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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연인과 함께 ‘길티 플레저’[내가 만난 名문장/한귀은]

한귀은 경상대 국어교육과 교수·작가
입력 2022-09-19 03:00업데이트 2022-09-19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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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귀은 경상대 국어교육과 교수·작가
“세상에 신이 있다면, 그 신은 너와 나,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이에 존재한다고 믿어.”

―영화 ‘비포 선라이즈’ 중


죄책감은 쾌감을 증폭시킨다. 밤에 먹는 라면이 더 맛있고, 시험 기간에 게임이 더 재밌는 이유다. 하면 안 되지만, 하면 안 되기 때문에 더 큰 쾌감을 주는 것. 삶에는 이런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가 적지 않다. 이 길티 플레저가 극강에 오를 때가 사랑할 때다. 사랑은 그 자체로 죄다. 사랑으로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고통을 기꺼이 허락하기 때문이다. 자기 배려의 관점에서 보면, 사랑은 자신에게 할 짓은 못 된다. 사랑을 두고 유일하게 공인된 광기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작정 펍에 들어가 공짜로 와인을 받아내고, 와인잔을 훔치고, 한밤중이라지만 공공장소 공원에서 노숙하며 사랑을 나누는 건 일탈이자 광기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 모범 시민인 20대 청년 둘이 여행지에서 만나 이런 행동을 했다. 물론 죄책감도 있었다. 그러나 죄책감은 희열을 더 고조시킬 뿐이다.

탈법이 사랑은 아니다. 길티 플레저는 탈법을 넘어 초법적으로 삶의 윤리를 찾게 한다. 사랑으로 자기 삶의 입법자가 되게 한다. 그리하여 신에 대해서도 탈종교적으로 사유하게 된다. “세상에 신이 있다면, 그 신은 너와 나,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이에 존재한다고 믿어.” 윤리적인 길티 플레저 연인은 사랑이 너와 나 사이, 너와 나만의 신을 조형하는 일이란 걸 안다.

사랑은 기꺼이 유죄인간이 되게 한다. 사랑스러운 공범자와 이 세계의 부조리를 헤쳐 나가게 한다. 함께 상처받을 수도 있지만 그래서 더 사랑이다. 사랑은 함께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망해도 된다고 믿는 것이다. 같이 망해도 되겠다 싶은 사람, 함께 망하면 결코 망하지 않겠다는 믿음이 생기는 사람, 그가 당신의 연인이다.


한귀은 경상대 국어교육과 교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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