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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영원에 고정된 우연[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261〉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입력 2022-09-21 03:00업데이트 2022-09-21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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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2차 세계대전 중 스위스 로잔에서 우연히 만났다. 20대 초반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80대 초반에 죽을 때까지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만큼 서로를 사랑했다. 여자의 사랑은 남자의 글에 깊이와 지혜를 더했다.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 철학자 앙드레 고르와 그의 영국인 부인 도린 케어 얘기다.

그런데 부인은 그들이 같이 보낸 60년 중 마지막 24년을 몸이 성치 못했다. 과거에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을 때 엑스레이 촬영을 위해 투여한 혈관조영제의 부작용으로 거미막염에 걸린 탓이었다. 불치병이었다. 그러자 고르는 파리 생활을 과감히 정리하고 시골로 이사했다. 아내가 좋은 환경에서 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23년을 버텼다. 그런데 그 병이 이제 죽음을 요구하고 있었다. 죽음은 시간문제였다.

고르는 그것이 저항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고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D에게 보낸 편지’가 그것이다. 편지는 이렇게 시작된다. “당신은 곧 여든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센티미터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킬로그램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거의 똑같은 말로 편지를 마무리한다. “요즘 들어 나는 당신과 또다시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는 아내가 누워 있는 관을 따라서 걷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당신을 화장하는 곳에 나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재가 든 납골함을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결국 두 사람은 다음 생이라는 게 혹시 있다면 그때도 같이 살자고 말하면서 나란히 누워 같이 죽는 것을 택했다. 우연을 영원에다 기록하고 고정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알랭 바디우의 말처럼, 그들은 서로를 만난 우연을 영원에 매어놓고 죽었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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