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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AI 창작 시대, 예술의 개념이 바뀐다[AI가 만드는 예술/차우진]

차우진 미래 콘텐츠 컨설턴트·문화 산업 평론가
입력 2022-09-19 03:00업데이트 2022-09-19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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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도구인 ‘미드저니’가 제작해 지난달 미국 콜로라도주 미술대회의 ‘디지털아트·디지털합성사진’ 부문에서 1등상을 받은 작품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 오랜 세월 동안 인류가 품고 있던 예술의 개념은 AI가 창작에 뛰어들면서 균열되고 확장되고 있다. 사진 출처 트위터
차우진 미래 콘텐츠 컨설턴트·문화 산업 평론가
‘미드저니(MidJourney)’는 영어 단어 몇 개로 그림을 제작하게 해주는 인공지능(AI) 도구다. 회원 가입도 필요 없다. 말 그대로 ‘고대 유적지 배경, 아름답고 강렬한 석양, 여행 중인 가족의 실루엣’이라는 단어를 입력하기만 해도 AI가 작동한다. 근사한 그림이 나오기까지 단 몇 분이면 충분하다. 이러한 미드저니를 사용하려고 각국에서 수십만 명이 몰려들고 있다. 최근 전 세계 미디어를 통해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게임회사의 대표는 미국 콜로라도주의 미술 대회에 미드저니로 제작한 그림을 출품해 1위를 차지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AI 창작물이 예술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고, 어떤 사람들은 미드저니를 이용해 그림을 만들기 시작했다. 음악에서도 이미 AI의 활용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예능이나 다큐, 드라마 같은 방송 영상물의 배경음악이나 사운드트랙에서 AI 작곡가의 활용도는 생각보다 높다. 얼마 전에는 AI가 쓴 시를 모은 시집이 발간되기도 했고, 일본의 AI는 단편소설을 써서 신인상도 받았다.

최근 필자는 AI로 음악을 만들고, 그렇게 만든 음악을 블록체인에 올려 대체불가토큰(NFT)으로 발행하는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의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이 회사는 누구나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그렇게 만든 음악의 소유권, 저작권, 판권을 관리하도록 돕는다. 악보를 보거나 그리지 못하는 사람도 쉽게 음악을 만들 수 있도록 음표 값이나 코드(chord·화음)가 아닌 우울함이나 경쾌함 등 분위기로 버튼을 표시한다. 몇 개의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1분 정도 길이의 음악을 만들 수 있다. 나는 이 기술이 어쩌면 ‘작곡의 민주화’라는 것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게 좋은지 나쁜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일상적이고 광범위한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AI의 기술적 역할과 사회적 지위, 활용 범위와 직업윤리 등에 대한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우리는 ‘예술이야말로 인간의 영역’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런데 최근 AI의 활용 범위는 이런 입장을 재고하게 만든다. 어떤 이들은 ‘예술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라는 입장을 고도화시키고 어떤 이들은 ‘이제는 AI의 예술성을 인정할 때가 왔다’고 주장한다. AI의 저작물에 대해 저작권, 초상권, 출판권과 같은 법적인 보호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나로서는 양쪽 의견을 모두 이해하는 편이다. 다만 생각의 방향을 조금 다르게 하고 싶다. 요컨대 AI의 창의성을 인정하느냐의 논의는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조금 확장한 것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창의성과 예술성이 인간성을 증명하는 수단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을 정의하는 것은 창작 행위가 아니라 사회적 행동이다. 거기엔 이타심, 존중과 배려, 동정심과 죄의식 같은 감정이 있다.

또한 나는 AI와 같은 기술적 인프라가 창작자를 도와주는 역할에 머물 것이라는 주장과도 다른 생각을 한다. AI는 창작자를 도와준다기보다는 거의 모든 사용자를 창작자로 바꿀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 둘은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얘기다.

보통 창작은 전문적인 교육 과정을 거쳐야 가능하다는 것이 상식이다. 독특한 관점과 반복적인 훈련으로 재능을 꽃피운 결과가 바로 창작이고, 예술로 여겨진다. 그런데 테크놀로지와 네트워크는 그러한 과정을 과감히 생략한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틱톡을 통해 우리는 이미 모두가 예술가가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AI는 그 과정을 급진적으로 단축시키거나 수월하게 바꿔주는 것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창작의 개념이나 창의력의 범위가 달라지는 건 아니라고 믿는다. 몇 개의 문장으로 아름답고 웅장한 우주의 신비가 담긴 디지털 아트를 만들고, 버튼 몇 개로 익숙하고 우아한 멜로디를 제작하는 것…. 예술적 영감을 가진 결과물을 만드는 것은 이와는 또 다른 문제다. 오히려 AI 창작 도구는 예술의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것이다. 예술품이 넘쳐나는 시대에 비로소 우리는 예술을 재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때가 오면 ‘예술인 것과 예술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일보다 ‘얼마나 다른 예술이냐’가 중요해질 것이다.

이전에는 예술이라고 불리지 않던 것들이 앞으로는 예술로 불리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금은 대중음악의 정수로 여겨지는 재즈도 초기에는 ‘음악(music)’이 아니란 의미에서 ‘무작(muzak)’이라 폄훼됐다.

올 2월 미국 뉴욕 패션위크에서 공개한 박윤희 디자이너의 의상. 여기 쓰인 패턴 이미지는 LG의 인공지능(AI) 휴먼 아티스트 틸다(Tilda)가 ‘금성에 핀 꽃’을 주제로 창작한 결과물이다. LG 제공
이런 상황에서 ‘크리에이터’와 ‘아티스트’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 둘은 표면적으로는 차이가 없겠지만, 개념적으로는 달라질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뭐가 다를까? 나는 크리에이터는 창작 그 자체에 집중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재미있는 아이디어, 의미 있는 관점, 남다른 재능과 기술 등을 토대로 그림이든 음악이든 영상이든 글이든 ‘뭔가를 만드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들. 이들이 크리에이터 경제를 주도할 것이다.

반면 아티스트는 하나의 질문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존재다. 예를 들면 박찬욱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계속 질문하고, 봉준호는 ‘구조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아티스트와 크리에이터는 그가 추구하는 질문의 유무에 따라 구분될 수 있다. 물론 나는 그러한 질문을 추구하는 주체가 인간이든 AI든 중요하지 않다고도 생각한다. 우리는 그런 시절을 살아가고 있다.

차우진 미래 콘텐츠 컨설턴트·문화 산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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