 교육교부금으로 배정하는 건 비효율적”이라며 “국민 세 부담을 낮추기 위해서도 매년 필요한 비용을 계산해 교육교부금을 결정하는 게 근본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 야당·교육계 반대로 정부안 불투명

각계에서 교육교부금 개편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지만 정부 절충안도 국회 문턱을 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역 교육감들에 더해 거대 야당도 정부안에 부정적이어서다. 더불어민주당 유기홍 의원(국회 교육위원장) 등 야당 의원들은 올 7월 “의무교육과 무상교육이라는 말은 무색한 반면 여전히 과밀학급이 넘치고 고교학점제, 그린스마트스쿨 등 미래형 교육체제 구축은 더디기만 하다”며 “윤석열 정부는 일방적인 교육교부금 개편 추진을 중단하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과밀학급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초중등 예산을 오히려 늘려야 한다는 것. 여당 관계자는 “현재의 여소야대 구도에서 민주당 동의가 없으면 정부안이 통과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교육계 의견을 일부 반영한 정부안조차 통과가 불투명하다 보니 교육교부금 제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개편은 사실상 수면 아래 잠겨 있다. 정부 관계자는 “국회 교육위원회 의원들이 내국세 연동 폐지 필요성을 어느 정도 수긍하고 있지만 교육계 표를 의식해 선뜻 입법에 나서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세종=서영빈 기자 suhcrates@donga.com
세종=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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